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를 삼으심
“‘이스라엘’로 회개케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편에 높이사 임금[수석 대행자, 신세]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사도 5:31.
1.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를 무시한다면 왜 구원을 얻을 수 없읍니까?
우주의 신성 통치자께서 자기의 수석 대행자이며 구주로 높이신 분을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읍니다. 만일 우리가 그 수석 대행자를 무시하면서 그 신성 통치자를 숭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신성 통치자께서는 오로지 그 수석 대행자를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된 새 질서에서의 완전한 생명과 행복으로 구원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살든지 이 중요한 사실을 알 필요가 있읍니다.
2.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이 최근에 내린 어떠한 결정으로 보아 그 법정은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었읍니까?
2 19세기 전에 ‘예루살렘’의 고위 종교 지도자들도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 사람들은 그 나라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을 구성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몇 주일 전에 열렸던 판결 공판에서 그 논란많던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읍니다. 그때 그들 앞에는 그 논란많던 인물의 주된 추종자 열 두명이 서 있었읍니다. 증언석에서 ‘시몬 베드로’와 다른 열 한명의 추종자들은 법정에 말하기를 그들이 사형 선고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수석 대행자와 구주”가 되었다고 하였읍니다. 법원 명령을 받고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3. ‘산헤드린’의 명령을 받고나서 그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열두 추종자들은 순종과 수석 대행자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3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편에 높이사 임금[수석 대행자]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사도 5:29-32.
4. 수석 대행자와 구주로 높임을 받은 분은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행하게 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의 무슨 언약에 따라 행할 것이었읍니까?
4 ‘예루살렘’의 그 대법정이 좋아하든 않든 나무에 달린 예수는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오른 편으로 올리워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신성 통치자를 대신한 수석 대행자와 구주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무엇을 하기 위한 “수석 대행자와 구주”입니까?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죄사함”은 그 신성 통치자께서 자기의 선민과 맺으시겠다고 약속하신 “새 언약”에 따른 것이었읍니다.—예레미야 31:31-34; 누가 22:20.
5. (ㄱ)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누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전파하였읍니까? (ㄴ) 죄의 회개와 용서에 대하여 그리고 ‘산헤드린’ 판사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5 그 ‘예루살렘’ 법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침례자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고 전파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 다음, 침례자 ‘요한’이 투옥된 다음, ‘요한’에게 침례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면서 그 동일한 소식을 전파하셨읍니다. (마태 3:1, 2, 13-17; 4:12-17) 이 일은 ‘예루살렘’ ‘산헤드린’ 법정 충동으로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실 때까지 계속 되었읍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회개해야 하는 문제가 달라졌읍니까? 용서받아야 할 죄는 무슨 죄였읍니까? 법정의 판사들은 ‘시몬 베드로’의 말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볼 이유가 충분하지 않았읍니까? 이제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읍니까? 이 관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초에 근거하고 있읍니까?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6. 어떻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셔야 하셨으며, 어떻게 그 일을 하셨읍니까?
6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이스라엘)과 그의 자손들이 애굽 땅에 215년간 체재하는 동안 그 땅에서 시작되었읍니다. (창세 49:28-33) 애굽의 총리였던 ‘야곱’의 아들 ‘요셉’이 죽은지 얼마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그 민족을 일소해 버리려는 획책도 있었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신 때에 이들 ‘야곱’(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읍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기원전 1513년 ‘니산’월 14일에 애굽에서 새로운 저녁 식사 곧 유월절 식사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다음에 있었읍니다. 그 날 저녁에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양을 통채로 구워서 피뿌린 문을 닫고 집안에서 먹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유월절 양의 희생을 받아들이시고, 그들의 희생의 저녁 식사 후에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 그 희생된 유월절 양을 통하여 그들을 사신 것과 같았읍니다. (출애굽 12:1부터 13:18) 그리하여 그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사무엘 하 7:23.
7, 8. (ㄱ) 하나님께서는 홍해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소유권을 더욱 확립하셨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의 사이에 무엇을 하려고 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제안으로 ‘모세’에게 무슨 말을 하라고 하셨읍니까?
