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침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십시오.”—로마 13:7.
1, 2. (ㄱ) 예수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카이사르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합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의 첫째 가는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예수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있고, 카이사르 즉 국가에 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이 몇 마디 말씀으로, 그분은 적들을 당황하게 하셨으며, 하느님과의 관계와 국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균형 잡힌 태도를 간결하게 요약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분에 대하여 경탄하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마가 12:17.
2 물론, 여호와의 종들의 첫째 가는 관심사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시 116:12-14)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예수께서 어떤 것들은 카이사르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 때문에 카이사르가 요구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돌려 줄 수 있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 13:7) 현대에 많은 법률가들은 정부의 권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디에서나 사람들과 정부들은 자연법의 구속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3, 4. 자연법, 계시된 법, 인간의 법에 관한 무슨 흥미 있는 해설들이 있습니까?
3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에 관하여 쓸 때 이 자연법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의 창조 이래, 그분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곧 그분의 영원한 권능과 신성까지도 그 만들어진 것들을 통하여 지각되고 명확히 보이므로 그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반응을 보인다면, 자연법은 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양심을 움직이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더 말하였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들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언제나, 비록 율법이 없어도 그 사람들 자신이 그들에게 율법이 됩니다. 그들이야말로 율법의 내용이 자기들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실증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양심이 그들과 함께 증언[합니다].”—로마 1:19, 20; 2:14, 15.
4 18세기에, 영국의 유명한 법률가 윌리엄 블랙스톤은 이렇게 썼습니다. “인류[만큼이나] 오래 된 그리고 하느님께서 친히 정하신 이 자연의 법[자연법]은 물론 다른 어떤 법에 대한 의무보다 중요하다. 자연의 법은 지구 전역에, 모든 나라에 그리고 모든 시대에 구속력이 있다. 이 자연의 법에 배치될 경우 어떤 인간의 법도 아무 효력이 없다.” 블랙스톤은 계속해서 성서에 나오는 “계시된 법”에 관해 말하면서 이렇게 해설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기초 즉 자연의 법과 계시의 법에 모든 인간의 법은 의존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가지 법과 배치되는 어떤 인간의 법도 묵과[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마가 12:17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께서 하느님과 카이사르에 관해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분명히, 카이사르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한계를 정해 놓으신 범위가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사도들에게 예수에 관하여 더는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러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이렇게 올바로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사도 5:28, 29.
“하느님의 것”
5, 6. (ㄱ) 왕국이 1914년에 탄생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꼭 기억해야 합니까? (ㄴ)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봉사자라는 증거를 어떻게 제시합니까?
5 특히 여호와 하느님 곧 전능자께서 그리스도의 메시아 왕국을 통하여 왕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하신 해인 1914년 이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계시 11:15, 17) 이전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의 법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요한 17:16)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느님께 헌신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더는 그들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야 합니다. (시 100:2, 3) 바울이 쓴 바와 같이, “우리는 여호와께 속합니다.” (로마 14:8)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침례받을 때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성직 임명을 받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바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우리가 ··· 봉사자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하셨습니다.”—고린도 둘째 3:5, 6.
6 사도 바울은 또한 “나는 나의 봉사의 직무를 영광스럽게 여깁니다”라고 썼습니다. (로마 11:13) 확실히 우리도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봉사의 직무에 전 시간 참여하든 부분적으로만 참여하든 간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봉사의 직무에 임명하셨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고린도 둘째 2:17) 우리의 지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참으로 좋은 소식의 봉사자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첫째 3:15)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직무는 그의 행실로도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도덕관을 추천하고 실천해야 하며, 가족의 연합을 옹호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며,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로마 12:17, 18; 데살로니가 첫째 5:15)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봉사의 직무가 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카이사르의 명령으로 그러한 것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의 것” 가운데 포함되어야 합니다.
“카이사르의 것”
7. 납세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평판은 어떠합니까?
7 여호와의 증인은 “위에 있는 권위”인 정부 통치자들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 13:1) 그렇기 때문에 카이사르 즉 국가가 합법적인 요구를 할 때, 그들은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에 따라 이러한 요구에 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본이 되는 납세자들 가운데 포함됩니다. 독일의 일간지 「뮌히너 메르쿠어」는 여호와의 증인에 관하여 이렇게 보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연방 공화국 내에서 가장 정직하고 가장 철저한 납세자들이다.”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스탐파」는 이렇게 논평하였습니다. “그들[여호와의 증인]은 누구라도 바람직하게 여길 만한 매우 충성스러운 시민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탈세를 하거나 불편한 법을 피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종들은 ‘그들의 양심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합니다.—로마 13:5, 6.
8. 카이사르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금전적인 세금으로 국한됩니까?
