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현실”에 대처하는 일—그 방법이 제시된 세계적 교육 계획
17세 된 한 ‘프랑스’ 소녀에게 있어서 인생은 참사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을 비참하게 보낸 그녀는 결혼을 해서나마 행복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그녀의 생활은 남편의 사나운 학대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날 심하게 얻어 맞아 얼마만에 의식을 되찾은 그 여자는 ‘라이플’ 총을 움켜 잡고는 그대로 쏘아 버렸다. 남편은 쓰러져 죽었다. 그러나 그의 고생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2년 형을 치른 후 그는 다른 남자의 사랑을 구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것 역시, 현실적으로 얻은 것이라고는 사생아뿐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끝나버렸다. 고독과 절망과 극도의 허탈 상태에 빠져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어느 일요일 아침 아기와 함께 허무한 자신의 존재를 끝내기로 작정했다. 그는 ‘가스’를 틀어 놓고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 젊은 여인은 또 한명의 자살 희생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놀랍게도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서 모인, 즐거움에 넘친 90,000여명의 대회 참가자들 틈에 끼여 있었다. 사실상 이제 그의 인생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희망을 품게 되었으며 이제 인생의 문제거리들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개최한 동일한 일련의 대회에서 현재까지 침례받은 25,276명 중에 끼게 된 것이다.
그 여자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달라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세계적 교육 계획에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스’를 틀어 놓은 바로 그 순간에 집 문을 ‘노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 ‘여호와의 증인’이었는데, 그 소식이 어찌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지 그는 ‘증인’들과 매주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지난 여름 침례받기에 이른 것이다. 수십년 동안 ‘증인’들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해 왔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왔다.—마태 28:19, 20.
교육 계획의 주요 특징
최근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하에 개최된 이 연례 대회는 ‘여호와의 증인’의 교육 사업의 주요 특징이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대회들에 대하여 엄청난 반응을 보여왔다. 지지난 해에는 80개국 이상에서 3,400,000명 이상이 이러한 대회에 참석하였다. 이 수자는 정확히 5년 전의 대회 참석자 수에 비할 때 43‘퍼센트’의 증가이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꼭 10년 전에 12,615명이 전국 대회에 참석했었는데 이것은 그 때로는 감격적인 최고 참석수였다. 지난 해 여름에는 8배 이상이나 되는 105,534명이 참석하였다!
이미 33개국에서 2,267,955명이 참석하였으며 지금 남반구에 계획중에 있는 대회들은 1981년초에 완료될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보고로는 총 참석자 수가 3,600,000명에 이를 것 같다. 그러나 이 교육 계획의 뛰어난 점은 참석자의 수효뿐인가?
실용적인 교육
오늘날 세계적으로 교육이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론적인 학습 결과에 환멸을 느껴왔다. “우리 자녀들이 인생의 현실에 대처할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는 내용의 실용적 교육을 베풀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읍니다”라고 ‘케냐’의 ‘나이로비’ 시장은 강조하였다. 당신도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단지 어린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현실 세계’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하여는 ‘읽기, 쓰기 및 산수’ 공부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 대부분은 인식하고 있다.
인생의 현실에 대처하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배양해야 할 특성을 몇 가지만 들어도 올바른 행동 표준, 나쁜 습관을 극복할 수 있는 힘, 다른 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능력, 도덕적 성실성 등이 있다. ‘증인’들은 주로 성서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이러한 특성들을 배양하도록 돕고자 힘쓰고 있다.
이 일에는 성서 보조 서적들이 또한 이용된다. 그 중 하나로서 말과 그림이 곁들인 「성서 이야기」 책(앞면 그림 맨 우측)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일본 대회 헌금함에서 “다섯살 난 여자 아이”라고 적혀 있는 기록 쪽지가 나왔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엄마를 도와서 받은 돈을 모아 745‘엔’(약 2,000원)을 만들었어요.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나의 성서 이야기 책」처럼 예쁜 책을 만드는 데 사용해 주신다면 기쁘겠어요.”
