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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충실하라파수대—1985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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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충실하라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 6:6.
1, 2. 나만 아는 비밀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아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읍니까? (사무엘 상 21:7; 22:9)
몇해 전에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이 ‘뉴우요오크 롱 아일랜드’에 사는 자기 오빠에게 전화로 대화를 한 일이 있었읍니다. 이 누이 동생은 종교가 다른 그의 오빠에게 악이 이 땅에서 제거되고 낙원 상태가 회복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읍니다. 이제 이야기가 끝나고 그의 오빠가 수화기를 놓자 “잠간 기다리세요. 한 가지 질문할 것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이 ‘증인’은 매우 놀랐읍니다.
2 그것은 전화 교환수였읍니다. 그 교환수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전화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의 전화 시설로는 그렇게 할 수 있었읍니다. 그 ‘증인’은 자기의 이야기가 그러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에 대하여 기뻐하였고 즉시 방문할 마련을 하였지만, 자기의 대화를 남이 들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매우 놀랐읍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만이 아는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듣는 일이 있읍니다.—전도 10:20.
3. 어떠한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항상 구경거리가 되고 있읍니까?
3 항상 하나님께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 전 4:9) 그는 검투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었읍니다. 마지막 행사 전에 ‘로마’인들은, 싸워서 아마도 죽게 될 사람들을, 옷을 벗기고는 구경시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믿지 않는 친척들, 직장 동료들, 이웃 사람들 그리고 급우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읍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본 것을 근거로 그리스도교에 대해 좋은 견해를 가질 수도 있고 나쁜 견해를 가질 수도 있읍니다.—베드로 전 2:12.
4.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어떠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읍니까?
4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욕망에 동의하여 대처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려 하노라.]” (고린도 후 6:3)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올바른 일을 하려는 우리의 결심을 강화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서 그리스도인 원칙에 대한 시험을 받게 될 때는 어떠합니까?
외모 이상을 보시는 분
5. ‘유대’교 지도자들의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었읍니까?
5 제 1세기에, 많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마태 6:1, 2) 종교 지도자들은 겉은 깨끗하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잔과 같았으며,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았읍니다.—마태 23:25-28; 비교 시 26:4.
6.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실 수 있읍니까?
6 이러한 말씀은, 여호와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교훈하셨읍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 6:6)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들으실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분은 사람이 태 안에서 형성되는 것도 보실 수 있읍니다. 아마 후에 개성을 틀잡아 줄 유전 물질을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시 139:15, 16; 창세 25:23) 그분은 심지어 은밀한 우리의 마음의 경향까지도 읽으실 수 있읍니다. (사무엘 상 16:7; 열왕 상 8:39; 예레미야 17:10; 사도 1:24)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우리가 어떠한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7.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면에서 발전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읍니까?
7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한 바와 같이 심각한 허물과 죄들을 극복하려고 힘쓰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고린도 전 6:9-11; 사도 26:20; 베드로 전 4:1-4)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허물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그러한 잘못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심각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실을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 이웃을 그윽히(혹은 은밀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시 101:5)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은밀히 허는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러한 ‘은밀한’ 죄를 용납하지 않았읍니다.
8. 아무리 남모르게 한 범죄라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모르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8 또한 범죄자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모르시게 자기의 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 스스로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경우에도 사람들이 충실함을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오셨읍니다. ‘아간’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와 악한 ‘가나안’ 사람들인 그 거민들을 멸절시키게 되어 있었읍니다. 다만 은과 금 그리고 구리만 남겨서 하나님의 성소에 간수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여호수아 6:17-19) 그러나 ‘아간’은 유혹에 굴복하여, 비싼 의류 한벌과 얼마의 은과 금을 취하였읍니다. 그는 아마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노획물들을 그의 장막 밑에 숨겼읍니다. 그러나 그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을 속일 수 있었읍니까? 그럴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죄가 폭로되어 그와 그의 집안 식구들이 죽임을 당하게 하셨읍니다.—여호수아 7:1, 16-26.
9.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9 ‘엘리후’는 현명하게도 여호와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욥 34:21, 22)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음을 알 때든지 아무도 우리의 행실을 모른다고 생각될 때든지, 항상 그분의 원칙과 일치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람의 길을 주목”하십니다.
