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는 충성스러운 자들을 축복하신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충성스러운 자들, 신세]의 영혼을 보전하[시느니라.]”—시 97:10.
1.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우리로부터 충성을 요구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까?
여호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의 창조주이시므로 당연히 지존하신 왕이시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성서에서는 그를 “영원한 왕”이라고 하였읍니다. (예레미야 10:10) 그렇다면 그는 그분이 창조하신 신민으로부터 충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에베소 4:24) 그분께서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들에게 벌주시고 충성스러운 자들을 축복하시는 것이 이치적이 아닙니까?
2.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누구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왜 이것은 그릇된 생각입니까?
2 오늘날 지상에 사는 삼십억 이상의 사람들 가운데서 위대하신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스러워야 할 의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읍니다. 근시안적이게도 사람들은 그들을 직접 다스리는 국가주의적 인간 정부만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 정부에 대한 충성이 다른 모든 일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러한 정부의 명령이라면 그들은 서슴치 않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우월한 분들에 대한 의곡된 견해가 아닙니까? 이것은 고용인이 감독자들의 권위를 주인의 권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 통치자들의 권위는 만유의 왕이신 분의 권위보다 더 우월하지 않습니다.
3. 제1세기의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어떻게 증명하였읍니까?
3 통용 기원 제1세기에 한 집단의 사람들은 인간 통치 기관에서 지존하신 주권자에게 불순종하는 일을 명령하였을 때에 정확한 견해를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대답함으로 그분께 대한 충성을 표시하였읍니다. (사도 5:29) 이와 같은 큰 문제에 있어서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내기는 어렵지 않을지 모르나 사소하게 보이는 것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순진해 보이지만 더욱 심각한 불충성으로 인도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4. “충성”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까?
4 “충성”이라는 말은 통치자나 인도자에 대한 충실한 고착과 헌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그것은 또한 어떤 사물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한 강한 애착 및 신뢰하는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에 대한 충실함을 의미합니다. 성서의 ‘히브리’어 부분에서 “충성”에 대한 ‘히브리’어는 친절을 가리키고 있읍니다. 그 단어에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고려 혹은 친절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히브리’어 단어는 종종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 혹은 “충성스러운 사랑”으로 번역되었읍니다. 그러나 그 단어는 그보다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그것은 어떤 대상과 관련된 목적이 완성된 때까지 그 대상에게 사랑을 가지고 집착하는 친절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친절을 자기의 종들에게 나타내시고 종들도 하나님께 그러한 친절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상호적일 수 있읍니다. 충성은 신민들이 통치자에게 나타낼 수 있고 통치자가 신민들에게 나타낼 수 있읍니다. 여호와에 관하여 사무엘 하 22:26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자비한[충성스러운, 신세]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충성스러움, 신세]을 나타내시[느니라.]” 이 말은 참됨이 증명되었읍니다. 그분은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약속을 이행하시지 않은 예가 결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5.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셨읍니까?
5 고대 ‘이스라엘’ 나라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충성스럽게 행동하셨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 나라는 그분과 독특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분께서는 강한 손으로 그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시고 그들을 ‘아라비아’ ‘시내’ 산 기슭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셨읍니다. 거기에서 그분은 그들과 언약 혹은 협약을 맺으셨읍니다. 그분은 다른 민족과는 그러한 언약을 맺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으며 그들의 보이지 않는 왕으로서 그들을 다스리셨읍니다. 이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느니라.]” (신명 7:6)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들보다 인구가 많고 강력한 원수 나라들에 대한 승리를 주심으로 그들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셨읍니다.—신명 9:1-3.
6. 그는 그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셨으며, 그는 어떻게 그들에게 이 점을 명시하셨읍니까?
