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그 목적은 무엇인가?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 내려고 하였다.”—전도 2:3, 「공동번역」.
1, 2. 자기 자신에 대해 합리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왜 그릇된 일이 아닙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음식을 먹고, 피곤할 때 잠을 자며, 벗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균형 잡힌 관심을 나타내는 가운데, 게임이나 수영 또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 밖의 일들을 합니다.
2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러한 관심은 하느님께서 솔로몬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과 조화를 이룹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느니라].” 경험에 근거하여 솔로몬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전도 2:24, 25.
3.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합니까?
3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삶에는 단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어떤 좋은 것을 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고통과 실망과 걱정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너무 바빠서 우리의 삶의 의미에 관해 숙고해 볼 시간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월 스트리트 저널」의 이전 편집인이었던 버몬트 로이스터는 우리의 늘어난 지식과 기술에 관해 언급한 후에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한 가지 묘한 사실이 있다. 인간 자신에 관해, 인간이 처한 딜레마에 관해, 인간이 이 우주 가운데서 차지하는 위치에 관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역사 시초보다 진전을 본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4. 우리 각자는 왜 우리와 관련이 있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기를 원해야 합니까?
4 당신은 이러한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로이스터 씨는 작년 7월에 사망하였습니다. 그 때쯤에는 그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발견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더욱 적절한 질문으로서, 당신이 그러한 답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답을 발견하는 일은 당신이 더 행복하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즐기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통찰력의 으뜸 가는 근원
5. 우리가 삶의 의미에 대한 의문들에 관해 통찰력을 구할 때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우리가 혼자 힘으로 우리의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면, 대부분의 인간 남녀가 그랬던 것처럼, 심지어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거의 혹은 전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혼자 힘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도움을 베풀어 오셨습니다.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며 우주와 역사에 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므로, 통찰력과 지혜의 궁극적인 근원이 아니십니까? (시 90:1, 2) 그분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이 경험한 것을 모두 관찰해 오셨으므로, 우리는 통찰력을 얻기 위해, 지식과 지각력이 제한된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 14:1-3, 「신세」 참조; 로마 3:10-12.
6. (ㄱ) 창조주께서는 필요한 통찰력을 어떻게 베풀어 오셨습니까? (ㄴ) 이 일에 솔로몬이 어떻게 관련됩니까?
6 창조주께서 우리 귀에 대고 삶의 의미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속삭여 주실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분은 통찰력의 근원—그분의 영감받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 32:8, 「신세」 참조; 111:10, 「신세」 참조) 전도서는 이 면에서 특히 가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전도서의 필자에게 영감을 주신 결과,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보다] ··· 뛰어[났습니다].” (열왕 상 3:6-12; 4:30-34) 솔로몬을 찾아왔던 한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에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자기가 들었던 것은 절반도 못 되며 그의 지혜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a (열왕 상 10:4-8) 우리 역시 우리의 창조주께서 솔로몬을 통하여 베푸신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통찰력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7. (ㄱ) 솔로몬은 하늘 아래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활동에 관해 무슨 결론을 내렸습니까? (ㄴ) 무슨 예를 볼 때 솔로몬의 평가가 현실적임을 알 수 있습니까?
7 전도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를 반영하는데, 그 지혜가 솔로몬의 마음과 두뇌에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렇게 할 만한 시간과 자산과 통찰력이 있었으므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그 일들 가운데 대부분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삶의 목적에 관해 생각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영감받은 평가입니다. (전도 1:13, 14, 16) 솔로몬은 솔직하고 현실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서 1:15, 18에 나오는 그의 말을 숙고해 보십시오. 당신도 알다시피, 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은 다양한 형태의 정부를 시도해 왔으며, 때로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진실하게 노력하는 가운데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불완전한 제도의 모든 “구부러진” 것들을 참으로 곧게 한 정부가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그리고 당신도 보아 온 것처럼, 어떤 사람의 지식이 증가하면 할수록, 짧은 수명으로는 일들을 온전히 바로잡는 것이 불가능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점을 깨닫고 많은 사람들은 좌절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8. 무슨 순환들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까?
8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점은, 해가 뜨고 지는 일이나 바람과 물의 움직임과 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계속 반복되는 순환입니다. 그러한 순환들은 모세와 솔로몬과 나폴레옹과 우리의 증조부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옵니다].” (전도 1:4-7)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고대와 현대 사람들은 활동과 희망과 포부와 업적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류 가운데서 명성을 떨쳤거나 아름다움이나 능력에 있어서 탁월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죽어서 아마 잊혀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병적인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증조부와 증조모의 이름도 대지 못하거나 그들이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에 묻혔는지도 말하지 못합니다. 솔로몬이 현실적으로 인간의 사업과 노력을 헛된 것으로 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전도 1:9-11.