이처럼 이 교육 계획은 이러한 출판물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외부 사람들은 종종 최근 대회에서 나타난 이들의 행동에 감명을 받았다. ‘나폴리’의 한 경기장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첨이 아니라 의무감에서 하는 말인데, 여러분은 제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진실하고, 질서있고, 교육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 받은 교육에 힘입어 그처럼 바람직한 특성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 사람은 알 수 있었다. 일본 ‘나고야’의 한 교통 경찰관은 ‘증인’들을 관찰한 후 이렇게 단정하였다. “여기 이 사람들은 그들이 배우고 있는 내용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 있음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타인에 대하여 우월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들의 경우 그 지식으로 인하여, 슬프게도 오늘날의 세상에는 결여되어 있는 특성들을 배양하는 데 필요한 사고력이 진정 향상된 것뿐이다.
그러면 이러한 대회의 교육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다음에 실린 2‘페이지’의 기사는 최근의 “하나님의 사랑” 대회에서 제공된, ‘프로그램’의 중요점들 및 세 가지 성서 드라마의 개요를 소개하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여호와의 증인’은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수천명씩 수백개의 도시로 모여들었다. 한 ‘스웨덴’ 신문은 그들의 도착을 가리켜 ‘아마도 세계 역사상 가장 조용하고 가장 화기애애한 이동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의 일거 일동은 예리한 주의를 끌었다. 무엇이 관찰되었는가? 그들의 교육 계획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실제적 증거가 있었는가?
부정직을 벗어버림
‘이탈리아’에서의 일이었다. 대회장 옆에서 상점을 벌이고 있는 한 여인은 ‘증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어제 저는 여러분 중 어느 한 사람에게 거스름돈을 주는 데 있어서 실수를 했읍니다. 드려야 할 돈보다 10,000‘리라’(약 8,400원)나 더 드렸지 뭡니까? 그런데 잠시 후 그 손님이 되돌아와 그 돈을 돌려 주었어요. 이런 일은 제가 이 가게를 차린 이후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어쩌다 생긴 일이라고? 그렇지 않다. ‘증인’들의 정직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한 대회 참석자가 ‘호텔’ 요금 청구서를 수표로 지불하면서, 신원 확인이 필요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무원은, “아니, 천만에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면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읍니까?”라고 대답하였다.
나쁜 습관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아마 당신은 친구나 이웃 중에서 ‘알코올’ 중독, 마약 남용 또는 기타 나쁜 습관의 노예가 되어 일생을 망쳐버린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라나죠네」 신문은 이렇게 보도하였다. “그들[갓 침례받은 ‘증인’들] 중에는 이전에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들과, 그 밖에 심각한 가족 및 사회적 불행을 극복할 힘을 찾게 된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개최된 108개의 대회 중 하나에 참석한 남자는 이렇게 시인하였다. “나는 인생의 밑바닥 생활을 해왔읍니다. 비록 이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의 토론을 통하여 성서 지식을 제법 얻기는 했지만 나는 타락한 생활을 하기로 작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사건을 통해서 내가 참으로 악습의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데이빗’은 계속 설명했다. “친구와 나는 ‘알코올’과 마약에 만취한 채 이웃 사람에 대한 앙갚음으로 그 집을 몽땅 태워 버렸읍니다. 결국 그 뒤 내가 너무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저지른 죄로 고민하다 못한 나는 ‘증인’들을 찾아갔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진지한 마음으로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는 후에 경찰에 자수했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성서 연구는—심지어 교도소 내에서조차—계속되었다. 그의 행동은 극적으로 좋아졌다. 교도소 관리들은 너무나 감명을 받아 그의 형기를 감소시켰다. 그가 재소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에서는 이전의 이 흉한이—여러 가지 파괴적인 습관의 노예—제 발로 대회에 참석하는 일을 허락하였다! 미국 대회에 참석한 1,034,364명 중에는 이 사람도 끼어 있었다.
협력하여 일하는 사람들
“만일 우리 눈으로 여러분의 작업 광경을 보지 않았더라면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이탈리아’ ‘아스콜리 피체노’의 경기장 관리인들은 말했다. 그들은 ‘증인’들이 지붕있는 관람석 내의 의자들을 모두 들어내어 그 밑을 청소하고는 다시 제 자리에 놓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때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수행될 수 있다.