10. (ㄱ) ‘바울’은 남이 모르는 행실에 대하여 어떠한 훌륭한 본을 세웠읍니까? (ㄴ) 우리는 은밀한 허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어떤 면들에 대해 마땅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까?
10 그리스도인은 동료 숭배자들이 알지 못하게 시험을 당하는 수가 있읍니다. ‘바울’이 투옥되었을 때에 그에게 그런 일이 있었읍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고 “성전까지 더럽히려고 하”였다고 고발했던 것입니다. (사도 24:1-6, 공동 번역) ‘바울’은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증언하였읍니다. 역사가들은 ‘벨릭스’가 잔인하고 부도덕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읍니다. (사도 24:10-21, 26) 이 사도는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선물을 주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는 성서의 교훈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뇌물을 주고 자유를 얻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라고 추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뇌물을 주어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실족할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출애굽 23:8; 시 15:1, 5; 잠언 17:23)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추리하지 않았읍니다. 현대의 많은 여호와의 백성도 피와 수음 및 술의 남용에 대한 하나님의 법과 관련된 시험과 같은 여러 가지 시험들을 당하는 일이 있읍니다. 그러한 시험들이 어떻게 당신이나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지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피에 대한 순종이 시험을 받는 경우
11. 피 사용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11 피에 관한 하나님의 법은 결코 새로운 것이거나 불분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조상인 ‘노아’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온 인류에게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읍니다. (창세 9:4)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의미하는 피의 신성함은 ‘모세’의 율법에서 강조되었읍니다. 피는 제단에서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물같이 땅에 쏟”아야 하였읍니다. (레위 17:11-14; 신명 12:23-25) 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금하는 법은 ‘모세’의 율법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읍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 회의라고 할 수 있는 회의에서 (통치체를 형성한) 사도들과 연로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우상 숭배와 음행과 [피가 든 채]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읍니다. 피의 오용은 부정한 성관계처럼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나쁜 것이었읍니다.—사도 15:20, 21, 28, 29.
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피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읍니까?
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피에 관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였읍니다. 그 당시 일부 사람들이 간질병을 “고친다”고 해서 검투사들의 피를 마시는 일들이 있었지만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또한 그들은 피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읍니다. 그것이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때에도 그들은 먹지 않았읍니다. 그때 이래로 여러 신학자들과 그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피를 취함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금하는 하나님의 법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왔읍니다.
13. (ㄱ) 우리가 피에 대한 시험을 당할 때가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리스도인이 피를 받아들이지 않는 주된 이유로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3 근년에 와서 수혈이 보편적인 의료 수단이 되었읍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수혈과 관련된 시험을 당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읍니다. 의사들과 간호원들, 심지어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피를 받아들이도록 강력하게 권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읍니다. 물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수혈 자체가 안고 있는 큰 위험성을 알고 있읍니다. 「타임」 잡지 (1984년 11월 5일)는 “약 십만명의 미국인들이 매년 수혈로 인하여 간염에 걸린다”고 알려 줍니다. 그 간염은 주로 “배설 작용을 통해서만 밝혀 낼 수 있는 신비한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타임」지는 6,500건 이상의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를 보고하면서 그 중 얼마는 “수혈과 관련된 경우들”임을 알려 줍니다. 그 보고는 “궁극적 사망률이 90‘퍼센트’ 이상이지만 감염자 중 거의 반수가 사망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이 피를 거부하는 것은 피가 나쁜 의약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의사들이 수혈을 완전히 안전한 것으로 보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피를 멀리하라’고 명령합니다.—사도 21:25.
14. 피와 관련된 어떠한 “은밀한” 시험을 당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읍니까?
14 당신에게 즉시 수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피에 대한 하나님의 법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겠읍니까?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주위에 있다면 피를 거부함으로 인한 즉각적인 결과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결심이 강화될 것입니다. (비교 다니엘 3:13-18) 그러나 만일 의사나 판사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겠다고까지 하면서 은밀하게 당신에게 수혈하도록 압력을 가한다면 어떠할 것입니까?