9. 우리는 인류가 처한 상황에 관해 현실적인 통찰력을 얻음으로써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9 인류가 처한 기본 상황에 대한 하느님의 이러한 통찰력은,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곧 지나가고 잊혀질 목표나 일에 그릇되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함으로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통찰력은 우리가 삶에서 얻어내고 있는 것들과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들을 평가하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금욕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있게 먹고 마시는 일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도 2:24) 그리고 곧 살펴보겠지만, 솔로몬은 매우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결론은 우리가 창조주와 우리의 관계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분은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고 목적 있는 미래를 갖도록 도와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 12:13.
생활 주기라는 관점에서 본 목적
10. 솔로몬은 동물과 인간을 어떤 면으로 비교하였습니까?
10 전도서에 반영되어 있는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목적을 고려하는 데 부가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솔로몬이 우리가 좀처럼 생각해 보지 않았을 그 밖의 진리들에 현실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는 면에서 그러합니다. 한 가지는 인간과 동물의 비슷한 점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양에 비기셨지만, 사람들은 대개 동물과 비교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한 10:11-16) 그렇지만 솔로몬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들을 이렇게 제시하였습니다.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느니라].”—전도 3:18-20.
11. (ㄱ) 한 동물의 전형적인 생활 주기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습니까? (ㄴ) 당신은 그러한 분석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11 당신이 관찰하고 싶어할 동물, 아마 바위너구리나 토끼 같은 동물에 관해 생각해 보십시오. (신명 14:7, 「신세」 참조; 시 104:18, 「신세」 참조; 잠언 30:26, 「신세」 참조) 아니면 당신은 다람쥐를 머리 속에 떠올릴지 모르는데, 다람쥐는 전세계에 300종 이상 있습니다. 다람쥐의 생활 주기는 어떠합니까? 어미 다람쥐는 새끼가 태어난 후에 몇 주 동안 새끼에게 젖을 먹입니다. 새끼 다람쥐는 곧 털이 자라서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람쥐가 먹을 것을 찾는 법을 배우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을 볼지 모릅니다. 하지만 종종 다람쥐는 단지 어린 시절을 즐기면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 년 정도 자란 후에, 다람쥐는 짝을 찾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람쥐는 집이나 굴을 만들고 새끼를 돌봐야 합니다. 액과와 견과와 씨앗을 충분히 발견할 경우, 다람쥐 가족은 살이 통통하게 찌고 집을 더 늘릴 시간을 갖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안에, 그 동물은 늙게 되고,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기가 더 쉬워집니다. 열 살쯤 되면 다람쥐는 죽습니다.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람쥐의 생활 주기입니다.
12. (ㄱ) 현실적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의 생활 주기도 여느 동물의 생활 주기와 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머리 속에 떠올린 동물을 다음에 보게 될 때 무엇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
12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동물의 생활 주기가 그렇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다람쥐에게 삶의 합리적인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도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태어난 후에 아기로서 돌봄을 받습니다. 그리고 소년 시절에 음식을 먹고 성장하고 놉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성인이 되고, 짝을 찾고, 생활할 장소와 양식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을 찾습니다. 성공할 경우, 그들은 살이 통통하게 찌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집(보금자리)을 더 크게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몇십 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들은 늙습니다. 그전에 죽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찬 70년이나 80년이 지나면 죽을 것입니다. (시 90:9, 10, 12) 당신은 다음에 다람쥐(또는 당신이 머리 속에 떠올린 그 밖의 동물)를 보게 될 때, 진지해지게 하는 이러한 사실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3. 동물이나 사람이나 결국 다 어떻게 됩니까?
13 우리는 솔로몬이 사람들의 삶을 동물의 삶과 비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범사가 기한이 있고 ···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느니라].” 후자의 가능성, 즉 죽음이 사람과 짐승에게 비슷하게 닥쳐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느니라].”—전도 3:1, 2, 19, 20.
14. 어떤 사람들은 일반적인 생활 주기를 바꾸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며,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14 우리는 이 현실적인 평가를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이를테면 자기가 처한 물질적인 상황을 개선하여 부모가 처했던 상황보다 더 향상시키려고 가외의 일을 하면서 노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더 높은 생활 수준에 달하기 위해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해 동안 더 교육을 추구할지 모릅니다. 혹은 그들은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오래 살려고 운동이나 식이 요법에 전념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어느 정도 유익을 가져다 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유익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15.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관한 무슨 솔직한 평가가 타당합니까?
