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은 언제부터인가?
“이것을 알아 두시오. 마지막 날에 어려운 때가 옵니다.”—디모데 후 3:1, 새번역.
1, 2. (ㄱ) 우리가 “마지막 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 훌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성서는 베드로 후서 3:13, 14에서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알려 줍니까?
무엇의 “마지막 날”입니까? 그것은 낡고, 만족스럽지 않고, 실패하였고, 희망이 없는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마지막 때”에 이르렀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니엘 12:4) 우리에게 아주 다행스러운 일은 이 낡은 사물의 조직의 완전한 종말이 이 땅을 무서운, 텅 빈,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높은 성공을 약속하는 사물의 의롭고 평화스럽고 새로운 제도의 출발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마지막 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이 “마지막 때”를 예언한 영감받은 책인 성서는 빛나는 표현으로써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베드로 후 3:13, 14.
3, 4. (ㄱ) 사도 ‘베드로’는 어디에서, 언제 그리고 왜 “마지막 날”에 관하여 말하였으며, 누구에게 그것에 관하여 말하였읍니까? (ㄴ) ‘베드로’는 그의 설명 가운데서 어느 예언을 인용하였읍니까?
3 이러한 말을 쓰기 약 30년 전에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날”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때는 기원 33년 오순절 (‘시완’월 6일) 날이었읍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 연설을 했으나 그 성 안의 ‘헤롯’의 전에서 행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그는 오전 9시 전인 이른 아침에, 얼마 전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약 120명의 제자들이 모인 주택가 한 다락방에서 연설하였읍니다. 갑자기 그들이 기대하던 일이 일어났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 그들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이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들은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큰 일”에 관하여 외국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사도 2:1-11) 수천명의 ‘유대’인 경축자들이 이 광경을 구경하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 위하여 모여 들었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영감을 받아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4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마지막 날, 신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도 2:16-21.
5. (ㄱ) ‘베드로’에 의하면 이 “마지막 날”은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ㄴ) ‘베드로’가 그 때 말한 “마지막 날”이 이 낡은 세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였었는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5 하나님께서는 언제 그러한 말씀을 하셨읍니까? 수백년 전에 요엘 2:28-32에 기록케 하셨읍니다. ‘히브리’어로 그 예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라]”(난외주)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마지막 날에”라고 말함으로써 “그 후에”라는 말이 어느 시점에 적용되는지를 알아냈읍니다. 그러므로 ‘요엘’이 예언한지 약 850년이 지나, 그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으며 ‘베드로’는 바로 그 기간에 살고 있었읍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베드로’가 살던 시기가 전세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그리스도인 순교자로서 죽임을 당한지 19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21:18, 19; 베드로 후 1:14) 성경적으로도 이 “마지막 날”이 어떻게 ‘베드로’ 시대부터 오늘날 아직 끝나지 않은 이 환난의 시대를 포함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에 적용된다고 추리할 수 있겠읍니까? 지난 19세기에 걸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를 가진 믿는 자들에게 분명히 영을 부어주어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아들 딸들이 되게 하셨다 할지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읍니다.
6. ‘베드로’가 살던 “마지막 날”은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6 성경은 ‘베드로’가 그 당시 무엇인가의 “마지막 날”에 살았음을 알려 줍니까? 그렇습니다! 그 특정한 “마지막 날”은 예수께서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신 후에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때에 시작되었읍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셨던 것입니다.—사도 10:37, 38.
7. ‘바울’은 히브리서 1:1, 2에서 이 “마지막 날”이 예수께서 30세 되셨을 때 시작되었음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7 그러므로 그 당시 “마지막 날”은 기원 29년 가을에 시작되었읍니다. 그 때 ‘나사렛’의 예수는 30세의 성인이었읍니다. (누가 3:21-23) 이 시기에 대하여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언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사물의 제도, 신세]를 지으셨느니라.”—히브리 1:1, 2.