15. 일부 의사들과 병원 당국자들은 피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 관하여 어떠한 부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15 여러 나라들로부터의 보고에 의하면, 의사들과 병원 당국자들 및 판사들이 ‘여호와의 증인’은 공개적으로는 수혈을 거부하지만 사적으로 혹은 내적으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고 합니다. 한 예로서 한 판사는 일방적으로 이러한 결론을 내린 적이 있읍니다. “문제의 핵심은 [환자의]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수혈에 대한 사전 승인 문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절하는 데 있다. 환자는 관련된 치료법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환자가 그것의 사용을 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 승인에 서명’하는 것을 약하게 거절한다기보다는, 의료인들에게 수혈 거부와 관련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를 강력히 원한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읍니다.a
16. 만일 누가 몰래 수혈받도록 당신을 강권한다 하더라도 무엇을 잊어서는 안 됩니까?
16 의사들과 판사들은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일부 치료 방법을 거절하면서 “몰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당신도 수혈을 하도록 설복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일부 병원 당국자들은 심지어 비밀히 수혈을 받는 것에 동의한 ‘증인’을 안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었읍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호와의 증인’을 잘 아는 어떤 사람과 관련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종들은 그러한 타협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아’와 관련해서 죄를 범하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나단’을 보내서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너[‘다윗’]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다윗’은 후에 그의 “은밀한” 죄로 말미암은 매우 슬픈 결과를 경험하였읍니다.—사무엘 하 11:27-12:12; 16:21.
17. (ㄱ) 은밀하게 수혈을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읍니까? (ㄴ) 아무도 모르게 수혈 문제를 당했을 때에도 굳건한 태도를 취한 한 자매의 경우를 설명하고 그 결과를 설명하십시오.
17 그리스도인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또한 피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데 동의하도록 은밀히 가해지는 압력을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만일 의사나 판사가 수혈받을 것을 강요할 때, 심지어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음 ‘증인’이 당하게 될 부가적인 어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로드리게즈’ 자매는 전염병 치료를 받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병이 심해졌고 의사는 내출혈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큰 병원으로 급히 가도록 권하였읍니다. ‘로드리게즈’ 자매는 응급실 요원에게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혈을 할 수 없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자매는 나중에 간호원들이 일부 ‘증인’들도 수혈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압력을 가하는 데도 타협하지 않았읍니다. 여러 날 동안 이 자매는 계속 피를 잃었고, 약해져서 마침내 중환자실로 옮겨졌읍니다. 그리고 병원측에서는 주 최고 법원의 한 판사를 불렀읍니다.
여러 달 후에 그 병원의 원형 강당에서 이 판사는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150여명의 의사들에게 연설하였읍니다. 그는 자기도, 처음에는 수혈을 거절하였으나 일단 판사가 관련되자 순순히 응한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면 ‘로드리게즈’ 자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그는 은밀히 법원 명령으로 수혈을 하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책임을 지게 하라’고 그를 설복시키려고 노력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때 이 자매는 어떻게 하였읍니까? 그 판사는 모인 의사들에게 말하기를, ‘로드리게즈’ 부인은 온 힘을 짜내서 그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결코 수혈을 하지 않을 것이니, 자기를 병실에 혼자 있게 하고 나가라고 말하였다고 하였읍니다. 따라서 그 판사는 자기가 환자의 의사를 거스려서 수혈을 하도록 명령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고 설명하였읍니다.
18. 우리는 피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결의를 명백히 해야 하며, 어떠한 결과가 있게 될 수 있읍니까?
18 이 사실은 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임을 명백히 하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러한 단호한 태도를 취했읍니다. (사도 5:29) ‘로드리게즈’ 자매의 경우도 한 ‘증인’이 타협하면 다른 증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었읍니다. 그 자매는 병이 심하고 신체적으로 약한 가운데서도, 이전에 누군가가 은밀하게 하나님의 법을 범했기 때문에 가외의 압력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물론 그러한 범법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에게 숨겨지지 않습니다. (창세 18:25) 다행히도, ‘로드리게즈’ 자매는 아무도 없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타협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후에 그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 그는 같은 의료진들에게 하나님께 충실하려는 자기의 계속적인 결의를 설명하였읍니다.
19. 우리는 항상 무슨 사실을 의식해야 합니까?