7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모세’의 인도 하에 구속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안전하게 홍해를 통과하여 인도해내셨으며, 그들을 추격해 오던 애굽 군대는 물속에서 죽었읍니다. (출애굽 14:1부터 15:21)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기적으로 구출하심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이 더욱 확립되었읍니다. 그들은 실제 하나님께 속하였읍니다.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음력으로 세째 달(‘시완’월)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라비아’ 반도의 ‘시내’ 산 기슭으로 데려오셨읍니다. 예언자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중보(中保)로서, 그 구속받은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과 관계하러 ‘시내’ 산(‘호렙’ 산)으로 올라갔읍니다. 이제 하나님과 이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 곧 엄숙하고 유효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단계를 취하게 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백성에게 말하라고 지시하신 말씀을 봅시다.
8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 19:3-6.
9.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권리를 근거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거룩한 언약을 맺으셨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셨읍니까?
9 이렇게 하여 그 언약의 의무 조건이 명백히 밝혀졌으며, 언약의 목적도 하나님께 속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한 것임이 구체적으로 밝혀졌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언약을 강요하지 않았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속하였고 홍해의 물에서 구원하였으므로 너희는 당연히 내게 속해 있다. 나는 너희를 내 뜻대로 할 수 있고, 내 말은 법이 되고 너희는 그것을 순종해야만 한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말하라고 ‘모세’에게 지시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구속(救贖)받은 백성이 자기와 거룩한 언약을 맺고 싶어하는지, 그것을 바라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셨음을 알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재적으로, 폭군처럼, 그들에게 언약을 강요하시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의사를 발표하도록 하셨읍니다.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언약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었읍니다.
구속받은 백성의 의사를 기다리다
10. 왜 그 언약에는 중보가 필요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무엇을 존중하셨읍니까?
10 이것은 쌍무 언약, 다시 말하면 쌍방 간의 엄숙한 계약 곧 협정이었읍니다. 그것은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로부터 정죄와 사망을 유전받은, 불완전하고 죄있는 인간 사이의 언약이니만큼, 하나님께서 믿음을 근거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중보(中保)가 필요하였읍니다. 그 중보는 ‘레위’ 사람 ‘아므람’의 아들 ‘모세’였읍니다. (갈라디아 3:19, 20) 그중의 한 편인 하나님은 언약을 맺고자 하는 의향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러나 이제 언약을 맺자고 요청을 받은 상대방의 의사는 어떠하였읍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공식적 언약 체결은 열등한 상대방의 의사 표시에 달려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정도로 인간의 의사를 존중하셨읍니다.
11. ‘이스라엘’은 그 제안된 언약에 대해 어떤 태도를 나타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 표현을 듣기 전에는 그들에게 무엇을 발표하지 않으셨읍니까?
11 그 백성—전 민족적인 장로들이 여기서 그들을 대표하였다—은 제안된 언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성서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니라.]” (출애굽 19:7, 8)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의 의사 표시를 받기 전에는 ‘시내’ 산 꼭대기에서 그 제안된 율법 언약의 기본법인 십계명을 발표하지 않으셨읍니다.—출애굽 19:9부터 20:22.
12. (ㄱ) 그러므로 언약에 대하여 백성들이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었읍니까? (ㄴ) 언약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부를 것입니까? 그리고 로마서 6:13에는 어떠한 묘사적인 표현이 있읍니까?
12 그들이 하나님의 제의를 받아들이든지 배척하든지 자유로이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이 자유 도덕 행위로 ‘열국 중에서 여호와의 특별한 소유’가 되든지 아니면 그 조건이 싫어서 그렇게 되기를 거절하든지 그들 스스로가 결정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이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제의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하였을 때에, 문자적으로, “우리가 하겠읍니다” 하고 대답하였을 때에, 그들은 어떻게 한 것입니까? 그들의 행동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부르겠읍니까? 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맡겼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이겠읍니까?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한 것과 비슷합니까? (로마 6:13) 「미국역」에서는 이 말을 강력하게, “너희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번역하였고, 「신 영어 성서」는 “너희 자신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라”고 하였고, 「개역 표준역」은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였고, ‘모팻’의 「신 번역판」은 “너희는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읍니다.
13, 14. (ㄱ) 여호와께서는 왜 ‘이스라엘’에게 그 언약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제안하셨으며, 그들은 그들의 대답으로써 사실상 무엇을 한 것입니까? (ㄴ) 그들은 언제 그들의 의사를 재확인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이 되었읍니까?