일본의 예를 살펴 보자. 대회 전 날 대회장 강당들 중 한 강당의 바닥을 덮는 ‘시이트’가 더러워진 것이다. 그것을 청소하는 데는 보통 일주일이 걸린다. 그러나 ‘증인’들이 그 일을 90분 내에 해내자 관리실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1,200명 이상의 이 지역 ‘여호와의 증인’ 남자 성원들이 올 여름 그들의 2차에 걸친 [“하나님의 사랑”] 지역 대회 때 ‘애스트로어리이너’ 경기장을 무료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지난 주말 ‘애스트로도움’ 경기장 바닥에 8,000장의 합판을 가설하였다.” 이것은 1980년 5월 3일자 ‘휴스턴’ 「크로니클」지의 기사 내용이다. 이와 같은 희귀한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텍사스’ 주 ‘휴스턴’의 ‘애스트로도움’ 관리들이, 과거 증인들이 그 경기장을 사용할 때 보여준 태도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2년간 증인들은 박람회 개최 일정에 맞춰 그 거대한 ‘애스트로도움’ 경기장 바닥 전체에 1.2 × 2.4‘미터’짜리 합판 8,000장을 겹쳐 깔고 못을 쳐 고정시키는 일을 과감히 해냈다. 전시 물품들이 무거우므로 바닥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합판을 가설하고 그 위에 물건들을 세우게 한 것이다. 그 다음 박람회가 끝났을 때 판자들을 떼어 내고 못을 뽑은 후 지하실에 다시 쌓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증인’들은—단지 약 4시간이라는—기록적인 시간 내에 그 바닥을 씌웠다. (종전에 그렇게 하는 데 전문가들이 11시간이나 걸렸었다!) ‘증인’들이 대단히 신속했기 때문에 한 관찰자는 “바닥에 합판을 쏟아 붓는 것처럼 보이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람회가 끝나자 그들은 도로 와서 합판을 뜯어내고 수천개의 못을 뽑아 낸 후 그것을 다시 쌓았는데, 이 모든 일에 도합 8시간이 채 안걸렸다. 이 일은 통상 수 주일이 걸리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 교육 계획에 따라 배양된 특성들은 진정 얼마나 뿌리가 깊이 박힌 것인가? ‘증인’들로 하여금 성서 원칙을 저버리게 하려고 굉장한 압력이 가해질 때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박해에도 굴하지 않음
“난간에 나가서 네 목청껏 소리 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 보아라”고 하면서 학교 선생은 조롱하였다. 이 말의 대상자는 일본의 10대 ‘증인’이었다. 그 소녀는 성서 원칙을 지키려는 입장으로 인하여 전급우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거듭된 조롱과 학대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는 믿음에 고착하여 일본 대회에서 침례받은 1,860명 중에 끼게 되었다.
침례받은 다른 일본 사람들 중에는, 성서 집회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수개월 동안 온갖 날씨에 집 밖에서 밤을 지새운 경우가 있었다. 어떤 여자는 수주 동안 그런 상태에서나마 애써 눈을 좀 붙여보려고 할 때면 밤마다 집에서 끼얹는 물을 뒤집어 썼다. 설명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남편에게 심한 매질을 당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새 ‘증인’들의 믿음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진정한 희망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복수하실 것인가?”라는 공개 강연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한 ‘증인’은 공동 묘지 근처에 있는 일단의 노동자들에게 접근하였다. 한 노동자가 그 강연 제목의 처음 부분을 보더니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천만에!”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그는 ‘증인’들을 데리고 하얀 꽃으로 덮여 있는 무덤으로 갔다. “여기 겨우 세살짜리 내 꼬마 딸이 누워 있소.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왜 이런 일을 하겠소?”라고 이 사람은 괴로운 듯이 말했다.
‘증인’들은 친절하게 죽음이—하나님께로부터가 아니라—다른 곳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는 부활에 대한 성서의 희망을 보여 주었다. (로마 5:12; 사도 24:15)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바로 그날 저녁 대회에 온 그는 어린 아기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성서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사람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희망을 발견해 왔다.