19 우리도 우리의 행동을 사람들이 보든지 안 보든지 간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실성을 기뻐하시며 그것에 대해 상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의 표준에 불충실한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사람들의 앞에서의 행위이든지 남모르는 행위이든지 간에 공의롭게 보응하실 것입니다. (시 51:6; 욥 34:24) 우리가 다음 기사에서 고려하겠지만, 그분은 인자하시게도 남이 모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허물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도움이 될 완전한 교훈을 마련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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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허물들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들이라파수대—1985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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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허물들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들이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3.
1. 근심에 싸인 한 아버지는 어떠한 간청을 하였읍니까?
그 소년은 간질 환자였읍니다.a 그는 입에서 거품을 내고 경련을 일으키고, 때로는 물이나 불에 넘어졌읍니다. 걱정에 싸인 그의 아버지는 병을 고치는 것으로 이름난 한 사람을 찾아다녔읍니다.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의 부족이 보이자, 그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고 외쳤읍니다.
2. 우리가 허물을 극복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2 우리는 예수에게 도움을 청한 이 아버지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읍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믿음에 결함이 있음을 시인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예수께서 도와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읍니다. 우리도 그와 같을 수 있읍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허물들—심지어 남이 모르는 허물들이라 할지라도—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셨으므로 우리도 도와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비교 마가 1:40-42) 예를 들면, 그분은 사도 ‘바울’이 풍부함이나 궁핍함에 처하는 데서 생기는 허물들을 극복하도록 도와 주셨읍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갈망할지 모릅니다. 부유한 사람에게는 자기의 성공을 과신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약점이 있을 수 있읍니다. (욥 31:24, 25, 28) ‘바울’은 어떻게 그러한 허물을 극복 혹은 피하였읍니까?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읍니다.—빌립보 4:11-13.
3. 우리의 약점을 정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왜 현명한 일입니까?
3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우리의 허물을 정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한 허물들이 현재로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필자는 여호와에 관하여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시 44:21) 만일 우리가 우리의 허물들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허물들은 우리에게 큰 손상을 입힐 수 있읍니다. 적용되는 원칙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드러나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나중에 드러납니다.” (디모데 전 5:24, 새번역)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유의해야 할 두 가지 보편적인 허물을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성적 욕망이 관련된 은밀한 허물
4, 5. (ㄱ) 성서는 성적 욕망에 대해 어떠한 균형잡힌 견해를 제시합니까? (ㄴ) 성적 욕망에 대한 어떠한 경고가 성경에 나와 있읍니까?
4 하나님께서 주신 훌륭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생식력과 그 욕구가 수반된 결혼입니다. (창세 1:28) 결혼 관계 내에서 표현되는 성적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깨끗합니다. 성서는 자기 자신의 배우자에게서 성적 즐거움을 얻을 것을 권합니다. (잠언 5:15-19) 그러나 성욕은 무절제한 것일 수 없읍니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비교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 식욕이 동한다고 해서 음식을 무절제하게 먹거나, 때와 장소 그리고 먹는 방법에 있어서 자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잠언 25:16, 27.
5 ‘바울’은 한때 결혼 생활을 한 일이 있었을 것이며, 그는 배우자들 사이에 성애(性愛)를 정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7:1-5)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하였을 때 그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들, 곧 음행과 부정과 욕정과 악한 정욕과 탐욕을 죽여 버리시오.” (골로새 3:5, 새번역) 그는 부부 생활의 올바른 한계와 방법을 넘어선 성애의 표현을 의미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사도는 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그릇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 (데살로니가 전 4:4, 5, 난외주) 이러한 영감받은 솔직한 교훈은 결혼한 그리스도인들과 독신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6. 그리스도인들은 왜 마땅히 자독 행위를 피해야 합니까?