13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력하게 설득시키지 않으셨읍니다. 즉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구속하였고 내가 너희를 홍해에서 구원하였다. 더구나 너희는 나의 벗 ‘아브라함’의 육적 씨이니 너희는 나와 이 언약에 들어와야 한다’ 하고 설득시키지 않으셨읍니다. 물론,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언약 관계를 제의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언약에 들어갈 만한 훌륭한 전망을 제시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하여 그분의 백성이 되든 않든 그 선택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달려 있었읍니다. 따라서 그들이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말하였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언약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여호와께 헌신한 것입니다. 후에, 십계명을 주시고 다음에 ‘모세’에게 법전을 주신 다음, 그 언약은 동물 희생의 피로 체결되었읍니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구속력있는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헌신한 백성이 되었읍니다. 그때에 더 자세히 알게 된 다음에도 백성들은 여호와의 뜻을 행하겠다는 그들의 결의를 재확인하였읍니다. 출애굽기 24:7, 8의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14 “[‘모세’가]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또한 히브리 9:18-20 참조.
15. 그 언약은 얼마나 존속할 것이었으며, 그것은 누구에게도 구속력이 있었읍니까?
15 ‘시내’ 산에서 그 구속 받은 백성과 체결한 그 언약은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만 구속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육적, 혈통상의 후손들에게도 구속력이 있었읍니다. 그것은 “영원한[미확정적인 때까지의, 신세] 언약”이었읍니다. (레위 24:8) 그러므로 언약이 존속하는 한 그들의 모든 육적 후손들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시내’ 산에서 그 언약을 체결한 후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과의 그 언약 관계 안에 있었읍니다. 그들이 억지로 광야를 방황하게 된지 40년째되는 해인 마지막 해에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 헌신한 백성 곧 헌신한 민족이었읍니다.
16. ‘모압’ 평야에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에 머물지 않는 길을 택하였읍니까?
16 그러나 그 마지막 해(기원전 1473년)에 그 헌신한 민족에 속한 사람들 수 천명은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에 머물지 않은 길을 택하였읍니다. 그들은 이 점을 ‘모압’ 평야에서 나타냈읍니다. 이 사실을 민수기 25:1-5에 있는 ‘모세’의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결합하였다, 미국역; 멍에를 같이하였다, 개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결합한, 미국역; 멍에를 같이 한, 개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신세, 모팻역 참조.
17. (ㄱ) 거기서 여호와께 대한 언약을 범한 죄로 몇 명이나 죽었읍니까? (ㄴ) 호세아 9:10에서 여호와께서는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사실을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17 그들이 이렇게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행하겠다던 협정을 범한 결과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24,000명이나 되었읍니다. (민수 25:9; 고린도 전 10:8) 700여년이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호세아’를 통하여 이 충격적인 사건을 언급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씀하신 다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증한 행동을 한 일을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호세아 9:10, 신세, 미국역 참조) ‘모팻’역에서는 “그들이 악명 높은 자 ‘바알’에게 빠졌다”고 하였읍니다. (리서역도 동일)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다른 신에게 갔기 때문에 「개역 표준역」에서는 “그들이 ‘바알’에게 자신을 바쳤다”고 하였읍니다. (「미국 표준역」; 「신 아메리카 성서」; 「신 영어 성서」 참조)
18. (ㄱ) ‘유대’ 출판 협회 번역판은 호세아 9:10에서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불충한 행위를 어떻게 두드러지게 하였읍니까? (ㄴ) 에스겔 14:7, 8에서는 그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로 불충한 행동이 어떻게 두드러지게 표현되었읍니까?
18 그들 불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일하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헌신하였었는데, 이제 그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바알’에게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 불충실한 행동을 두드러지게 하여 ‘유대’ 출판 협회 성서에서는 “그들이 그 수치스러운 것에게로 자신을 분리시켰다”고 하였읍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나잘’입니다. 이 동사는 ‘유대’ ‘나실’인이 자신을 특별히 하나님께로 구별한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읍니다. (민수 6:1-8)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처음 멸망되기 직전 예언자 ‘에스겔’ 때에도 ‘모세’ 시대에 ‘모압’ 평야에서 불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바와 비슷하게 행동한 사람들이 많았읍니다. 그러한 불충실한 사람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중에 무릇 나를 떠나고[나잘]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는 자는] ··· 내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에스겔 14:7, 8.
19. (ㄱ) 이들 불충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브올’에게 한 헌신은 다른 헌신과 관계가 있읍니까? (ㄴ) 민수기 25:3에서는, 그들 자신을 ‘바알브올’에게 분리시켰다고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무엇이라고 하였읍니까?
