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답게 행하라’
“깨어 있으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시오. 남자답게 행하고, 강건한 자가 되시오.”—고린도 전 16:13, 신세.
1.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는 말로써, ‘빌라도’는 예수를 어떠한 분으로 지칭하였읍니까?
“보라, 이 사람이로다!” 이러한 역사적인 말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궁 앞에 모인 적의에 찬 ‘유대’인 군중에게 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을 소개하였읍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운 ‘유대’인으로서 그때 자색 왕복을 입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읍니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이 약속된 ‘메시야’ 왕이라는 그의 주장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요한 19:5-15) 그러나, ‘빌라도’는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는 말로써, 예수를 전 인류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물로 지칭하고 배척받을 만한 분이 아님을 말한 것이었읍니다.
2. 어떤 사람을 통하여 죽은 인류가 죽음에서 부활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무슨 제물을 근거로 그렇게 되었읍니까?
2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5:21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을 때 그는 창조되던 날에 완전한 사람이었던 ‘아담’과 동등한 이분에 대하여 언급한 것입니다. “사망이 사람[‘안드로포스’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안드로포스’ 예수 그리스도]으로 말미암는도다.” 사도 ‘바울’이 ‘아레오바고’ 즉 ‘마르스’ 언덕에서 ‘아덴’의 법정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에도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사도 17:30, 31) 모든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희생하심으로써, 이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 대속물을 바치실 수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죽은 사람도 죽음에서 부활되어 그분의 천년 왕국 통치 아래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읍니다.
3. 기약이 이르면 누구의 상응하는 대속물에 대한 사실이 증거되어야 하였으며, 지금이 이러한 증거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이 행복한 사실과 일치하게 사도 ‘바울’은 그의 동료 일군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상응하는 대속물, 신세]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디모데 전 2:5, 6)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자신의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는 왕으로 임재해 계시는 오늘날, 바로 지금이야말로 모든 인류에게 그러한 증거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4. ‘빌라도’가 군중에게 예수를 소개하였을 때, 그분의 모습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의 모습과 어떻게 달랐으며, ‘빌라도’가 감명을 받은 것은 왜 마땅한 일이었읍니까?
4 그러나 이제 ‘유다’ 지방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채찍을 맞고 모욕을 당하던 예수를 그의 궁 앞에 모인 악의에 찬 군중들에게 소개하면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고 외쳤던 기원 33년, 그 잊을 수 없는 유월절 날로 되돌아가 봅시다. 그때 예수의 모습은 확실히 비참하였습니다! 그보다 앞서, 바로 같은 주간에 그분이 보여주셨던 모습과는 참으로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읍니다. 그때 그분은 수도에서 즉위식을 하러 가는 선택받은 왕으로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스가랴 9:9의 예언의 소규모적인 성취였읍니다.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마태 21:1-9; 요한 12:12-16) 나중에 유월절 날 예수께서 지존하신 하나님 곧 그의 천적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시어 온갖 학대와 수모를 아무런 불평없이 감수하신 것은 남자다운 특성을 얼마나 멋지게 전시하신 것입니까! 그 당시 총독 ‘빌라도’로서는 온 우주의 시선을 모았던 이 ‘유대’인이 나타낸 불요불굴의 단호한 남자다움에 어찌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읍니까?
5, 6. (ㄱ) 낙원에서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취할 행로에 대한 완전한 본이 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아담’의 행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행로는 인류에게 각기 다른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5 가까운 장래에 지상 낙원에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남자다운 분은 그들의 눈을 계속 고정시키고 마땅히 본받아야 할 본이 되십니다. 창조주께서 ‘에덴’ 동산에 두신 첫 사람 ‘아담’과 같이, 성인이 된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셨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양육받은 그대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모양을 결코 훼손시키지 않으셨읍니다. (창세 1:26, 27) 그러므로, ‘아담’의 불순종적인 행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럽고 순종적인 행로가 전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서로 얼마나 다릅니까!