6 여호와께서는 적절하시게도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고 그분께 대한 충성을 나타내기를 기대하셨읍니다. 이 사실이 그들에게 그분께서 주신 율법 가운데 명시되어 있었읍니다. 유명한 십계명중 첫 계명은 이러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출애굽 20:2, 3) 그 나라의 어떤 사람이라도 이방 신의 숭배로 돌아서는 것은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왕이신 그분께 대한 심각한 불충성의 행위일 것입니다.
7. ‘이스라엘’인들이 ‘모압’ 평지에 있었을 때에 어떻게 충성에 대한 경고의 말을 들었읍니까?
7 여러 해 후에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때에, ‘모세’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왕께서 그들이 불충실한 행동을 할 때에 그들에게 가할 제재에 대하여 경고하였읍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신명 28:16) 그는 또한 충성스러울 때 그들에게 임하게 될 축복을 언급하였읍니다.—신명 28:1-14.
8.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하고 충성스러워야 할 어떠한 자극제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8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해 주신 일에서 그들이 그분께 대한 순종과 충성의 길로 계속 가야 할 매우 진정한 자극제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는 그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시고 그들이 광야를 사십년 동안 여행하는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셨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기적적인 ‘만나’를 음식으로 주셨고, 물을 주셨고, 그들이 건강을 보호하는 위생적인 법을 주셨고, 심지어는 그 기간 동안에 그들의 신과 옷이 해어지지 않도록 해주셨읍니다.—신명 29:5.
9. ‘모압’인들과 ‘미디안’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모압’ 평지에 있는 것을 보고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9 그들의 광야 생활 사십년 말에 ‘시혼’과 ‘옥’의 왕들이 인도하는 ‘아모리’인들의 공격을 받았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와 이들 원수들을 정복하게 하셨읍니다. (신명 2:32-36; 3:1-13) 이 승리를 보고, 특히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인들이 넓게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모압’인들은 매우 두려워하였읍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였읍니다. (민수 22:1-3) ‘미디안’ 유목민들도 염려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중 연로자들(장로들)은 ‘모압’의 연로자들과 상의하였읍니다. ‘모압’인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음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 (민수 22:4) 그리하여 사소해 보이는 것이 그들의 왕 여호와께 대한 ‘이스라엘’인의 충성의 심각한 시험이 되게 할 사태가 발생하였읍니다.
‘발락’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다
10. 왜 ‘발락’은 ‘발람’의 도움을 청하였으며, 그는 어떻게 청원하였읍니까?
10 ‘모압’ 왕 ‘발락’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스라엘’인들에 대하여 군사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브돌’이라는 멀리 떨어진 도시 즉 분명히 ‘하란’ 근처 북부 ‘유브라데’ 골짜기에 있던 도시에 살던 ‘발람’의 도움을 청하였읍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인은 아니었지만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에 관한 얼마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인정하였읍니다. ‘발락’과 그의 ‘미디안’ 동맹국은 ‘발람’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여, 그가 와서 ‘이스라엘’인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였읍니다. 그들은 ‘발락’의 청원을 이렇게 전달하였읍니다.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민수 22:6) ‘발람’은 여호와께 문의한 후에 이 요청을 거절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민수 22:13.
11. ‘발람’은 어떻게 자기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었읍니까?
11 더욱 존귀한 사자들로 구성된 두번째 사절단이 ‘발락’으로부터 왔읍니다. 그들은 ‘발람’이 만일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많은 상을 주겠다고 제의하였읍니다. 첫 사절단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이미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풍부한 보상에 대한 탐욕적인 욕망이 샘솟아 떠날 허락을 다시 받고자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결정을 하도록 허락하셨지만 ‘발람’이 사절단과 함께 가는 쪽을 택하였을 때 여호와께서는 불쾌하게 여기셨고 천사를 보내어 길을 막게 하셨읍니다. 이 천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느니라.]” (민수 22:22-32) 여호와의 싫어하심에 대한 이러한 증거를 무시하고 ‘발람’이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다고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을 때,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계속 행동하였읍니다.—베드로 후 2:15, 16; 유다 11.