19 이러한 말 자체가 그들 분리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읍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중보 ‘모세’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들까지 그 언약 안으로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출애굽 24:7; 19:8) 그러나 이제 언약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함으로써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자기들의 헌신을 파하고 우상에게 헌신하였읍니다. 민수기 25:3에서는 ‘이스라엘’이 ‘바알’에게로 자신을 구별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멍에를 같이 하였다, 개표; 미표; 구속되었다, 로더함; 연합하였다, 영a; 모팻; 리서; 예루살렘b; 또한 5절 참조)라고 하였읍니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사실이 경고가 됩니다. (고린도 전 10:6, 11) 우리는 그와같은 심한 잘못은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불충성 곧 반역이 될 것입니다.
새 언약으로 인도하는 길
20. (ㄱ) 첫 언약이 흠없는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므로 이 사실은 무슨 여지를 남겨놓았읍니까? (ㄴ) 어느 예언자를 통해 새 언약이 예언되었으며, ‘모세’는 더 나은 중보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0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헌신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그 언약은 “미확정적인 때까지의 언약”이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중보인 ‘모세’가 불완전하였기 때문에 ‘시내’ 산에서 맺은 그 언약은 흠없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언약, 새 언약이 등장할 여지가 있었읍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계획하셨고, 육적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둘째 언약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주실 것이었읍니다. 새로운 중보를 통하여 이 새 언약이 체결되기 600여년 전에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것을 예언하셨읍니다. 그것은 그 더 나은 중보가 오시기 7세기 전이었읍니다. (예레미야 31:31-34; 히브리 8:6-13) 이 더 낫고 더 큰 중보가 오실 것을 예언자 ‘모세’는 예언하였으며, 그는 장차 올 이 중보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나올 것이라고, 즉 그가 육적 ‘이스라엘’ 사람일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신명 18:15-19; 사도 3:22, 23; 7:37, 38.
21. (ㄱ) 이 더나은 중보는 언제, 어디서, 어떤 선언과 더불어 탄생하셨읍니까? (ㄴ) 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기념하셨으며, 마지막 기념식에서 그는 자신의 신분을 무엇이라고 밝히셨으며, 어떻게 밝히셨읍니까?
21 기원전 2년에 더 나은 중보가,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탄생하셨읍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탄생시에 하나님의 천사는 ‘베들레헴’ 근처의 들에 있던 목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읍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 2:10, 11) “그리스도 주”가 되실 이분은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나셨으므로 육적 ‘유대’인이셨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모세’가 중보였던 그 언약의 율법 하에 나셨읍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말이 갈라디아 4:4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율법 아래 있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기념하셨읍니다. 기원 33년 그의 마지막 유월절 기념식에서 그분은 자기가 약속된 새 언약의 중보임을 밝히셨읍니다. 어떻게 밝히셨읍니까? 그때 그는 주의 만찬이라고 하는 것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충실한 사도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22:20) 예수께서는 그 언약을 체결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피를 흘리셨읍니다.
22. (ㄱ) 예수께서는 언제 새 언약의 중보가 되기위해 활동을 시작하셨읍니까? (ㄴ) 왜 ‘요한’은 처음에 예수에게 침례 베풀기를 거절하였읍니까?
22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예언자 ‘모세’와 같이 새 언약의 중보가 되기위해 활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는 언제 이 일을 시작하셨읍니까? ‘요단’ 강에서 침례받을 때였읍니다. 그는 30세 때에 ‘나사렛’에 있던 자기의 목공소를 떠나 물에서 침례를 받기 위해 침례자 ‘요한’에게 가셨읍니다. 이것은 ‘요한’이 실시한 새로운 종류의 침례였읍니다. 그때까지는 마가복음 1:4(새번역)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이 빈 들에 나타나 회개하는 표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선포했읍니다.” (누가 3:3)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회개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으려고 침례자 ‘요한’에게 가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하셨고 죄가 없으셨읍니다. (히브리 7:26) 그는 나쁜 양심을 가지고 있어서 ‘선한 양심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려고 ‘요한’에게 가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베드로 전 3:21, 신세) ‘요한’은 그 사실을 알았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읍니까?
23.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으며, 그는 율법을 지키셨으면서도 왜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읍니까?
