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 처분—어떻게 볼 것인가?
“오 여호와여 ··· 누가 당신의 성산에 거할 것입니까? 허물없이 행하며 의를 실천하[는 자입니다.]”—시 15:1, 2, 신세.
1,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숭배하는 자들이 자기의 표준을 옹호할 것을 기대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거룩하십니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하여 자비로우시고 이해심이 많으시지만 자기를 숭배하는 자들이 자기의 의로운 표준을 옹호하려고 함으로써 거룩함을 반영하기를 원하십니다.—시 103:8-14; 민수 15:40.
2 배교, 간음 또는 살인과 같은 일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고의적으로 범한 ‘이스라엘’인들은 끊어짐 즉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민수 15:30, 31; 35:31; 신명 13:1-5; 레위 20:10) 이처럼 하나님의 이치적이고 공의로운 표준을 엄수하는 것이 회중의 순결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인들에게 유익하였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타락한 일을 번지게 하는 사람을 제지하는 역할을 하였읍니다.
3. 회당으로부터 추방된 ‘유대’인의 상황은 어떠하였읍니까?
3 기원 제 일 세기에 ‘로마’ 통치하의 ‘유대’인들은 사형을 집행할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요한 18:28-31) 그러나 율법을 범한 ‘유대’인을 회당으로부터 추방할 수는 있었읍니다. 이 엄한 형벌이 주어지는 결과로 다른 ‘유대’인들은 추방된 사람을 멀리하거나 피하였읍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생활 필수품을 파는 일 외에는 상거래까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a—요한 9:22; 12:42; 16:2.
4, 5. 그리스도인 회중은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어떻게 다루게 되어 있었읍니까?
4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된 후, ‘유대’인 나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대치되었읍니다. (마태 21:43; 사도 15:1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여호와의 의를 옹호할 것이 기대되었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 전 1:14-16)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그리스도인 회중의 순결성을 보호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불명예를 돌리고 회중을 위태롭게 하는 행로를 고집하는 사람을 거절 즉 추방하는 마련을 설정해 놓으셨읍니다.
5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고하였읍니다. “분파를 일으키는 자는 한두번 권고한 뒤에 물리치시오. 그대가 아는 대로 이런 사람은 이미 나쁜 길에 빠져서 죄를 지으며(짓고 있으며, 신세)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도 3:10, 11, 새번역) 그렇습니다, ‘디도’와 같은 영적 장로들은 우선 죄를 범한 자를 사랑스럽게 도우려고 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장로들의 도움에 좋은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계속 ‘죄를 짓’는 행로를 걷는다면, 그들은 장로들의 위원회를 소집하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할’ 권위를 가지고 있읍니다. (고린도 전 5:12, 새번역)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백성의 순결성을 사랑한다면 “안에 있는” 사람들인 회중은 그 사람을 거절해야 합니다.
6.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추방하는 것이 정당하고 합당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6 제 일 세기에 얼마의 그러한 범죄자들이 있었읍니다. 그런 유의 사람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었으며, 이들은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 자들이었읍니다. ‘바울’은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 부언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1:19, 20) 이 두 사람을 추방하는 것은 일종의 엄한 응징 또는 징계였으며, 그들이 거룩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독을 돌리지 않도록 가르치는 하나의 징벌이었읍니다. (흔히 “징계”라고 번역된 이 기본적인 희랍어 단어가 사용된 누가 복음 23:16, 신세계역을 비교하라.) 이 모독자들은 ‘사단’의 권세로 넘겨져서 ‘사단’의 영향 아래 있는 세상의 어두움 가운데로 던져지는 것이 마땅합니다.—고린도 후 4:4; 에베소 4:17-19; 요한 1서 5:19; 비교 사도 26:18.
추방당한 자들을 대하는 방법
7, 8. 추방된 사람에 대한 우리의 행실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읍니까?
7 하지만 이전에는 한 성원이었으나 지금은 추방당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얼마의 질문이 생길 수 있읍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고 의롭고 바르다고 확신할 수 있는 대답과 지시를 그분의 말씀 가운데 마련해 놓으셨읍니다.—예레미야 17:10; 신명 32:4.
8 한때 ‘고린도’ 회중의 한 남자가 부도덕한 일을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었으며 분명히 회개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고 편지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온 덩어리에 퍼져 부패케 할 수 있는 작은 누룩과 같기 때문이었읍니다. (고린도 전 5:1, 2, 6) 그러나 그가 일단 추방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그를 이웃간에 혹은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세상의 일반 사람처럼 대해야 하였읍니까?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였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9. 일반적으로 불의한 사람들을 대하는 데 관한 ‘바울’의 교훈은 무엇이었읍니까?