12. (ㄱ) ‘발람’이 ‘이스라엘’인들을 저주하려고 노력한 결과를 묘사하십시오. (ㄴ) 그는 ‘발락’과 ‘미디안’ 장로들에게 어떠한 대안을 제공하였읍니까?
12 ‘모압’에 도착한 후에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세차례나 시도하였지만 매번 여호와께서 ‘발람’으로 하여금 축복을 선언하게 하셨읍니다. ‘발락’이 격노한 것도 당연합니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민수 24:10)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는 ‘발람’의 욕망을 하나님께서 불쾌하게 여기신다는 증거가 더 보여졌는데도 보상에 대한 ‘발람’의 탐욕은 감소되지 않았읍니다. 그는 ‘발락’과 ‘미디안’ 통치자들에게 만일 그들이 ‘이스라엘’인들로 여호와께 불충성하게 만들 수 있다면 여호와께서 직접 ‘이스라엘’인들을 저주하실 것이라고 설득시켰읍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인들을 ‘브올’의 ‘바알’ 숭배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라고 제안하였읍니다. (민수 31:16) 이에 대하여 계시록 2:14은 “‘발람’이 ‘발락’을 가리켜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교묘한 술책이었읍니다.
충성의 시험
13. (ㄱ) ‘발람’은 무슨 약점을 찌를 계획이었읍니까? (ㄴ) 이 약점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이미 사소하게 보이는 일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시험받았읍니까?
13 ‘모압’인들과 ‘미디안’인들은 ‘발람’의 계획을 따름으로 ‘이스라엘’인들의 약점, 즉 그들의 육체의 욕망을 찌를 것이었읍니다. 이 약점으로 인하여 이미 그들은 재난을 당한 경험이 있읍니다.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한번은 그들이 ‘애굽’에 있었을 때에 즐긴 몇 가지 음식을 그리워하였읍니다. 그들이 배가 고팠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좋아한 음식에 대한 육체의 욕망에 굴복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마련하여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불평하였읍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민수 11:4-6) 그들의 이러한 배은망덕한 말은 여호와의 마련을 배척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분노가 그들에게 임하였읍니다. 또 한번은 그들이 ‘만나’가 “박한 식물”이라고 불경한 말을 하였읍니다. (민수 21:5) 음식과 같은 사소한 것에 대하여도 그들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왕께 대하여 불평하였읍니다. ‘발람’은 이러한 육체의 욕망을 이용할 계획이었읍니다. 이것은 사소한 것같이 보였으나 그들을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불충성의 행동으로 인도할 것이었읍니다.
14. 틀림없이 ‘발람’은 ‘모압’인들과 ‘미디안’인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어떻게 말하였을 것입니까? 설명하십시오.
14 ‘발람’은 ‘발락’과 그의 동맹자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이러한 식으로 말하였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춤을 추는 모습은 매혹적이고 남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사십년간 광야에 있었고 그들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 밖에는 먹을 것을 준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이 이 땅의 소산을 보면 입맛을 다실 것이 아니겠읍니까?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이 그들을 따뜻이 접대한다면 이 광야의 방랑자들은 얼씨구나 하고 연회에 와서 ‘모압’의 가장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지 않겠읍니까? 그들을 연회 식탁으로 안내하고 그들에게 ‘모압’의 별미를 맛보게하고 술이 빨리 오르는 ‘미디안’의 포도주로 그들의 정신을 누그러지게 하십시오. 그 관습에 익숙해지면 여자들이 어렵지 않게 그들과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압’ 신들에게 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 16. (ㄱ) ‘이스라엘’ 남자들 중 일부는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의 초대를 받고 어떻게 추론하였을 것입니까? (ㄴ) 그들의 논리는 왜 위험하였읍니까?