6 흔히 그러한 “색욕”(데살로니가 전 4:5)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은 남자나 여자가 자신의 생식기를 자극하여 그에 따른 쾌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음 혹은 자독 행위라고 합니다. 이것은 독신 남녀 중에 매우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기혼자들 사이에도 있는 일입니다. 그 보편성 때문에 많은 의사들은 그것이 정상적이고, 유익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읍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색욕을 좇지 말”라는 하나님의 교훈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교훈을 고려해 봄으로써 그러한 교훈을 하신 이유와 그리스도인들이 그 습관을 극복해야 할 이유를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7. 마태 복음 5:28(신세)은 수음을 멀리해야 할 부가적 이유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여자를 계속 바라보고 그에게 정욕을 품는 사람은 모두 이미 마음으로 그와 간음한 것입니다.” (마태 5:28, 신세) 예수께서는 정욕에 차서 간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흔히 부도덕한 행위의 전조라는 것을 아셨읍니다. 하지만 수음을 용인하는 사람들까지도 그것이 보통 성적 환상(幻想)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십대들과의 대화」(Talking with Your Teenager)라는 책은 청소년들이 “수음의 쾌락에 대해 의식적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 다음에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그들은 아마 난잡한 성적 상황이나 동성의 상대 혹은 선생이나 친척 심지어 [부모]와 같은 나이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상황을 상상할지 모른다. 그들은 성이 관련된 폭력에 관한 환상에 빠질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까?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에 대한 예수의 경고와 ‘색욕을 좇는 것’에 대한 ‘바울’의 교훈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환상과 수음을 어떻게 “정상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겠읍니까? 결코 그럴 수 없읍니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독신자든 기혼자든 간에, 그러한 환상과 자독 행위의 습관을 가졌다면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은밀한 허물을 극복하는 일
8, 9. 어떠한 사실들을 인식하는 것이 수음 습관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8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은밀한 허물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정복하여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그릇”을 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데살로니가 전 4:4, 난외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하여 가치있는 도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9 첫째로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표준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음행이든지 간음이든지 간에 혼외 성관계가 죄라는 것을 명백히 알려 줍니다. (히브리 13:4)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방식이 최선의 것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혼 관계 내에서만, 성애를 표현하는 데서 오는 만족을 얻으려고 해야 합니다. (시 25:4, 5) ‘E. 애트워터’ 저 「사춘기」(Adolescence)라는 책에서 수음에 관하여 지적하기를, 청소년들은 흔히 ‘함구하거나 당황하거나 불안’해 한다고 합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수음에는 성적 관계에 수반되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는 결혼 관계에서 성적 욕망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10. 그러한 행위를 극복하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도움이 되는 단계들은 무엇입니까?
10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교훈함으로써 부가적인 도움을 베풉니다. ‘모든 참된 것과 모든 고상한 것과 모든 옳은 것과 모든 순결한 것과 모든 영예로운 것, 곧 덕스러운 것과 칭찬할 만한 것들을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두시오.’ (빌립보 4:8, 새번역) 색정적인 사진들과 부도덕한 소설들은 ‘순결한 것과 영예로운 것, 곧 덕스러운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이 흔히 수음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수음의 허물을 극복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색정적인 것들을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경험에 의하면, 이전에 수음을 하게 한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이 색정적인 것에 이끌리기 시작한다면, 옳은 것과 순결한 것에 집중하려고 결심할 때 그 욕망은 냉각될 수 있읍니다. 이것은 특히 혼자 있을 때나 캄캄한 환경에 있을 때 중요합니다. 자독 행위의 은밀한 허물은 흔히 그러한 환경에서 범해지기 때문입니다.b—로마 13:12-14.
11. 이 허물을 극복하는 데 유익함이 증명된 다른 부가적인 것들을 설명하십시오.
11 또한 그와 관련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훈계와 일치하게 늘 활동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 5:15, 16) 가까이 지내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에게 가서 적극적으로 할 일에 대한 제안을 받도록 하십시오. (이사야 32:2) 이 허물을 극복한 많은 사람들은 염려해 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발전 상태를 점검해 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그들의 자제력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물론 우리가 도움을 얻고자 가장 가까이 지내야 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 4:6, 7) 얼마 동안 이 허물과 싸워 왔지만 극복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께 능력을 주실 것을 간청하고, 그의 노력을 새롭게 함으로 다시 성공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번에는 더욱 오랫동안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히브리 12:12, 13; 시 103:13, 14.
술의 남용을 극복하는 일
12. 술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12 성서의 한 귀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술’에 관하여 말합니다. (사사 9:13) 술이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의 근원이 된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시 104:15) 그러나 음주가 또한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위험성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된 문제는 과음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이 허물은 매우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술취하는 자들을 회중으로부터 쫓아낼 수 있으며, 그들이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고린도 전 5:11-13; 갈라디아 5:19-21)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이 술 취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술 취하는 일 외에도 술을 마시는 일이 어떻게 은밀한 허물이 될 수 있읍니까?