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린도 전 5:9, 10) ‘바울’은 이 말로써 일상사에서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식을 결코 인식하거나 따르고 있지 않음을 현실적으로 인정하였읍니다. 그들은 음행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일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근한 동료들로 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사람들 가운데 살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으며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에서 이들과 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10, 11. 그리스도인들은 왜 추방당한 범죄자에 대하여 달리 대해야 합니까?
10 ‘바울’은 다음 귀절에서 이 상황을 대조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한때는 그리스도인 “형제”였으나 범죄로 인하여 회중으로부터 추방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린도 전 5:11.
11 추방당한 자는 단순히 하나님을 모르거나 경건한 생활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그는 진리와 의의 길을 안 후에 그 길을 떠났으며 추구한 죄를 회개하지 않으므로 추방당할 정도에까지 이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달리 취급되어야 합니다.b ‘베드로’는 그러한 이전의 그리스도인과 “거리의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하여 설명하였읍니다. 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 ···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 후 2:20-22; 고린도 전 6:11.
12. (ㄱ) “절교”라는 뜻의 “제명”이란 단어는 왜 적절합니까? (ㄴ) 초기에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범죄자를 어떻게 다루었는가에 대해 역사는 무엇이라고 알려 줍니까?
12 그렇습니다, 성서는 회중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을 벗으로 삼거나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절교(絶交)”를 의미하는 “제명”이라는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러한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추방하고 그에 따라 그를 멀리하는 것을 나타내는 적절한 말입니다. 그들이 추방당한 사람과 여하한 영적 또는 사교적 수준에서도 사귀기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표준에 대한 충성과 고린도 전서 5:11, 13에 있는 그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해 생각한 동일한 방법으로 그러한 사람을 대하라는 예수의 충고와 일치합니다. 사도들이 죽은 이후 얼마 동안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이 성서의 방법을 따랐음이 분명합니다.c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을 따르는 교회들이 얼마나 됩니까?
스스로 이탈하는 자들
13. 어떤 사람이 약해져서 무활동이 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 그리스도인이 아마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또는 박해로 인하여 영적으로 약해질 수 있읍니다. (고린도 전 11:30; 로마 14:1) 이러한 사람은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읍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읍니까? 예수께서 체포당하신 날 밤에 사도들이 그분을 버린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역시 예수를 버린 사람들]를 굳게 하라”고 강권하셨읍니다. (누가 22:3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장로들과 다른 사람들은 약해져서 무활동이 된 사람을 사랑의 동기로 방문하여 도움을 베풀 수 있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로마 15:1; 히브리 12:12, 13)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고 스스로 이탈할 때는 문제가 다릅니다.
14. 사람이 어떻게 이탈할 수도 있읍니까?
14 한때 참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이 자기를 더는 ‘여호와의 증인’으로 생각지 않는다든가 혹은 그렇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포기할 수 있읍니다.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사람은 자기의 그리스도인 신분을 포기하고, 고의적으로 회중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라.]”—요한 1서 2:19.
15, 16. (ㄱ) 또 어떻게 이탈할 수도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은 이탈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합니까?
15 또는 어떤 사람은 자기의 행동으로 그리스도인 회중에서의 자기의 신분을 포기할 수도 있읍니다. 성서와 반대되는 목적을 가진 조직에 가담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비교 계시 19:17-21; 이사야 2:4.
16 ‘여호와의 증인’의 믿음과 신조를 고의적으로 거절함으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한 사람이 되게 하는 사람들은 범죄로 인하여 제명당한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회중과 협조하는 일
17, 18. 제명 처분과 관련하여 우리가 회중과 협조하는 데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읍니까?
17 그리스도인들이 형제들이나 관심자들과는 성서를 논하거나 연구할 때 영적 교제를 즐기지만, 추방당한 범죄자(또는 ‘여호와의 증인’의 믿음과 신조를 버려 스스로 이탈한 사람)와는 그러한 교제를 가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방된 사람은 “죄를 짓”는 일로 인하여 “자신을 정죄”한 것이며 따라서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중 성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것을 옹호합니다. 하지만 제명 처분에는 영적 교제를 끊는 것 이상의 뜻이 내포되어 있읍니다.—디도 3:10, 11, 새번역.