15 아름다운 ‘모압’ 여자 및 ‘미디안’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자기들의 축제에 초대하였을 때에 틀림없이 그것은 무해한 호의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추론하였을 것입니다. ‘‘모압’인들과 ‘미디안’인들의 친절한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이 해로울 수 있는가? 함께 음식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은 해롭지 않을 거야. 춤도 피로를 풀어주는 오락에 불과할 테지. 마침 우리는 ‘아모리’ 사람들과 고된 전쟁을 치렀으니까 휴식을 좀 취해야 돼.’ 그러한 논리는 그들을 매우 위태로운 상태로 몰아넣는 행동을 합리화하는 위험한 생각이었읍니다.
16 ‘모압’인들과 ‘미디안’인들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마음을 끄는 진수성찬을 먹는 것은 사소한 일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교제가 문제였읍니다. 이 사람들은 의식상의 매음을 포함하여 ‘바알’ 숭배의 일부로 음란한 의식을 행하는 성숭배자들이었읍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특히 축제의 느긋한 분위기에서 자주 교제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읍니다. 좋은 음식과 후하게 권하는 포도주는 정신을 흥겹게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읍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그들의 연회석 앞에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들이 노출된 옷을 입고 관능적인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유혹되지 않을 것입니까? 그들은 이러한 여자들이 ‘바알’ 숭배의 음란한 의식에 자기네들과 함께 참여하자고 유혹적으로 초대할 때 응하지 않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나쁜 교제는 그들을 그들의 하나님이신 왕께 대한 심각한 불충성의 행동으로 인도할 것이었읍니다.—출애굽 34:12-15; 호세아 4:11.
17. (ㄱ) 그 축제가 단순히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기회 이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 축제가 어떻게 참석한 ‘이스라엘’인들을 올무에 걸리게 하였읍니까?
17 그 이방 사람들의 축제는 모든 면으로 종교적 축제였읍니다. 그들의 음악, 춤, 음란한 의식은 모두 ‘바알’ 숭배의 일부였읍니다. 그 여자들이 그들의 신들을 위하여 춘 춤은 참석한 사람들의 성욕을 자극하기 위한 춤이었읍니다. 이 축제에 참석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 앞에 놓인 유혹에 과연 굴복하였읍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육체의 욕망에 이끌리어 먼저 무해한 듯한 축제로 갔고 다음에 음란과 우상 숭배에 빠졌으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였읍니다. (잠언 7:22)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민수 25:1, 2.
18. 사소한 것같이 보인 초대를 받아들인 ‘이스라엘’ 난봉군들이 자기들의 진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일로 말미암아 결국은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18 ‘발람’의 예언과 같이 그들의 이러한 악과 불충성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는 노하셨읍니다. 그는 치사적인 역병을 일으켜 ‘이스라엘’ 진영을 휩쓸게 하였으며 그 결과 23,000명이 죽었읍니다. (고린도 전 10:8) 민수기 25장은 ‘이스라엘’ 사사들이 몇명의 우상 숭배자들을 죽였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으나 아마 이들은 어림수인 24,000명의 역병 희생자에 포함되었을 것이며,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1,000명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해한 듯이 보이는 축제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재난을 당하였읍니다.
19. ‘이스라엘’ 진영의 역병은 어떻게 끝났으며, ‘호세아’는 여러 세기 후에 어떠한 말로 이 때 있었던 불충성에 대하여 ‘이스라엘’인들에게 상기시켰읍니까?
19 마침내 재앙이 그친 것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시므리’와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창으로 찔렀을 때였읍니다. ‘시무리’는 부도덕한 관계를 갖기 위하여 ‘고스비’를 자기 막으로 데려왔던 것입니다. 필경 ‘시므리’는 불충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주모자였을 것입니다. 매음이 ‘바알’ 숭배의 일부였으므로 ‘시므리’의 행동은 그가 ‘고스비’를 자기의 막으로 데려와 거기에서 그와 성관계를 가졌을 때에 ‘바알’ 숭배를 ‘이스라엘’ 진영에 끌어들인 행동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민수 25:6-8) 여호와께서 여러 세기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에 대한 이 불충성의 행동을 상기시켜 예언자 ‘호세아’를 통하여 이렇게 기록케 하셨읍니다. “저희가 ‘바알’ ‘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호세아 9:10.