6 이 점을 간단히 언급하면서 사도 ‘바울’은 지적 수준이 높은 희랍의 ‘고린도’ 시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편지하였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니라.]” (고린도 전 15:22, 23)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아들을 죽음의 상태에 버려두지 않으셨읍니다. 그분 자신의 파기할 수 없는 약속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삼일째 되던 날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심으로써, 죽은 자로부터 부활된 자로서는 최초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셨읍니다.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순종적인 아들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이전에 자기와 함께 누렸던 위치로 회복시키셨읍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죽어 있는 사람들이 다시 지상 생명으로 회복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그의 지상 영역을 보이지 않게 다스리시는 동안, 지상 낙원에서 점진적으로 완전한 인간 생명으로 끌어 올려질 기회를 갖게 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읍니다.
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제 더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시며, 그분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을 것입니까?
7 대속된 인류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그분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식별해 낼 수 있게 임재해 계시는 그 영향은 참으로 명백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금 영의 피조물이 되셨지만 이제는 죽지 않는 불멸성을 입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 ‘고린도’ 회중에게 말하는 가운데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읍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영의 몸, 신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영혼, 신세]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생명을 주는 영, 신세]이 되었[느니라.]” (고린도 전 15:44, 45; 창세 1:26, 27; 2:7) 더 이상 혈육을 가진 인간 피조물이 아니고 이제는 하늘의 능한 영이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을 완전한 인간 생명으로 회복시켜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가족을 위하여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희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야 할 본이 되는 분
8. 무엇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본받아야 할 분이 되시며, ‘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고린도’ 회중 성원들에게 자기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까?
8 지상에 계시는 동안 완전한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분이십니다. 이것은 하늘 왕국에서 그와 함께 연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든, 지상 낙원에서 그분의 완전한 인간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타당하게도 사도 ‘바울’은 고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추종자들에게 이같은 말로 편지할 수 있었읍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 전 10:32–11:1.
9. 고린도 전서 16:13(신세)에서 “남자답게 행하시오”라고 번역된 희랍어 동사는 무슨 명사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이 명사는 무엇을 구별시켜 줍니까?
9 이와 같은 말들은 ‘바울’이 희랍의 ‘고린도’ 회중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맺는 말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계속 말한 권고를 우리가 올바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깨어 있으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시오. 남자답게 행하고 강건한 자가 되시오.” (고린도 전 16:13, 신세) 여기에서 “남자답게 행하시오”라고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그 속격에 있어서 ‘안에르’(an·eʹr)라는 명사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동사 ‘안드로스’(an·drosʹ)입니다. 이 희랍어 명사는 여자, 여성과 구별되는 남자, 남성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 복음 14:21(새번역)을 읽어 보면 이와 같습니다. “먹은 사람은 여인과 어린이들 외에 남자가 오천명 가량 되었읍니다.” (또한 마태 15:38, 새번역; 마가 6:44; 요한 6:10, 새번역 참조)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당신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남자들, 신세]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읍니다. (사도 11:3, 새번역) 고린도 전서 11:3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10. 사도 행전 17:31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도록 정하신 분을 지적하는 데 어떤 희랍어 명사를 사용하였읍니까?
10 고대 희랍의 ‘아덴’에 있는 ‘아레오바고’ 법정 관원들에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안에르’]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희랍어, 파신]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사도 17:31.
11. 사도 행전 14:15에서 희랍어 본문은 남성으로서의 사람과 단순한 인간과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1 사도 행전 14:15(새번역)에서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가 다음과 같이 소리지른 것을 읽게 됩니다. “여러분[남자들, 신세; 희랍어, ‘안드레스’(anʹdres)],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희랍어, ‘안드로포이’(anʹthro·poi)]입니다.” 이와 같이 희랍어 본문은 남성으로서의 사람과 단순한 인간을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12. (ㄱ) ‘고린도’ 회중의 자매들은 어떠한 면으로 “남자답게” 행해야 하였으며, 다른 영어 번역판에는 이곳이 어떻게 되어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는 희랍어 동사 ‘안드리조’가 몇회 나오며, 희랍어 「70인역」에는 몇회나 나옵니까?
