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어의 성의”
트리어는 20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입니다.a 여러 세기 동안, 트리어는 가톨릭 교회와 강한 유대를 유지해 왔습니다. 1966년에 트리어의 대성당에서는 거의 그 도시만큼이나 오래 되었다고 하는 유물을 전시하였습니다. 바로 ‘트리어의 성의(聖衣)’라고 불리는 유물입니다.
이 옷은 길이가 1.57미터에 폭이 1.09미터이고, 반소매가 달려 있습니다. 옷감은 면이며, 한스-요아킴 칸이 그의 저서 「트리어와 그 주변의 성지 순례 안내」(Wallfahrtsführer Trier und Umgebung)에서 기술한 바에 따르면, 이 옷은 필시 겉옷이었을 것입니다. 일부에서 추정하는 바에 의하면, 원래의 옷은—현재의 옷은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부분을 수선하고 다른 천으로 기운 것인데—그 연대가 기원 2세기 심지어는 1세기까지 소급합니다. 이 추정이 정확하다면, 이것은 희귀한 옷으로서 박물관의 흥미 있는 소장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옷은 희귀할 뿐만 아니라 거룩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래서 이 옷에 ‘성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셨던 속옷처럼, 이 옷에는 솔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19:23, 24) 이 “성의”가 실제로 메시아의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옷이 트리어로 오게 된 경위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 참조 서적에서는 이 옷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황후가 그 도시에 기증하였다”고 기술합니다. 이 옷이 트리어에 있다는 믿을 만한 첫 보고가 들어온 것은 1196년이었다고 칸은 지적합니다.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이 옷은, 16세기 이래 비정기적으로 가끔씩 전시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1655년에 이 옷이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트리어 시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던 삼십년 전쟁 직후였습니다. 성지 순례 기념품의 판매는 때때로 많은 수입을 올리게 해주었습니다.
금세기에는 “성의” 순례가 세 차례—1933년, 1959년, 1996년에—있었습니다. 1933년에는 이 성의 순례에 대한 발표가, 히틀러가 독일 제국의 총리로 임명된 날과 같은 날에 있었습니다. 칸은 이렇게 같은 날짜에 두 가지 행사가 겹친 것으로 보아 순례 행사를 둘러싼 상황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제복을 입은 나치스 기병들이 의장대를 이루고 대성당 밖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정렬해 있었습니다. 그 해에 250만 명이 이 옷을 보러 왔습니다.
트리어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아 온 헤르베르트는 1959년과 1996년의 순례 행사를 비교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959년에는 거리에 인파가 몰리고, 거의 모든 길 모퉁이마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있었지요. 올해에는 이 행사가 훨씬 더 조용합니다.” 실제로 1996년에는 이 옷을 보러 온 사람이 70만 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1959년보다 100만 명이나 적은 수였습니다.
왜 이 옷을 보러 가는가?
교회는 이 옷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솔기 없는 옷은 교회 연합의 상징으로 간주됩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이 순례 행사를 발표할 당시에 슈피탈 주교가 한 말을 이렇게 보도합니다. “오늘날 세계가 처해 있는 비상한 상황에 직면하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비상한 해답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증가하는 증오와 만행과 폭력의 물결에 대항해야만 합니다.” 주교는 이 옷이, 이 옷을 보러 간 사람에게 연합을 생각나게 해줄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연합을 생각나게 하는 데 왜 꼭 “성의”가 필요합니까? 이 옷이 손상되거나 찢어지거나 가짜임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렇게 된다면 교회의 연합이 위태로워집니까? 트리어로 순례를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교회 내의 연합을 덜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연합의 필요성을 생각나게 해주는 물건이 필요했다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말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있으며, 보는 것으로 걷고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 둘째 5:7)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연합은 ‘믿음에 있어서 일치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에베소 4:11-13.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