8. (ㄱ) 침례자 ‘요한’은 “마지막 날”이 가까왔음을 알리는 어떠한 말을 하였읍니까? (ㄴ) 오순절 날의 ‘베드로’의 경고는 왜 때에 적절한 것이었읍니까?
8 그렇습니다. 그 때는 중동의 ‘유대’ 사물의 제도의 “모든 날 마지막”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때 침례자 ‘요한’이 그에게 침례를 받으러 온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태 3:7, 8)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들은 기원 70년에 비유적으로 말해서 쭉정이와 같은 그 민족 성원들을 태워버릴 소멸하는 불을 피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기원 33년 오순절 날 사도 ‘베드로’는 물 침례를 받으려는 회개한 ‘유대’인들에게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사도 2:37-40.
‘유대’인의 율법 언약 및 제도의 “마지막 날”
9. 예수의 침례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일은 무슨 언약에 대한 “마지막 날”을 의미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9 예수께서는 예언자 ‘모세’의 중재로 맺어진 율법 언약하에 탄생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때에 그분은 영적 ‘유대’인 즉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과 맺으실 새 언약의 중보(中保)가 되셨읍니다. 이 일이 ‘유대’ 율법 언약과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 제도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였읍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자기 제자들 사이의 중보로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피의 가치로써 새 언약에 도장이 쳐졌읍니다. 성령이 부어지는 놀라운 일이 있은 오순절 날에 이 증거가 나타났읍니다. 이렇게 해서 새 언약을 맺은 영적 ‘이스라엘’ 자손이 탄생한 것입니다. 즉시 육적 ‘이스라엘’ 자손과의 옛 율법 언약은 도말 즉 취소되었읍니다. (에베소 2:15, 16; 골로새 2:13, 14) 그러나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는 기원 36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3년 반 동안 더 연장되었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0. (ㄱ) 기원 33년 오순절 후에도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은혜가 임시적으로 계속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러나 중동의 ‘유대’인 제도는 언제 끝났읍니까?
10 왜냐 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해로 된 칠십 주” 동안 자기의 언약 백성에게 계속될 것과 490년의 그 기간이 기원 36년에 끝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70주 중간에 순교를 당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9:24-27) 그러나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그 해에 멸망되지 않았으며, ‘유대’인들도 그 해에 ‘유대’도로부터 추방되지 않았읍니다. 이 일은 기원 70년에 일어났으며 그 때 중동의 ‘유대’인 사물의 제도는 끝났읍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을 때 생각하신 “끝”이었읍니다.
11. (ㄱ) 예수께서 감란산에서 제자들에게 예언하실 때 지상의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열국의 지정된 때”가 오순절 날 ‘베드로’가 연설한 지 37년 후에 일어난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처음으로 시작될 것임을 말씀하셨읍니까?
11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는가를 물었읍니다. 무슨 일입니까? 예수께서는 성전을 떠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었읍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태 24:1-3; 마가 13:1, 2; 누가 21:5, 6) 나중에 감람산에서 예언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열국의 지정된 때, 신세]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 21:23, 24)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열국의 지정된 때”가 기원 70년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온 ‘유다’에 거민이 없어질 때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예루살렘’과 그 성전 안팎에 있는 ‘유대’인 사물의 제도의 비참한 끝은 오순절 날 ‘베드로’가 연설한지 37년 후에 일어났읍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일이 “마지막 날” 즉 ‘유대’인 사물의 질서의 “마지막 날”에 발생하고 있었음을 말한 것은 정확하였읍니다.
12. ‘유대’인 제자들이 살고 있는 “마지막 날”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 외에 또 “징조”를 이루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12 마태복음 24:4-22에 나오는 예언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자기의 ‘유대’인 제자들이 살고 있는 그 ‘유대’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있을 “징조”의 전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13. 인간들이 하는 어떠한 일들이 그 “징조”의 일부가 될 것입니까?
13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텔로스]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마태 24:3-16.
14. ‘바울’에 의하면 그 때까지 ‘유대’인들은 어떤 형편에 있을 것이었읍니까?