12 ‘바울’이 고린도 전서 16:13(신세)에서 “남자답게 행하시오”[‘안드리조’(an·driʹzo)]라고 한 말은 회중의 모든 성원 즉 형제들은 물론 자매들에게도 해당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자매들까지도 그리스도인 회중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자답게 즉 그리스도인 담대함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본문에는 동사 ‘안드리조’가 고린도 전서 16:13(신세)에 단 한번 나오는데, 「신세계역」은 그것을 “남자답게 행하시오”라고 번역하였읍니다. ‘제임즈’ 왕의 「흠정역」은 “남자 같이 처신하시오”라고 번역하였고, 「리빙 바이블」은 “남자 같이 행동하시오”라고 번역하였읍니다. ‘빌립’의 「현대 영어 신약」은 “남자 같이 사시오”라고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나, 희랍어 「70인역」의 희랍어 사본에는 동사 ‘안드리조’가 21회나 나옵니다.
13. ‘차알스 톰슨’의 「70인역」에는 신명기 31:6, 7, 23에서 그 희랍어 동사가 어떻게 번역되어 있읍니까?
13 예를 들어, 신명기 31:6, 7, 23을 ‘차알스 톰슨’이 번역한 것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남자답게 행동하며 강건하여라 ··· 그때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앞에서 그에게, 담대하며 강건하여라고 말하였읍니다. ··· 그리고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담대하고 강건하여라, 이는 네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주께서 그들에게 엄숙히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영국 ‘런던’의 ‘S. 바그스터’와 ‘선즈’ 발행판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번역문들을 참조하라.)
14. ‘차알스 톰슨’의 번역판은 나훔 2:1의 그 희랍어 동사를 어떻게 번역하고 있읍니까?
14 희랍어 「70인역」에서 이 희랍어 동사가 나오는 21회의 경우 중 맨 마지막 것인 나훔 2:1에서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읽을 수 있읍니다. “고통에서 해방된 자가 네가 있는 곳으로 황급히 올라왔도다. 길을 파수하며 허리를 강하게 하라. 전력을 다하여 남자답게 행동하라.” (또한 ‘바그스터’의 「70인역」 판을 참조하라.)a
15. 그러므로, 이미 말한 내용에 비추어, 현대의 다른 번역판들은 고린도 전서 16:13에 나오는 그 희랍어 동사를 남자들에게는 물론 명백히 여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어떻게 번역하고 있읍니까?
15 희랍어 동사 ‘안드리조’의 「70인역」 번역문들을 고려해 보면, 현대의 다른 성서 번역판들이 고린도 전서 16:13(신세)에 나오는 그 희랍어 동사를 희랍어 「70인역」의 번역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번역한 이유를 이해할 만합니다. 예를 들면 이와 같습니다. 「개역 표준역」: “담대하라.” 「오늘날의 영어 역본」: “용감하라.” 「신 국제 역본」: “담대한 자들이 되라.” 「신 영어 성서」: “씩씩하여라.” 「예루살렘 성서」: “용감하라.” 이러한 의미에서 그 희랍어 동사는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 남자들은 물론, 헌신하고 침례받은 여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따라서 ‘바울’이 그 희랍어 동사를 고린도 전서 16:13(신세)에 사용한 것은 참으로 타당합니다. 여성이 비록 “더 연약한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러합니다.—베드로 전 3:7.
16.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자답게 행하라고 말한 뒤에 ‘바울’은 무슨 말을 부가하였으며, 이 권고를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읍니까?
16 사도 ‘바울’은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자답게 행하시오”라고 말한 다음에 “강건한 자가 되시오”라는 말을 부가하였읍니다. 이와 일치하게 ‘바울’은 에베소서 6:10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강건해’지도록 그렇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봉사에 이바지하도록 강화시켜 주실 수 있읍니다. (다니엘 11:32, 흠정역; 미 표준역) 그분은 자기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백성들을 인간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봉사의 존엄성으로 옷입히셨읍니다. 이것은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그들의 양같은 동료들이 “남자답게 행하시오”라는 ‘바울’의 권고를 실행하게 하는 강력한 자극제가 되어야 합니다.