성공적인 계획
결과를 보면 이 교육 계획은—필요하면서도—현 세상에 아주 드문 특성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계획은 사람들을 도와서 진정한 만족을 찾도록 하게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코젠짜’의 한 ‘호텔’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이 있읍니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읍니다. 즉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이 사람의 충고가 건전한 것인지 알아 보시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이 국제적 교육 계획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란다. 당신은 무료로 “인생의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등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4면 네모]
교육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사랑의 하나님께서 복수하시는 이유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시 11:5-7) 그분의 위대한 이름과 목적이 입증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조만간 복수하심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부패를 일소하시고 대속된 인류가 완전성을 향해 발전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그 때 맹인의 눈이 뜨일 것이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다. 모든 사람이 즐거움에 빛나는 건강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충성
다음과 같은 결의문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 수백만의 대표자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간 내에 왕국의 좋은 소식을 열심히 선포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담대하게 선언하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것을 결의합니다.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왕국에 온 영혼을 다한 충성을 바치고 그 왕국의 충성스런 신민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청소년들이여, 나쁜 것을 미워하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의 결정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부도덕의 유혹에 직면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 정신은 계속 ‘안돼! 안돼! 안돼!’라고 했지만, 제 마음은 계속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고 했어요.” 그러나 심각한 도덕적 약점을 극복한 어느 젊은이는 자신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강한 성적 욕망을 갖게 되면 그 때마다 나는 ‘여호와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니까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고 입 속으로 되풀이 했읍니다.”
자녀를 의(義)로 훈련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때때로 자녀에게 벌을 주어야 하지만, 그와 아울러 의로 훈련을 베풀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자녀들과 함께 추리하고 그릇된 태도로 말미암아 초래될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기 희생적 사랑의 필요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바와 같은 자기 희생적 사랑은 그리스도교를 식별케 하는 “표시”이다. (요한 13:35)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실행하기 위하여—고통스러운 죽음을 포함한—큰 희생을 치루셨다. 그러므로 참다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으로써 서로 참는 법
‘프로그램’ 실연에서 한 그리스도인 여자는 다른 이로부터 거친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1) 그 일을 단순히 잊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2) 마태 복음 5:23, 24의 원칙을 적용하여 평화를 조성하고자 노력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만 하였다. 그는 비록 그 영적 자매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른 적이 없었지만, 두번째 길을 따랐다. 이와 같이—우리 자신을 낮추고 평화를 구하라는—성서의 충고를 따르려는 자진성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에 대하여 참을 수 있게 한다.
도덕적 충실성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 그 순간에는 아무리 즐거워 보인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자신에게 계속 타일러야 한다. 마음은 기만적이며 언제든지 변명을 꾸며댈 수 있다. (예레미야 17:9) 만일 사도 ‘바울’이 자신의 육체적 경향에 대항하여 계속 싸워야 했다면, 감히 우리가 자만에 빠져 그보다 덜해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계속 힘써야 한다. 만일 중지한다면 우리는 싸움에서 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의 제명을 감수하면서까지, 배우자와 이혼하고 다른 이와 재혼하기를 획책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설령 회중에서는 그들을 복귀시킨다 할지라도, 최후의 심판관은 마음과 모든 환경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히브리 13:4.
거룩한 것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들 ‘이삭’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려 했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았다. ‘야곱’의 형 ‘에서’는 한 끼니 음식을 위해 장자권을 팔아 버림으로써 거룩한 것들을 업신여겼다. 그는 하나님의 관심사보다 자신의 일을 앞세웠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생활을 구축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사실상 둘째 자리에 두고 있는가? 아무도 자신이 ‘에서’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만일 여호와께서 그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가 과연 약속된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 충성스러운 자의 행로를 지켜 주시리라
근래 몇몇 사람들은 회중과 연합해 있는 일부 뛰어난 가르치는 자들의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다윗’ 왕 시대에도 충성에 대한 시험이 발생했었다. 비록 ‘다윗’이 잘못했지만 겸손히 회개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의 신분을 계속 지킬 수 있었다. 그 때 그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았지만, 불충성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였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조직과,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의 필요성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함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 싸움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여호와의 증인’을 멸절시키고자 하는 적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고 위협했던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의뢰한 ‘여호사밧’ 왕이 가졌던 확신과 똑같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 왕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알게 하고 복종케 한 까닭에 그 나라는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만일 우리가 모든 길에서 참 숭배를 실천하고 회중 내에서 하나님의 법을 시행하여 회중을 도덕적으로 깨끗이 유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며, 조만간 그분께서 베푸실, 적들로부터의 영원한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3면 삽화]
일본 ‘오오사카’에 전시된, 교육 계획에 사용되는 서적들
[25면 삽화]
성서 ‘드라마’
[27면 삽화]
성서 교육의 혜택을 입어 온 어린이들이, “우리도 서적을 나눠 드리는 데 거들어 드릴 수 있어요”라고 하면서 훌륭한 영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