23 예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고 대답하셨읍니다. (마태 3:13-15) 예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이었읍니까? 그는 육적 ‘유대’인으로서 ‘모세’의 언약의 법을 흠없이 지키셨읍니다. 이 점에 대하여 그는 후에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하셨읍니다. (마태 5:17) 물론 ‘이스라엘’과의 율법 언약은 하나님의 뜻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침례시까지 지상 생애 전 기간을 통하여 그 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라는 예수의 말씀은 율법 언약을 초월한 어떤 것, 그러나 율법 언약의 상징적인 면을 성취하는 어떤 것을 뜻하였읍니다. 그가 이것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침례받을 때에 그 일을 시작하셨읍니다.
24. 히브리 10:5-10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심으로써 어떤 예언을 이루셨읍니까?
24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심으로써 실제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언자”들의 말씀을 이루셨읍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0:5-10에서 예수께서 어느 예언을 이루셨는가를 설명하였읍니다. 그 귀절에는 침례받으러 오실 때의 예수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시편 40:6-8을 이루셨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로 하여금 자신을, 자기의 “몸”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였읍니다.
25. (ㄱ) 그러면, 예수의 물 침례는 무엇의 상징이었읍니까? (ㄴ) 어떻게 하여 예수께서는 이미 헌신하였고 대속되셨읍니까?
25 예언이 이 점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행하러 오시지 않고 따라서 침례받기 위해 ‘요한’에게 자신을 내놓지 않으셨다면, 그는 나쁜 양심을 가지게 되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것이 상징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침례는 ‘죄사함을 받기 위한 회개의 상징’은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나아오는, 곧 자신을 제공하는 것의 상징이었읍니다.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예수의 몸을 단번에 희생으로 바치는 것도 포함되었읍니다. 그는 육적 ‘유대’인으로서 이미 ‘모세’의 율법 아래 계셨으며, 그 당시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행하기 위해, 하나님께 헌신한 지상의 유일한 민족의 일원이었읍니다. 그는 또한 ‘마리아’의 첫 아들이었고 또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자기의 장자로 입양하였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 성별되었으며, 하나님께 속하셨읍니다. (출애굽 13:1, 2)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게 하려면 ‘요셉’과 ‘마리아’는 그를 대속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민수 3:13-51; 18:14-16) 그러므로 예수의 침례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상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는 정도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였읍니다.
26. (ㄱ)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자신을 제공하시는 것을 받아드리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육신으로 계시면서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읍니까?
2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기 아들 예수의 제공을 받아드리셨음을 침례받은 예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심으로써 나타내셨읍니다. (마태 3:16, 17) 후에 침례자 ‘요한’은 기름 부음을 받은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광고하였읍니다. (요한 1:28-36; 사도 10:37, 38)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육신으로 계시던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읍니다. 인간 몸으로 지상에 계시던 마지막 날 밤에 그는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셨읍니다. (마태 26:39-44) 그후 오후 세 시경 예수께서는 형주에 달리셔서, 요한 북음 19:30에 기록된 바와 같이, “‘다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신 후 머리를 떨어뜨리고 숨을 거두셨읍니다.” (새번역)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몸을 단번에 바치셨읍니다.
27.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부활을 받으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떻게 그는 온 인류를 소유하게 되셨으며, 죽은 자들에게 어떤 전망이 있읍니까?
2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그의 완전한 인간 몸을 희생으로 제공하신 것과 조화되게 죽으신지 3일만에 죽음으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읍니다. 피와 살을 가진 몸으로가 아니라 영의 몸으로 일으킴을 받으셨읍니다. (베드로 전 3:18; 고린도 전 15:42-45) 부활되신지 40일째 되는 날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어 거기서 온 인류를 위한 자기의 인간 희생의 가치를 하나님께 바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시던 때에, 자기가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0:28)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고 하였읍니다. ‘바울’은 또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고 하였읍니다. (히브리 2:9; 디모데 전 2:5, 6)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인간 희생의 생명의 가치를 하나님께 바치셔서, 인류가 그것을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모든 인류를 대속하셨읍니다. 이 혜택으로 하나님의 하늘 왕국 하에서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 24:15, 신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모두를 소유하십니다.
28. (ㄱ) 이리하여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원과 관련하여 무엇이 되셨읍니까? (ㄴ) 그는 역시 수석 대행자로서 더 큰 무슨 역할을 하십니까?
28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에게 구원의 수석 대행자가 되셨읍니다. 히브리 2:9, 10에서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수석 대행자, 신세]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그리고 히브리 5:9, 10에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이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 역할을 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셨읍니다.
[각주]
a 영의 직역 성서 (1862).
b 예루살렘 성서 (1966).
[53면 삽화]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 여호와께 속했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언약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그 문제에 대해 자기들의 의사를 나타내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