13. 어떻게 술에 의존하게 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3 어떤 그리스도인이 단지 절도 있게만 술을 마신다 해도 심각한 허물이 될 수 있읍니다. ‘헤인즈’라는 사람의 경험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 지방 회중에서 매우 활동적이었읍니다. 때가 되자 ‘헤인즈’는 장로로 임명되었고, 그 도시의 회중들에서 “기둥”으로 고려되게 되었읍니다. (갈라디아 2:9) 이해할 만하게도,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서 오는 압력을 견뎌야 하였고, 양떼를 돌보는 일에 얼마의 염려를 해야 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11:28) 하지만 그의 직장은 그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읍니다. 회사는 성장하였고, 사장은 그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고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헤인즈’는 여러 날 저녁 매우 긴장하였읍니다. 그는 한 두 잔의 술이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물론 장성한 그리스도인이었기에 그는 과음이나 취하는 일을 피하려고 조심하였읍니다. 긴장을 풀기 위하여 저녁에 얼마의 술을 마시는 일이 있기는 하였지만 낮에는 술을 마실 필요가 없었고 대부분의 식사 때에도 마시는 일이 없었읍니다. 그는 ‘술에 인박인’ 자로 알려지지 않았읍니다.—디모데 전 3:8, 신세.
예기치 않게 ‘헤인즈’는 일반 수술을 받기 위하여 입원을 하게 되었읍니다. 그러자 얼마의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읍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읍니까? 의사들이 ‘헤인즈’가 금단(禁斷)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읍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신체는 술에 의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을 매우 놀라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주위에서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있도록 지원하였읍니다.
14. 술로 인하여 어떻게 비웃음을 받게 될 수 있읍니까?
14 술이 자신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얼마의 사람들은 가족과 벗들이 그들의 마시는 양과 마시는 빈도를 알기를 원치 않으므로 그들의 음주를 감추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술에 의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의 하루 생활에 술이 중요한 것이 되게 하였읍니다. 이러한 두 가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는 과음을 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알코올’ 중독자가 될 큰 위험성이 있읍니다. 이 잠언을 생각하십시오. “포도주는 비웃는 자이고 독한 술은 시끄러운 것이니, 그것으로 인해 길을 잃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잠언 20:1, 신세) 요점은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사람이 시끄럽게 되고 비웃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다른 면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웃을 수 있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모르시게 음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비웃음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15. 고린도 전서 9:24-27에 있는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인이 술을 사용하는 것과 어떻게 관련이 있읍니까?
15 하나님의 영의 열매 중 하나가 자제이며, 우리는 모든 생활 부면에서 자제를 필요로 합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경주자로 비유하였읍니다. 보통 경주에서 경주자는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모든 일에 절제” 곧 자제합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인도 훨씬 더 가치있는 상—생명—을 얻기 위하여 “모든 일에 절제” 곧 자제를 나타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술이 관련된 은밀한 허물 때문에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버림이” 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몸을 쳐 복종하게’ 해야 함을 강조하였읍니다.—고린도 전 9:24-27.
16. 술이 자기의 경우에 허물이 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조사해 볼 수 있읍니까?
16 이 허물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행동 방식을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고린도 전 4:5) 그리하여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음주 습관에 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음주라고 한 것은 반주(飯酒)로 일반적인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 혹은 술기운을 느끼기 위하여 마시는 것을 의미함)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나는 꼭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즐겨 마신다. 그리고 긴장을 풀게 해준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마시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음이나 술에 의존할 위험성이 잠재해 있음을 고려할 때, 한달이나 두달 정도 마시지 않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므로, 한달 동안만 보통 술을 마실 때라도 언제나 술을 마시지 않도록 결심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보통 직장에서 돌아와서, 취침 전에 혹은 사교적인 모임에서 마시던 사람은 마시는 것을 중단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자신의 느낌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읍니다. 만일 그렇게 하기가 어렵거나 또는 긴장을 풀 수 없다면 그는 심각한 허물이 있는 것입니다.
17. 술과 관련된 남모르는 허물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왜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까?