14 그 때까지는 어떠할 것이었읍니까? 기원 50년경에 쓴 사도 ‘바울’의 편지는 ‘유대’인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우고 있었읍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마침내 그들에게 내린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2:16, 새번역) 중동의 ‘유대’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그런 일이 기대되었읍니다.
15. “마지막 날”의 끝을 모면하려는 ‘유대’인들의 시도는 성공하였읍니까, 혹은 실패하였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5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팔레스타’인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의 끝을 모면하려고 시도하였읍니다. 기원 65년에 그들은 ‘로마’의 군주를 대항하여 일어났읍니다. 이렇게 해서 약 5년간 ‘유대’ 독립 국가를 갖게 되었읍니다. 심지어 ‘유대’ 동전에 이 필사적인 기간을 기념하는 것을 새겨 넣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러나 기원 70년에 체면을 세우려는 ‘로마’인들의 손에 끝(텔로스)은 가차없이 오고 말았읍니다.
16. (ㄱ) ‘바울’이 디모데 후서 3:1-5, 12에서 예언한 것은 기원 29년부터 70년 사이의 ‘유대’인들의 “마지막 날”에 관한 것이었읍니까, 아니었읍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바울’의 예언의 성취로 또 다른 “마지막 날”이 있을 수 있읍니까?
16 사도 ‘바울’이 순교를 당하기 전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투옥되어 있던 기원 65년경, 그는 충실한 선교 반려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읍니다. ‘바울’은 디모데 후서 3:1-5, 12에서 “마지막 날”이라는 기간에 있게 될 도덕과 종교 상태에 관하여 그에게 써 보냈읍니다. ‘디모데’는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었을 때 살아 남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쓴 것은 기원 29년부터 70년 사이의 ‘유대’인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관하여 쓴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로부터 먼 앞날에 있을 마지막 날의 기간에 관하여 쓴 것이며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큰 범위 즉 온 세계에 적용되는 것이었읍니다. 확실히 기원 65년부터 70년 사이에 있던 ‘유대’인의 반란이 디모데 후서 3:1-5에 있는 ‘바울’의 예언의 성취가 아니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황폐케 할 ‘로마’ 군대인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 혹은 성전 근방에 “선 것을” 보자 그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로부터 ‘베레아’로 도망하였읍니다.
어느 “마지막 날”의 길이인가?
17. “마지막 날”이 현재까지 이르는 “그리스도교 시대” 전체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면 때의 길이로 볼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입니까?
17 그러나 일부 성서 연구생들은 이 “마지막 날”이 ‘베드로’가 요엘 2:28-32을 인용한 때인 오순절 날부터 우리의 시대(1981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계속되는 전체 “그리스도교 시대”를 망라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까? 이것입니다. 소위 ‘유대 시대’는 ‘시내’ 산에서 율법 언약이 설정된 기원전 1513년부터 기원 70년까지 계속되었읍니다. 그 기간은 1,582년간이었읍니다. 이와 비교해서 소위 ‘그리스도교 시대’는 만일 성령이 부어져서 최초의 그리스도인 회중이 고대 ‘예루살렘’에 설립된 때인 기원 33년 오순절 날부터 따진다면 그 길이는 얼마나 됩니까? 그 기간은 이미 1,947년 이상이나 지나갔읍니다. 이것은 “마지막 날”이 ‘그리스도교 시대’와 동시에 존속한다면 그 날은 전의 ‘유대 시대’보다 수백년이나 더 긴 것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18. 큰 배교에도 불구하고 전체 “그리스도교 시대”에 성령이 부어지는 일이 계속되어 왔으므로 “마지막 날”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어떠한 주장이 있읍니까?
18 그러나 아마 이러한 반대 질문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부어지는 것은 “마지막 날” 동안에 있을 일이며, 기원 33년 오순절 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배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단함이 없이 성령이 부어져 오지 않았는가? 근년에 와서도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주의 만찬 때에 표상물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논리적으로 보아 사도 행전 2:16-21의 “마지막 날”은 ‘그리스도교 시대’ 전체 즉 중단됨이 없이 기름붓는 영이 부어진 시대 전체와 일치한 것이 되게하지 않는가?
