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피할 것인가?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 21:36.
1. 피하라는 말은 왜 언제나 놀라 흥분케 하는 말이며, 어떻게 이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읍니까?
피하라! 이 말은 언제나 놀라 흥분케 하는 말입니다. 실제적인 위험과 긴급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왕국회관에서 집회를 마치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갑자기 연기로 휩싸이는 일이 있다면 상황은 다를 것입니다. 또 이러한 예를 고려할 수 있읍니다. ‘아파트’ 건물이 화염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맨 윗층 창가에 한 여인이 아이를 팔에 안고 겁에 질려 있읍니다. 그 여자가 뛰어 내리기에는 너무 높고, 아이를 떨어뜨리는 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희망이란 무엇이겠읍니까? 소방관이 사닥다리로 이 조난자들을 구해내거나 아니면 화재 피난 장치로 즉시 피해야 할 것입니다.
2. 피하는 데에는 어떠한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2 사실상 위험을 피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한 가지 이상의 특징이 있읍니다. 거기에는 이러한 요인들이 있읍니다. (1) 긴급성을 가지고 도피해야 할 장소나 위협적인 상황; (2) 보호와 안전을 위해 갈 수 있는 대피 장소의 필요성; (3) 우리의 곤경을 보고 안전한 장소를 제공할 수 있고, 또 그 곳에 이르도록 기꺼이 우리를 돕고자 하는 누구인가의 지시를 청종해야 할 필요성. 이러한 돕는 사람이 극히 중요합니다.
“피할 길을 주시는 분”
3. (ㄱ) 시편 18편의 머리말은 우리로 무엇을 생각나게 합니까? (ㄴ) 시편 18:1-6에서 어떠한 요인들이 강조됩니까?
3 여호와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는 분”으로서 비길데 없는 분입니다. 시편 18편을 열어 ‘다윗’이 지었음을 알려 주는 머릿말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라고 되어 있읍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인간 왕 ‘사울’의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자주 면전에 죽음이 닥쳤다고 느꼈을 것인가를 생각케 하고도 남음이 있읍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울’ 왕이 세번이나 ‘다윗’을 창으로 벽에다 박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상 18:11; 19:10) 그 후 수년 동안 ‘다윗’은 줄곧 도망다녀야 하였으며 ‘사울’에 의해 냉혹한 추격을 당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26:20) 이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다윗’이 시편 18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 감정의 깊이를 잘 상상할 수 있읍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피할 길을 주시는 분, 신세]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1-6절.
4. 어떠한 숭고한 칭호가 여호와께 돌려지고 있으며, 그 칭호의 적합함을 시편 18편은 어떻게 입증합니까?
4 여호와께 돌려지고 있는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라는 칭호는 참으로 숭고하고 위안이 되는 칭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칭호에 합당하심을 증명하셨읍니까? 실로 그러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묘사한 다음에 ‘다윗’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시 18:17-19.
5, 6. (ㄱ) 시편 37편은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을 어떻게 “피할 길을 주시는 분”으로서 확신을 두게 합니까? (ㄴ) 시편 70편에 어떻게 긴급성이 강조되어 있읍니까?
5 ‘다윗’은 시편 전체를 통하여 이 동일한 주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하였읍니다. 네편의 시에서 그는 여호와를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라고 불렀읍니다. (시 18:2; 40:17; 70:5; 144:2, 모두 신세계역 참조)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여호와의 훌륭한 특성과 목적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시편 37편의 일부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웅장한 결론에 유의하십시오.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39, 40절) 이러한 말씀은 확실히 여호와의 백성을 감동시켜 그분께 확신을 두게 합니다.
6 시편 70편은 긴급성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그 때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도움을 필요로 한 때였으며, ‘다윗’은 이렇게 간청하였읍니다.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피할 길을 주시는 분, 신세]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 70:1, 5.
7.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어떠한 합당한 태도를 가지고 여호와께 기도할 수 있읍니까?
7 당신도 그렇게 느낀 일이 있었읍니까? 우리가 여호와의 종들로서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속히 행동’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위안이 되고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그것을 공급하시는 길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자하신 천적 아버지는 참으로 우리에게 꼭 필요할 때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가끔 ‘다윗’의 경우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일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다윗’처럼 여호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그분께 진심으로 아마 “상한 심령”으로 나아갈 수 있읍니다. 우리는 ‘다윗’이 행한 것처럼 이렇게 간청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17.
8. 우리가 “때를 따라” 도움을 받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역할을 하십니까?
8 염두에 두어야 할 또 하나의 요인은 우리의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실 수 있으며, 우리는 대제사장을 통하여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과분하신 친절, 신세]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읍니다. 우리는 진실로 이 동정심있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우리를 “놓아 주”실 수 있으며, 영적 속박으로부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실 수 있읍니다.—히브리 2:15; 4:15, 16.
9. (ㄱ) 예수께서는 다만 언제 “피”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읍니까? (ㄴ) 피할 때 우리는 어떠한 두 가지 점들을 살펴야 합니까?