15 솔로몬은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도 6:11, 12) 죽음이 사람의 노력에 비교적 빨리 끝을 가져오므로, 더 많은 물질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주로 더 많은 소유물을 얻으려고 학교 교육을 긴 세월 동안 추구하는 것이 과연 큰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삶이 그토록 짧아서 그림자같이 지나가므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다른 인간적 목표로 방향을 바꾸어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 신후에” 즉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자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훌륭한 이름을 얻어야 할 때
16. (ㄱ) 우리는 동물들이 할 수 없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ㄴ) 다른 무슨 진리가 우리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16 동물과는 달리, 우리 인간에게는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고정된 순환에 불과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사람과 짐승에 관해 솔로몬이 한 이러한 말에 들어 있는 진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 흙으로 돌아가[느니라].” 이 말은 죽음으로 그 사람의 존재가 완전히 끝나 버린다는 뜻입니까? 성서는 인간에게 몸이 죽어도 살아 남는 불멸의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 줍니다. 사람이 영혼이며, 죄짓는 영혼은 죽습니다. (에스겔 18:4, 20) 솔로몬은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도 9:5, 10.
17. 전도서 7:1, 2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합니까?
17 피할 수 없는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말을 고려해 보십시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전도 7:1, 2) 우리는 “모든 사람의 결국”이 죽음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영약을 마시거나 어떤 복합 비타민제를 먹거나 어떤 식이 요법에 따르거나 어떤 운동을 하여, 그 결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고 나서 오래지 않아 대개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우리는 왜 솔로몬이 부활을 믿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18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솔로몬은 현실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분명히 창조주 앞에 훌륭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매우 잘 아셨기 때문에 그와 그의 씨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 18:18, 19; 22:17)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벗이 될 정도로, 그분 앞에 훌륭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역대 하 20:7; 이사야 41:8; 야고보 2:23) 아브라함은 자기의 삶과 자기 아들의 삶이 출생과 죽음의 끝없는 순환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살게 되리라는 보증된 전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불멸의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부활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삭을] 일으키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히브리 11:17-19.
19. 우리는 전도서 7:1의 의미와 관련하여 욥으로부터 무슨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까?
19 바로 그 점이, 어떻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지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됩니다. 솔로몬도 자기보다 앞서 살았던 욥처럼, 인간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그 생명을 회복시키실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들을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욥 14:7-14) 충실한 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여호와]은 부르실 것이며 저는 당신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당신은 그리워하실 것입니다.” (욥 14:15, 「신세」)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죽어 있는 그분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그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의 작품을 한 번 더 보고 싶어하실 것입니다.”—「예루살렘 성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적용하심으로, 창조주께서는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습니다. (요한 3:16; 사도 24:15) 확실히, 사람은 죽는 단순한 동물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 (ㄱ) 어떤 경우에,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더 낫습니까? (ㄴ) 나사로의 부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까?
20 이것은 어떤 사람이 죽는 날까지, 죽은 충실한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는 여호와 앞에서 훌륭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면, 죽는 날이 그 사람이 출생한 날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 큰 솔로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점을 증명하셨습니다. 일례로, 그분은 충실한 사람인 나사로를 일으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누가 11:31; 요한 11:1-44) 상상할 수 있듯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목격한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크게 영향을 받고 하느님의 아들에게 믿음을 두었습니다. (요한 11:45) 당신은 그들이 자기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가운데, 삶에 목적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자기들이 태어나서 얼마 동안 살다가 죽는 단순한 동물과 같을 필요가 없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예수의 아버지를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일과 직접 그리고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이러한 검토를 통해, 당신의 삶에 어떻게 진정한 목적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아니 더 명확히 이해하도록 도움을 받았습니까?
21.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 가운데 무슨 부면을 더 검토하기를 원합니까?
21 하지만 삶에서 참되고 의미 있는 목적을 갖는 것은, 죽음과 그 이후에 다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그 점도 분명히 밝혔는데, 우리는 그 점을 다음 기사에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스바의 여왕에 관한 이야기는 솔로몬의 지혜를 부각시키며, 그래서 그 이야기는 종종 전설이라고 불려 왔다. (열왕 상 10:1-13) 하지만 문맥을 보면 그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것은 사실 무역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문맥 자체가 그렇게 이해되므로, 이 내용의 역사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1988년판), 4권 567면.
기억하십니까?
◻ 동물과 사람은 어떤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까?
◻ 죽음이 인간의 노력과 활동 다수가 헛된 것임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어떻게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까?
◻ 우리가 삶의 진정한 목적을 갖는 것은 누구와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까?
[10면 삽화]
당신의 삶은 어떤 중대한 면에서 동물들의 삶과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