8 “카이사르의 것”은 납세에만 국한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른 것들, 이를테면 두려움 및 존중과 같은 것들도 열거하였습니다. 독일 학자 하인리히 마이어는 자신의 저서 「마태의 복음서 비평 및 해석 편람」(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Gospel of Matthew)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이라는 말을 근거로 ··· 우리는 그것이 단지 시민세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되며, 합법적인 통치에 입각하여 카이사르에게 권리가 부여된 모든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가 E. W. 반스는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출현」에서, 그리스도인은 의무일 경우 세금을 낼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 속한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치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아닌 한, 다른 모든 국가 의무를 받아들인다”고 기술하였습니다.
9, 10. 어떤 그리스도인은 카이사르에게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돌려 주는 일에 관해 어떤 망설이는 태도를 보일지 모르며, 그러나 어떤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까?
9 국가는 정당하게 하느님께 속한 것들을 빼앗는 일 없이, 어떤 것들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카이사르에게 돈을 세금의 형태로 합법적으로 바칠 수는 있지만 그 밖의 것은 어떤 것도 바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은 신권 활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것은 무엇이든 카이사르에게 바치기를 괴로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우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신성한 봉사 외의 다른 일들에도 시간을 보낼 것을 분명히 기대하십니다. (마가 12:30; 빌립보 3:3) 예를 들어, 결혼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데 시간을 바치라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한 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활동이 “주의 일”이 아닌 “세상의 일”임을 언명합니다.—고린도 첫째 7:32-34; 비교 디모데 첫째 5:8.
10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추종자들이 세금을 ‘돌려 주’는 것을 정당하다고 인정하셨으며, 그렇게 돌려 주는 것에는 분명히 여호와께 바쳐진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포함되는데—우리의 생활 전부가 하느님께 바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의 평균 과세액이 수입의 33퍼센트일 경우(일부 나라들은 과세액이 이보다 더 많음), 그것은 일반 노동자가 매년 넉 달분의 자기 소득을 세무서에 납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해서, 노동 연한의 끝에 일반 노동자는 “카이사르”가 요구하는 세금을 버는 일에 약 15년을 바친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학교 교육 문제를 고려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부모에게 자녀들을 최소한 몇 년간 학교에 보낼 것을 법으로 요구합니다. 학교 교육 연수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상당 기간 학교에 보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학교 교육이 대개 유익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녀의 생활에서 얼마나 되는 기간을 학교에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쪽은 카이사르이며,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카이사르의 결정에 따릅니다.
11, 12. (ㄱ) 카이사르는 많은 나라에서 무슨 요구를 합니까? (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병역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11 일부 나라들에서 카이사르가 요구하는 또 다른 것은 병역 의무입니다. 20세기에,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전시에 그리고 일부 나라들에서는 평화의 시기에도 이 마련을 제정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이 의무는, 모든 젊은이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여러 해 동안 혈세라고 불렸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바칠 수 있는 것입니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훌륭한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믿음은 그들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국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종교 백과 사전」(The Encyclopedia of Religion)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를 포함한 초기 교부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생명을 빼앗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점을, 즉 그들이 로마 군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원칙이 있었음을 확언하였다.” C. J. 카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초기 교회와 세계」(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적어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 때[기원 161-180년]까지는, 어떤 그리스도인도 침례받은 후에 군인이 되지 않았다.”
13. 그리스도교국 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병역에 대해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13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성원들은 왜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습니까? 4세기에 있은 급격한 변화 때문입니다. 가톨릭 저술물인 「그리스도교 공의회 역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ouncils)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교의 황제들의 통치 아래 있던 ···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병역과 관련하여 종교적 도덕 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기를 들기를 단호히 거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탈하였다. [기원 314년에 열린 아를의] 종교 회의에서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도입된 변화에 대해 고려하던 중에, 그리스도인은 전시에 군 복무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발표하였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우호적인 군주 아래 교회가 국가와 평화로운 상태에[보조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가르침을 버린 결과로,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자기들의 양 무리에게 나라들의 군대에서 복무할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입장을 취하기는 하였지만 그러하였습니다.
14, 15. (ㄱ) 일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근거로 병역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합니까? (ㄴ) 면제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병역 문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무슨 성경 원칙들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14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서 다수를 따라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헌신하고 침례받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직자들에게 병역을 면제해 주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이 마련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는 실제로 성직자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둘째 4:5)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심지어 전시에도 그러한 면제를 허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역 의무를 시행하는 많은 나라들에서는, 평화시에 성직자들인 여호와의 증인에게 면제를 허용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공적 봉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계속 도울 수 있습니다.
15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성직자들에게 면제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 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경우에 그는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에 따라 개인적인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 6:5) 카이사르의 권위를 고려함과 동시에, 그는 자기가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을 신중히 고려할 것입니다. (시 36:9; 116:12-14; 사도 17:28)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의 표가 동료인 모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임을, 심지어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나 다른 부족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요한 13:34, 35; 베드로 첫째 2:17) 더 나아가, 그는 이사야 2:2-4, 마태 26:52, 로마 12:18, 14:19, 고린도 둘째 10:4, 히브리 12:14과 같은 성구들에 나오는 성경 원칙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 봉사
16. 일부 나라들에서, 카이사르는 병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비군사적 봉사를 요구합니까?