20. ‘발람’의 책략은 왜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그 일은 어떻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였읍니까?
20 ‘발람’의 술책은 ‘이스라엘’인들에게 큰 해를 끼쳤지만 성공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왜냐 하면 충성스러운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고자 하는 육체의 욕망을 저항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술책은 ‘미디안’인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충성스러운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미디안’인들을 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민수 25:16-18) ‘미디안’인 도시와 그곳 성벽을 두른 진은 불에 소멸되었읍니다. ‘미디안’의 다섯 왕들, 모든 남자들 그리그 성관계를 가졌던 모든 여자들, 및 ‘발람’은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민수 31:1-20)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인들은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책략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십대까지라도 ··· 영원히”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읍니다.—신명 23:3, 4.
충성스러운 자들은 축복을 받았다
21, 22. ‘비느하스’는 어떻게 여호와께 대한 충성의 본이었으며, 우리는 불충성스러운 자들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21 제사장 ‘비느하스’는 충성스러운 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시므리’와 ‘고스비’에게 민첩한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칭송을 받았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숭배에 대한 열심으로 불탔으며 이것이 그에게 “의로” 간주되었읍니다. 이 때문에 그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 될” 여호와와의 평화의 언약이 주어졌읍니다.—민수 25:11-13; 시 106:30, 31.
22 우리가 오늘날 따르고자 원하는 것은 육체의 욕망에 굴복한 사람들의 본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비느하스’의 훌륭한 본입니다. 그 불충성스러운 자들에게 있었던 일은 우리에게 경고의 본이 됩니다. (고린도 전 10:11) 사소하고 미미해 보일 때에도 그릇된 욕망을 품는 것이 재난으로 인도할 수 있음을 알리는 본입니다.—야고보 1:14, 15.
23. 오늘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어떻게 ‘모압’ 평지에 있었던 충성스러운 ‘이스라엘’인들과 유사하며, 그들은 어떠한 축복을 기대합니까?
23 ‘비느하스’와 같이 여호와께 계속 충성을 유지한 ‘이스라엘’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는 특권을 받은 것과 같이 오늘날 여호와께 충성을 유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신 웅대한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약속된 장엄한 새 시대로 들어가 그의 기름부음받은 왕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을 것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할 것입니다. 그는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이사야 9:7) 이것은 육체의 유혹에 굴복하는 일이 결코 없으며 불충성스러운 행동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자극제가 됩니다!
24.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대하여 무엇을 인정해야 하며, 우리의 입장이 ‘모압’ 평지에 있었던 ‘이스라엘’인들의 입장과 왜 유사합니까?
24 앞에 놓인 이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칠 강력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욕망이 ‘모압’ 평지에 진을 쳤던 ‘이스라엘’ 당시와 같이 오늘날도 인간의 약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방종과 성적 불결함에 빠진 세상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에 빠지도록 하는 유혹이 매우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모압’인들과 ‘미디안’인들과 같이 성숭배에 빠지고 있읍니다. 그들의 서적, ‘쇼’,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는 부패한 정신이 상상할 수 있는 육체의 모든 타락한 욕망을 다루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러한 나쁜 영향력을 저항해야 합니다. 그것에 굴복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읍니다. 불충성으로 인하여 멸망된 24,000명의 ‘이스라엘’인들의 경우와 같이 우리의 생명이 위험하게 될 수 있읍니다.
25. 육체적인 유혹을 당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25 그러므로 사소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유혹을 당할 때 당신은 ‘모압’ 평지에서 있었던 충성의 이 시험을 기억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의 행로를 택하고 시편 97:10에 기록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충성스러운 자들, 신세]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29면 삽화]
‘이스라엘’인들은 ‘미디안’인의 호의의 표시로 보이는 초대를 받아들임으로 유혹을 받아 참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