17. 오늘날의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어떠한 면에서 침례자 ‘요한’의 특권보다 더 영예로운 특권을 가지고 있읍니까?
17 오늘날 우리는 제1세기의 침례자 ‘요한’의 특권보다 더 크고 더 영예로운 특권을 가지고 있읍니다. ‘요한’은 말라기 3:1의 예언의 모형적인 또는 소규모적인 성취로 장래에 왕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되는 특권을 누리는 영예를 받았읍니다. (마가 1:1, 2) 여호와 앞에 길을 깨끗이 하도록 보내진 이 “사자”에 관하여 언급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자]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태 11:7-11)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해인 1918년 이래, 오늘날 하늘 왕국의 기름부음받은 후사들 중 남은 자들은 대사들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미래의 왕국 정부의 대사들이 아니라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에 설립되어,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취임하여 계신, 하늘 왕국의 대사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술한 대로 훨씬 더 중대한 의미가 있읍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대사, 신세]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린도 후 5:20.
18. (ㄱ) 1935년 이래로,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의 남은 자들이 발하는,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간구에 누가 호응해 왔읍니까? (ㄴ) 남자들이 왕국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누가 가담해 왔으며, 이 점이 시편 68:11에 어떻게 지적되어 있읍니까?
18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1918년 이래, 그리고 특히 괄목할 만한 해인 1935년 이래 모든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큰 무리가 왕국 후사들 중 남은 자들이 베푸는 그러한 간구에 호응해 왔읍니다. 이처럼 호응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명시된 단계를 밟아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화해하여 이제는 그분과 평화로운 관계에 있게 되었읍니다. 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의 남은 자들의 동료들로서 활동하고 있읍니다. 이들은 아직도 양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간청하는 일을 하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공사들’로 간주될 수 있읍니다. 이들 역시 남녀를 불문하고 남자답고 담대한 태도로 나아가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되도록’ 전파하고 있읍니다. (마태 24:14; 계시 7:9-17) 이것은 시편 68:11에 이렇게 예언된 바와 같습니다.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좋은 소식, 신세]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
[각주]
a 희랍어 「70인역」에서 희랍어 동사 ‘안드리조’가 나오는 그 외의 경우들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여호수아 1:6, 7, 9, 18; 10:25; 사무엘 하 10:12; 13:28; 역대 상 19:13; 22:13; 28:20; 역대 하 32:7; 시 26:1427:14; 30:2531:24; 예레미야 2:25; 18:12; 다니엘 10:19; 미가 4:10; 이러한 모든 성귀들을 원 ‘히브리’어 사본의 번역판들, 이를테면, 위에 참조된 현대 영어 번역판들의 번역문들과 비교해 보라. 예레미야 2:25를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성숙[‘안드리조’(an·driʹzo)]한 자 같이 행동하리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는 그가 이방인을 사랑하여 그들을 따라갔기 때문이다.”—‘차알스 톰슨’
당신은 다음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가?
◻ ‘빌라도’가 예수를 군중에게 “이 사람이로다”라고 소개한 것은 예수에 관하여 무엇을 뜻하였는가?
◻ 이 경우에 예수의 모습은 그보다 앞서 같은 주간에 보여 주신 모습과 어떻게 달랐는가?
◻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 마지막 날에 보여주신 행동으로 그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어떠한 본을 세워 놓으셨는가?
◻ “남자답게 행하시오”라는 사도의 명령은 누구에게 한 말인가?
◻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어떻게 남자답게 행할 수 있는가?
[8면 삽화]
“보라, 이 사람이로다!”
예수에 대한 ‘빌라도’의 소갯말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었는가?
[11면 삽화]
여자들은 어떻게 “남자답게 행”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