우리가 신뢰할 만한 하나님
인간의 약속은 흔히 믿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신임은 주로 그들의 믿음직함과 신뢰성에 대한 과거의 기록에 기초한다. 우리는 그들이 약속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 어떤 일들로부터 방해를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창조주는 어떠한가? 그분은 그보다 더욱 신뢰를 받으실 만한가? 그렇다. 그분은 어떠한 일의 방해를 받아 단 하나의 약속이라도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확실한 근거를 우리에게 주셨다. 약속의 이행자로서의 여호와 하나님의 과거의 기록에는 조금도 흠이 없다. ‘여호수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를 살펴 보자. 그들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목격하였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400년 전에 하신 약속이었다. (창세 15:13-21) 그들은 또한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서, 강한 민족들의 맹렬한 반대를 받으면서도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을 성공하였다. (신명 7:17-21; 11:23) 여호와 하나님께서 수행하신 일을 회상하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여호수아 21:45.
어떠한 장애물도 성취를 막을 수 없음
이것은 인간과 얼마나 다른가! 인간은 자기의 약속을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이행하지 못하면, 어떤 알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영영 이행하지 못하는 수도 많다. 그의 약속은 죽은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경우에는, 그분의 약속이 언제나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히브리 4:12) 아무 것도 그의 성취를 막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사야 55:10, 11)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일단 비나 눈이 내리면, 누가 그 내린 것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눈이나 비로 내린 물은 반드시 그 목적을 달성한다. 흙속에 있는 양분과 더불어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것이다. 곡식의 경우에, 거둔 알곡의 일부는 다음해에 쓸 종자로 남고 대부분은 식품으로 가공된다. 이와 같이 하여 비가 내린 궁극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장애에 부닥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모든 점들은 성취될 것이다. 이 점이 이사야 55장에서 논한 특정한 약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 12절과 13절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 약속은 가시나무와 질려가 뒤덮인 황폐한 ‘유다’ 땅이 다시 경작되고 사람이 거주하게 될 때가 올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갈대아’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은 단단히 요새화되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난공불락의 도시처럼 보였다. ‘바벨론’ 왕조가 지배하고 있는 한 해방될 기대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 성경에서는 그 왕조가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라는 평판을 얻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이사야 14:17.
그러나 이 거대한 장애물도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어느날 밤 갑자기 ‘바벨론’ 강국은 ‘고레스’ 장군의 휘하의 ‘메데-바사’ 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있어 ‘고레스’는 조서를 내려 ‘유대’인 포로들로 하여금 황폐되었던 ‘유다’ 땅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전을 재건하도록 하였다.—역대 하 36:22, 23.
부가적인 보증을 받음
하나님의 약속에 극도의 신뢰를 둘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분이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자신의 말씀에 거셨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의 경우에 있어서, 그분은 맹세를 더하셨다. 히브리 6:13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더라].”
이 맹세로서 이루어진 이 놀라운 약속은 그 성취가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러한가?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 22:18) ‘아브라함’의 으뜸가는 “씨”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갈라디아 3:16, 난외주) ‘아브라함’의 씨로서, 그는 지상에 있는 동안 완전한 성실을 유지하였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바로 그 점에 달려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그분의 완전성을 유지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더불어 하나님의 기타 모든 약속의 성취는 확실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씨의 으뜸가는 분의 신분에 관한 또는 그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자로서 그가 부적합하지나 않을까 하는 가능성에 관한 의문은 이제 전혀 없어졌다. 고린도 후서 1:20에서는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다음과 같은 보증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정당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멘”이라고 불리우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확실한”, “참으로”, “그렇게 될찌어다” 또는 “진리”라는 말이다. (계시 3:14) 그와 같은 신분을 가진 자로서, 그분은 단순히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만이 아니다. 그분의 희생적 죽음을 포함하여, 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성실을 지킨 그분의 인생 행로는 그분의 아버지의 모든 약속의 실현을 공고히 하고 가능하게 하셨다.—요한 14:6.
자신의 아들을 ‘다윗’ 왕의 가문에서 난 ‘아브라함’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에게서 기적적으로 출생시켜 ‘아브라함’의 으뜸되는 씨가 되게 하신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로서,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아들이 지상에서 받으실 무시무시한 고통을 가슴아프게 느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세상을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주시어 기꺼이 최고의 희생을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의 값비싼 생명을 바쳐 견고한 기초를 놓으신 후에 그분의 말씀을 깨뜨리는 일을 하시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 8:32.
그렇다. 그 누가 하나님의 약속 중 어떤 것이 혹시라도 성취되지 않으리라고 염려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최고의 희생을 마련하셨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분의 말씀과 맹세는 전혀 거짓말이 아니고 절대 참됨이 입증되었다. 인간 역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신뢰성을 나타내 오셨다. 그분은 결코 약속을 지키지 못하신 일이 없으셨다. 참으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저버리지 않도록 힘써야 하며, 그분 앞에 승인받는 입장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