9 복음서에 의하면, 더 큰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만 “피”하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계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권하셨읍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누가 21:36; 마태 24:3, 신세) 하지만 그 귀절을 자세히 분석하기 전에, 우리는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피하는 일에 관한 특정한 고무적인 기록을 살펴 보고자 하며 우리가 배워 적용해야 할 얼마의 중요한 교훈에 주의를 돌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성공적으로 피하기 위하여 반드시 취해야 할 필수적인 단계와 취해서는 안될 특정한 일들이 있읍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홍수를 피한 일
10, 11 ‘노아’와 그의 가족의 피하는 일은 무엇에 달려 있었읍니까? 그러나 어떤 경우 피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됩니까?
10 고려하고자 하는 첫째 기록은 참으로 고무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 지구상의 악인들을 멸망시킨 일이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할 사람이 있을 것이었읍니까?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세 6:17)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이미 방주를 짓도록 ‘노아’에게 자세한 지시를 하셨읍니다. 세계적 홍수에 대해 경고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와 그의 가족이 다른 특정한 생물들과 함께 파괴적인 홍수에 삼키우지 않고 그것을 피해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하셨읍니다.
11 피하는 일은 무엇에 달려 있었읍니까? 이 점이 다음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읍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 6:22) 하나님께서 명확한 명령 즉 지시를 하실 때 절대적인 순종이 요구됩니다. 지시나 경고 중 어느 것인가 무시할 때 피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 그 결과는 ‘노아’ 시대에 나머지 인류 가족에게 일어났던 결과와 동일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태도와 그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느니라.]” (마태 24:39)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피하는 일이 불가능하였읍니다. 그들이 위협적인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였고 “피할 길을 주시는 분”께서 ‘노아’를 통하여 주신 피할 방법에 대한 지시에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 베드로 전서 3:20에 의하면, ‘노아’ 시대에 “여덟명”이 어떻게 피했읍니까?
12 이 기록에서 특히 유의할 만한 점이 또 한 가지 있읍니다. 정확히 그 “여덟명”이 어떻게 피하였읍니까? 사도 ‘베드로’의 대답을 주의깊이 살펴 보십시오. 그들은 ‘안전하게 물을 통과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3:20, 신세) 그들은 ‘바로 홍수 가운데’ 있었으며, 땅으로부터 옮기어져서, 이를테면 달로 가서 구출을 받은 것이 아니었읍니다. 우리가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오늘날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와 같을 수 있읍니다.
‘롯’이 ‘소돔’으로부터 피한 일
13. ‘롯’은 어떻게 ‘소돔’에 거하게 되었읍니까?
13 다음에 ‘롯’이 ‘소돔’으로부터 피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다. 그 배경을 상기해 보십시오. 모든 가축에게 필요한 충분한 목장이 없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어느 쪽으로 가고자 하는지를 결정할 기회를 주었읍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은 틀림없이 ‘소돔’ 거민의 나쁜 평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 번영의 전망이 그 지역에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 여호와의 동산 같”았기 때문입니다.—창세 13:5-13.
14. 긴급한 경고가 주어졌을 때 (ㄱ) ‘롯’의 사위들과, (ㄴ) 두번의 경우에 ‘롯’ 자신과, (ㄷ) ‘롯’의 아내는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14 얼마 안 있어, 두 천사가 남자로 화신하여 ‘소돔’에 왔읍니다. 그리하여 “이 성을 멸하실” 여호와의 결정을 ‘롯’에게 말하였읍니다. ‘롯’은 사위될 사람들에게 곧 경고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위협적인 상황과 성공적으로 피하는 일에 있어서의 주 요인 중의 하나인 긴급한 도망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 사위들에게는 [‘롯’이] 농담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읍니다.’ (창세 19:12-14, 신세 참조.) 동틀 때에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천사가 ‘롯’을 재촉”하였읍니다. ‘롯’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그는 계속 “지체”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으로 천사들은 신속히 ‘롯’과 그의 아내 및 두 딸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냈읍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말로 그들을 재촉하였읍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또 다시 ‘롯’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여호와의 자비심으로 인해 ‘롯’의 요청은 수락되었고 그는 ‘소알’ 성으로 도망하였읍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는 고의적으로 분명한 지시를 무시하였읍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세 19:15-26.
15. (ㄱ) ‘롯’이 멸망을 피한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었읍니까? (ㄴ) ‘롯’이 피한 일은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해보게 합니까?
15 우리는 이 모든 일로부터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롯’이 성공적으로 피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 달려 있었읍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비를 구하는 간절한 탄원 역시 이에 기여하였읍니다. (창세 18:20-33) 이와 일치하게,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읍니다. (창세 19:29) 더우기 ‘롯’이 거주한 “무법한 자”의 악한 행실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출하셨읍니다. (베드로 후 2:7) 그러나 ‘롯’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서둘러서 ‘소돔’을 떠나지 않았읍니다. 그는 강하게 재촉을 받았으며 심지어 손을 잡아 끌어내지 않으면 안되기까지 하였읍니다. (창세 19:16) ‘롯’의 도망을 숙고해 보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불경건하고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일이 없는가? 그리고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상된 물질적 혜택보다 영적인 일에 더 큰 관심을 기꺼이 두고자 하는가?—마태 6:33.