16 그러나 국가에서 성직자들에게 면제를 허용하지는 않지만 일부 개인이 병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들 중 많은 나라는 그러한 양심적인 사람들이 병역 이행을 강제로 하게 하지 않도록 마련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사회에서의 유용한 일과 같은 요구된 시민 봉사를 비군사적 국가 봉사로 여깁니다.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봉사를 할 수 있습니까? 이 경우에도,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을 근거로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17. 비군사적 시민 봉사에 대한 어떤 성서적 선례가 있습니까?
17 성서 시대에는 의무적인 봉사가 실시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역사 서적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유대 주민들에게서 징수하는 세금과 부과금들 외에, 또한 부역[당국이 강요하는 무보수 노역]이 있었다. 이것은 중동에서 오래 된 제도였으며, 그리스와 로마 당국자들에 의해 계속 유지되었다. ··· 신약에도 유대에서의 부역의 예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제도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습과 일치하게, 군인들은 키레네의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고통의 기둥]를 지게 하였다(마태 5:41; 27:32; 마가 15:21; 누가 23:26).”
18. 여호와의 증인은 어떤 비군사적이고 비종교적인 형태의 지역 사회 봉사에 자주 협력합니까?
18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일부 나라의 시민들은 국가나 지방 당국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지역 사회 봉사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이것은 우물을 파거나 도로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특정한 일인 때도 있고, 매주 도로나 학교나 병원 청소에 참여하는 일과 같은 정기적인 일인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민 봉사가 지역 사회를 위한 것이면서 거짓 종교와 관련이 없거나 어떤 면으로든 여호와의 증인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경우, 증인들은 흔히 순응하였습니다. (베드로 첫째 2:13-15) 이런 일은 흔히 훌륭한 증거를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증인들이 반정부적이라는 거짓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때때로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비교 마태 10:18.
19. 카이사르가 일정 기간 비군사적 국가 봉사를 수행할 것을 요구할 경우, 그리스도인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19 그러면 국가가 민간 행정 기관의 감독 아래 실시되는 국가 봉사의 일부로서 시민 봉사를 그리스도인에게 일정 기간 수행하도록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경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양심에 근거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로마 14:10) 카이사르의 요구 조건에 직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a 또한 그 문제를 회중 내의 장성한 그리스도인들과 논의하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개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잠언 2:1-5; 빌립보 4:5.
20. 무슨 질문들과 성경 원칙들이 그리스도인이 비군사적 국가 시민 봉사에 관한 문제를 놓고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20 그러한 연구 조사를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성서 원칙들을 고려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정부들과 권위들에게 ··· 통치자들로서 순종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 합리적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을 온전히 보”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디도 3:1, 2)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제안받은 시민 활동을 조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활동을 받아들일 경우, 그들은 그리스도인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까? (미가 4:3, 5; 요한 17:16) 그 활동은 그들을 일부 거짓 종교와 관련을 맺게 할 것입니까? (계시 18:4, 20, 21) 그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불합리하게 제한할 것입니까? (마태 24:14; 히브리 10:24, 25)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요구된 봉사를 수행하면서도 계속 영적 진보를 할 수 있고, 아마도 전 시간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기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까?—히브리 6:11, 12.
21. 비군사적 국가 시민 봉사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형제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지 간에, 회중은 그 형제를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21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정직한 대답이 그로 하여금 국가 시민 봉사가 권위에 대한 순종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이라고 결론 내리게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그 사람이 내려야 할 결정입니다. 임명된 장로들과 그 외의 사람들은 그 형제의 양심을 온전히 존중하고 계속 그를 좋은 신분의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시민 봉사를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경우, 그의 견해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 역시 좋은 신분을 유지하며, 사랑에 찬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고린도 첫째 10:29; 고린도 둘째 1:24; 베드로 첫째 3:16.
22.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간에, 우리는 무슨 일을 계속 행할 것입니까?
22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존중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존중”을 나타내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 13:7) 우리는 훌륭한 질서를 존중하며 평화롭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시 34:14) 우리는 심지어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 관하여” 기도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받을 때 그러합니다.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려 주는 결과로, 우리는 “경건한 정성을 다하여 진지한 가운데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 첫째 2:1, 2) 무엇보다도, 우리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계속 선포할 것이며, 양심적으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각주]
a 「파수대」 1964년 8월 15일 호 317면 21항 참조.
설명할 수 있습니까?
◻ 카이사르와의 관계와 여호와와의 관계 사이에 균형을 잡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첫째 가는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 우리가 여호와께 드려야 하는 무엇은 결코 카이사르에게 줄 수 없는 것입니까?
◻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정당하게 돌려 주는 것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병역 의무 문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무슨 성구들이 도움이 됩니까?
◻ 우리가 비군사적 국가 시민 봉사를 요청받을 경우 기억해야 할 것들 몇 가지는 무엇입니까?
◻ 여호와와 카이사르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계속 행할 것입니까?
[16, 17면 삽화]
사도들은 산헤드린에 “우리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