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미래—미리 알 수 있는가?
당신의 미래를 알려 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만나 볼 수 있는가? 아마 당신의 고장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 잎사귀로 점치는 사람, 손금보는 사람, 점성술사나 기타 다른 형태의 점장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언을 부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는 점장이들이 부정확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하다고 하는 경우에도 그 예언이 너무나 애매 모호하여 종종 거의 어떤 사건에나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교 신탁자들의 예언도 그와 거의 비슷하였다. 희랍인 저술가 ‘루시안’은 어떤 예언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는 신탁을 전하고 신의 응답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아주 조심스러운 그리고 신탁의 관습에 따라 복잡하고, 의심스럽고, 모호한 대답을 하였다.”
그러한 신탁자들은 때때로 정반대로 이해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그리이스’ 북서 지방인 ‘에피러스’의 왕 ‘파이러스’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는 대답을 얻었다.
1. “나는 ‘애구스’의 아들 그대가 ‘로마’인들을 정복할 것이라고 말하노라. 그대는 갔다가 돌아올 것이며 결코 전쟁에서 죽지 않으리라.”
2. “나는 ‘로마’인들이 ‘애구스’의 아들 그대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하노라. 그대는 가서 결코 돌아오지 못하고 전쟁에서 죽으리라.”
‘파이러스’는 그 신탁을 전자와 같이 이해하였기 때문에 ‘로마’와 싸웠다. 그는 전쟁에서 졌다.
점장이들이 구체적으로 예언한 내용이 들어 맞는 경우에도 그 예언이 보통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태로우’ ‘카아드’로 예언을 하는 한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알아내는 것들은 대부분이 사소한 문제들이다. 그 여자의 오빠가 입대할 것이라든가 이웃 사람이 아기를 가질 것이다 라는 등 ··· 그 어느 것도 아주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그와 다른 예언
이것은 장래에 있을 중요한 사건들에 관하여 당신이 결코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술한 형태와는 전혀 다른 신뢰할 만한 예언들이 있다. 그러한 예언을 성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 등의 예언서를 보면 그와는 참으로 다른 예언들이 나온다. 성서 예언들은 개인 생활의 사소한 점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가들의 장래를 예언하는 일이 많다. 제국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들과 함께 그 제국들의 흥망 및 특성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도 그 대부분이 여러 세기 전에 미리 설명되어 있다.
또한 서로 관계가 없는 점장이들의 예언들과는 달리 성서의 모든 예언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은 곧 예언의 영이다”고 말한다. (계시 19:10, 신세) 모든 성서의 예언은 “천하 만민”을 축복할 ‘아브라함’의 “씨” 즉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창세 3:15; 12:1-3; 22:18; 갈라디아 3:16.
더 나아가 성서 예언자들은 가장 가치있는 도덕적인 소식을 전하였다.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법을 범한 왕이나 고위 관리들을 꾸짖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종종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 예언이 그 세세한 점에 있어서까지 성취됨으로써 아주 독특한 예언임이 밝혀지는 것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언은 당신과 직접 관련될 미래의 사건들도 묘사한다. 다음 두 기사에서 몇 가지 예를 고려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