16. ‘롯’과 ‘아브라함’ 사이의 반응은 어떻게 대조적이었읍니까?
16 신속히 피하지 않은 ‘롯’의 마지못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떠하였는가를 고려해 보십시오. 피하는 요인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그가 지체하였읍니까? 혹은 어떤 다른 제물을 바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읍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즉시 사흘 길을 떠났읍니다. 그는 심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까지 하였으며, 그 때 하나님께서 중재하시어 ‘이삭’을 살게 하셨읍니다.—창세 22:1-14.
17. (ㄱ) 방금 논한 문제를 숙고해 보고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까? (ㄴ) 예수의 추종자로서 현 사물의 제도와 관련된 우리의 입장을 평가하는 데 예수의 어떠한 말씀이 도움이 됩니까?
17 여기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읍니다. 실제적으로 나쁜 행실에 참여하지 않은 데 만족하는 단지 소극적인 방법으로 의로운 길을 추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결코 머뭇거려서는 안되며, 얼마만큼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까지 갈 수 있으며, 그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 모든 물질적 혜택을 얻어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미”를 보려고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이 세상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말씀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 있읍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요한 17:14.
성공적으로 피하는 방법
18. 예수께서는 ‘노아’와 ‘롯’의 기록을 어떻게 연결시키셨으며,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관계되는 일입니까?
18 한 때 예수께서는 ‘노아’와 ‘롯’에 관한 기록을 밀접히 연결시켜 그것들이 다가오는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 대한 예언적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기록들이 예수 당시의 세대에 성취를 보았지만 이 “마지막 때”인 우리 시대에 더 큰 성취를 보고 있읍니다. (누가 17:26-33; 다니엘 12:1-4) 성서 기록에 의하면 “‘롯’의 때”에 사람들은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실 뿐만 아니라 사고 팔고 심고 또한 집을 짓곤 하였읍니다. 매일의 생활에 완전히 몰두하기가 매우 쉬운 오늘날과 얼마나 같습니까! 실로 “기분내키는 대로 하라”, 그리고 출세하라는 유혹과 함께 ‘인플레이션’ 및 국가주의와 같은 일로부터 초래되는 해로운 압력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심합니다.
19.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크신 예언 가운데, 위협이 되는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런 다음에 무슨 권고의 말씀을 하셨읍니까?
19 이제 우리 시대에 발생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크신 예언 가운데 묘사한 사물의 발전 상태를 고려해 보십시오. 그것은 매우 위협적이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며 그것으로부터 피하는 일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민족들이 ···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라.]” 이 일은 “큰 환난” 때에 절정에 이를 것이며, 그 때 ‘사단’의 ‘하늘과 땅’은 제거될 것입니다. (누가 21:10-33; 마태 24:21; 베드로 후 3:7) 그리고 나서 적절한 권고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 21:34-36.
20. (ㄱ) ‘노아’는 어떻게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까? (ㄴ)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떻게 하도록 주의 깊어야 합니까?
20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피할 것입니까? 그 사건 현장으로부터 옮겨지는 방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는 ‘노아’가 자기 가족과 함께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에 주의 깊이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련인 방주 안으로 들어간 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는 어려운 여러 해 동안 여호와 앞에서 승인받을 수 있는 입장을 고수했읍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느니라.]” (창세 6:9) 우리는 ‘노아’와 같이 긴급성을 가지고 피해야 할 위협적인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그 믿음의 사람처럼, “피할 길을 주시는 분”께 주의 깊이 순종해야 하며 이 위기에 하나님의 지시에 순응해야 합니다. 한편 우리는 졸게 하고 머뭇거리는 태도를 초래할 과도한 욕망을 만족시키거나 일상 생활의 염려에 짓눌리는 탐닉 생활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닥칠 때 우리는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간절한 탄원으로 하나님께 기도 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느 쪽에 서 있는가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도 없어야 합니다. 즉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국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마태 6:31-34.
21. 우리는 항상 승인받을 수 있는 입장을 유지하도록 어떠한 격려를 받고 있읍니까?
21 이 위험한 때는 끝까지 인자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승인받을 수 있는 입장을 고수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힘든 일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만일 깨어 있고 순종적이라면 감당하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보장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반드시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인내심을 배양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유혹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사물의 제도의 끝’에 계속 “서”서 충실을 기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고린도 전 10:11-13; 마태 24:3.
22. 피하기 위한 도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2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피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에 있어서 더 알아야 할 점이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분, 겸손하게 그분의 인도를 바라는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신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더욱 살펴보도록 합시다.—베드로 전 5:6, 7.
[11면 삽화]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한 ‘노아’와 그의 가족
[13면 삽화]
‘롯’의 때에 천사의 경고를 청종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