19. 요엘 2:28-32은 먼저 누구에게 적용되었으며,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그들의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 전에 시작되었읍니까, 혹은 그 날의 기간 중이었읍니까?
19 그럼에도 우리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적 은혜의 기간이, 할례받지 않은 비‘유대’인 즉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회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기원 36년에 끝났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읍니다. 또한 ‘유대’ 사물의 제도의 날이 ‘예루살렘’의 그들의 성전과 함께 기원 70년까지 존속하였다는 사실이 있읍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인용한 요엘 2:28-32의 예언은 먼저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었으며, 과연 성서 역사는 기름붓는 영이 부어지는 일이 약속의 땅에서의 ‘유대’ 사물의 제도의 그 “마지막 날” 전이 아니라 그 “날” 기간 중에 있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한 날은 성서 역사상 여섯째 세계 강국인 ‘로마’ 제국의 마지막 날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 여섯째 세계 강국은 기원 1763년에 일곱째 세계 강국(미국 식민지를 포함한 대영 제국)이 등장한 때까지 계속 존재하였읍니다. 이것은 일곱 머리와 열 뿔가진 계시록 13:1-3의 상징적 짐승의 일곱째 머리의 성취였읍니다.
20. 현재 어떠한 국제적 정치 체제들이 그 “마지막 날”에 처해 있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까?
20 오늘날 대영 제국과 그 연방에 속한 나라들 및 그 동맹국인 미합중국이 그들의 “마지막 날”에 처해 있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정치 체제들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국제 기구 즉 152개 회원국을 가지고 있는 ‘국제 연합’도 역시 그 “마지막 날”에 처해 있읍니다. 그렇다면 ‘요엘’의 예언에 나오는 “마지막 날”이 긴 그리스도교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비이치적입니까!
21. 성령에 관한 ‘요엘’의 예언과 관련하여 그와 같은 “마지막 날”의 기간, 복사판이 될 그 기간이 있을 수 없읍니까?
21 사도 ‘베드로’는 실제적인 발전을 근거로 해서 ‘요엘’의 예언을 중동의 ‘유대’ 사물의 제도의 맨 끝에 적용시켰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고 요엘 2:28, 29은 성령이 부어지는 것으로 특징을 이루는 혹은 상응하는 그와 같은 “마지막 날”의 기간 즉 복사판이 없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읍니다.
22. (ㄱ) 요엘 2:28-32의 예언의 모든 특징이 고대 ‘유대’ 제도의 “마지막 날” 동안에 성취되었읍니까? (ㄴ) 제자들이 예수께 질문한 종합적인 질문의 모든 부분이 그 당시 성취되었읍니까, 아니면 무엇이 아직도 증명되어야 합니까?
22 더우기 ‘요엘’이 성령이 부어지는 것과 관련해서 예언한 것들 즉 하늘의 기사, 땅의 징조, 피, 불, 연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로 변하는 일 등은 사도 ‘베드로’가 살던 시대의 “마지막 날”에 모두 성취되지는 않았읍니다. 따라서 이 예언에 영감을 주신 분인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모든 것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 예언의 모든 부분이 실현되어야 할 또 다른 “마지막 날”이라는 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네명의 사도들이 제시한 질문, “주의 임하심[임재, 파로우시아]과 세상 끝[사물의 제도의 결말, 신세]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마태 24:3)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증거는 우리 자신이 “마지막 날”의 현대적 성취의 때에 살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그리고 왜 그러합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 기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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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간의 “마지막 날”이 1,582년간의 ‘유대 시대’의 끝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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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이래 “마지막 날”은 4,000여년 간의 전체 세계 제도의 기간의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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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의 끝 기간이 요엘 2:28, 29을 온전히 성취시키기 위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