17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일단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술과 관련된 허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극복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는 이미 성경에서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혹은 술]이 맛이 있다”고 추리하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한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은 그러한 자들이 죽음으로 무력하게 끝나게 될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을 사랑하고 기꺼이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며 명철의 길을 행’합니다. (잠언 9:1, 6, 8, 13-1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과 그 끝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알게 하심으로써 은밀한 허물을 극복하도록 부가적인 도움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모르는 행동에 대해 상주신다
18. 우리가 은밀한 허물을 극복해 나감에 따라 무엇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잠언 24:12; 사무엘 하 22:25-27)
18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악행이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드러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삽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합시다. 도리어 우리는 아무 것도 하나님께서 모르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생활합시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 12:14) 우리는 허물을, 그것도 남모르는 허물까지도 극복하기 위해 여호와의 도움을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이 드러나고 “마음의 뜻”이 밝혀질 때를 기다릴 수 있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고린도 전 4:5; 로마 2:6, 7, 16.
[각주]
a 마태 17:14-18; 마가 9:17-24 및 누가 9:38-43은 그의 상태의 원인이 악귀였음을 알려 준다. 성서는 이러한 간질과 신체적 원인의 간질을 구별해 준다.—마태 4:24.
b 무의식 가운데 몽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같이 자연히 일어나는 현상은 의식적 자독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기억하십니까?
◻ 우리가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은밀한 허물들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 어떠한 성경적 교훈이 자독 행위를 멀리해야 함을 알려 줍니까?
◻ 그리스도인은 자독 행위의 습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 성서에서 술을 정죄하지 않는데도, 술을 마시는 것이 어떻게 은밀한 허물이 될 수 있읍니까?
◻ 술이 관련된 은밀한 허물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떠한 지혜로운 단계를 취할 수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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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장성에 따르는 도전을 받아들임파수대—1985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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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장성에 따르는 도전을 받아들임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점에서 자라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에베소 4:15, 새번역.
1, 2. (ㄱ) 어떤 면에서 “태의 열매”는 상급입니까? (ㄴ) 신생아는 어떻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까?
건강한 아기가 열심히 깡총깡총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아기가 재롱부리는 것을 모른 체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아기는 그칠 줄 모르는 흥분과 기쁨을 가져다 주고, 어디를 가나 관심의 중심이 됩니다. 아기가 아무리 일거리를 만들어 놓고 수선을 피워도 부모가 자기들의 ‘자랑이요 즐거움’인 아기를 사랑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과연,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입니다.—시 127:3.
2 그러나, 아기가 사랑스럽다 하더라도, 성장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떠할 것입니까? 부모가 여러 달, 아니 수년 동안 사랑으로 돌보아 주었는데도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면, 분명히 무엇인가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상, 성장이라는 말은 생명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읍니다. 생물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창조 능력과 지혜를 입증해 줍니다.—누가 2:52.
필수적인 영적 성장
3. 예수께서는 어떤 성장을 예언하셨으며, 어떤 성취를 보고 있읍니까?
3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현재 다른 종류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읍니다. 전세계에서 영적 “추수”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 9:37) 예를 들어, 1984 봉사년도 중에 6개 나라가 십만명이 넘는 평균 왕국 전도인 수를 보고하였읍니다. 단지 3년 전인 1981년만해도, 두 나라만이 십만명을 넘었었읍니다. 지난 6년 동안, 여호와의 새로운 증인들이 827,144명이나 침례를 받았으며, 5,000개가 넘는 회중들이 새로 생겼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일을 가속화 시켜 오셨읍니다.—이사야 60:22.
4. 여호와의 백성의 전세계적 성장은 어떤 결과를 산출해 왔읍니까?
4 이러한 수치는, 오늘날 정기적으로 여호와의 백성과 연합하며 전파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매 세명 중 한 명 가량은 지난 6년 내에 침례받았음을 알려 줍니다. 당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진리를 배우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 동료 모두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큰 기쁨을 선사해 온 것입니다. (잠언 27:11) 어린 아기가 첫 걸음을 내디딜 때처럼, 당신이 여호와께 헌신하기 위한 단계를 밟은 것은 흥분을 자아낼 만한 일이었읍니다. 그것은 당신이 앞을 향해 일보 전진한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것은 성장의 표시였읍니다.
5. 각자는 무엇을 자문해 보아야 합니까? 대답을 찾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5 그 이후로는 어떠합니까?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에 찬 관심을 받으면서, 당신은 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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