18 ‘바울’은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편지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5:11) 식사 때는 긴장을 풀고 사교를 즐기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또한 여기에서 ‘피크닉’이나 ‘파아티’, 공 경기, 해변 여행이나 영화 감상과 같은 사교적인 교제나 또는 그와 함께 식사하는 일을 금합니다.d (친척이 제명되었을 때와 관련된 특별한 문제는 다음 기사에서 고려됩니다.)
19. 때때로 제명 처분을 옹호하기가 어려운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19 가끔 어떤 그리스도인은 현저한 압력 때문에 성서의 이 충고를 지키기가 어렵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압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으며 또는 친구지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압력이 될 수도 있읍니다. 예를 들어, 한 형제는 그러한 압력을 느껴 제명된 두 사람의 결혼 주례를 섰읍니다. 그 주례를 단순한 친절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읍니까? 그런 식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지방의 공인된 결혼 주례 대신에 그에게 주례를 부탁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가 하나님의 봉사자라는 신분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결혼에 관한 교훈을 줄 수 있는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읍니까? 그러한 압력에 굴복한다는 것은 경건치 않은 일로 인해 회중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 즉 그 부부와 함께 교제하는 상태에 말려드는 일일 것입니다.—고린도 전 5:13.
20. 사업상의 동료가 제명되었을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20 다른 문제들은 사업상이나 직장과 관련하여 발생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은 회중으로부터 추방된 사람에게 고용되어 있거나 우리가 그런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면 어떠합니까?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우리가 계약상 혹은 재정상 당분간 사업 거래를 계속해야 할 형편이라면 이제 제명당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사업 문제에 관해 그와 토론한다거나 직장에서의 접촉은 피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 토론이나 사교적인 교제는 이제 지난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낼 수 있으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읍니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은 그에게 그의 죄가 여러 면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를 인상깊게 해줄 수 있읍니다.—고린도 후 6:14, 17.
제명된 자나 이탈한 자와 말할 수 있는가?
21, 22. 제명된 사람과 말하는 점에 대하여 성서는 무엇이라고 충고합니까?
21 하나님의 의와 그분의 제명 처분의 마련을 옹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추방당한 사람과 전혀 말해서는 안되며 심지어 “인사”까지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일부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기의 원수를 사랑하고 ‘자기 형제에게만 문안’하지 말라고 교훈하신 점을 생각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읍니다.—마태 5:43-47.
22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지혜로써 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다루려고 하시지 않았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명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분의 관점을 옹호하려고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누구든지 지나치게 나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머물러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 그대들에게 가는 사람 가운데 이 가르침을 가지지 않고 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를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마시오.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의 악한 행실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요한 2서 9-11, 새번역.
23, 24. 추방당한 사람과 말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왜 현명합니까?
23 이 지혜로운 경고를 한 사도는 예수와 친근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점에 대해 말씀하신 요지를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또한 그 당시의 일반적인 인사가 “평화”라는 말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어떤 개인적인 “원수”나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한 당국의 세상적인 관리와는 판이하게도, 제명당한 사람이나 이탈한 사람은 자기의 배교적인 사상을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하며 또는 자기의 경건치 않은 행동을 계속합니다. 확실히 이런 사람들은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디모데 전 2:1, 2) 그리고 경험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단순한 한마디의 인사(“안녕”)가 대화로 발전되고 심지어는 아마 우정에까지 발전하는 첫 단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제명된 자와 그 첫 단계를 밟고자 할 것입니까?
24 ‘그러나 만일 그가 회개하는 것같이 보여 격려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면 어떠한가?’ 하고 궁금히 여기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사람을 돕는 마련이 있읍니다. 회중의 감독자들은 영적 목자들로서 그리고 양떼의 보호자로서 일합니다. (히브리 13:17; 베드로 전 5:2) 만일 제명당했거나 이탈한 사람이 질문을 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증거를 보인다면 장로들은 그에게 말할 수 있읍니다. 장로들은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친절히 설명해 주고 그에게 적절한 얼마의 교훈을 해줄 수 있읍니다. 그들은 그의 과거의 죄와 그의 태도에 관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를 다룰 수 있읍니다. 회중의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제명된 자나 이탈한 자가 ‘회개하였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정확한 지식보다는 느낌에 근거한 판단일 수 있지 않겠읍니까? 감독자들이 제명당한 사람이나 이탈한 사람이 회개하였고 그리고 회개의 열매를 나타내고 있다고 확신한다면,e 그를 회중으로 복귀시킬 것입니다. 그 후에는 회중의 나머지 성원들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고린도’의 복귀된 사람에게 하라고 권고한 바와 같이, 그를 집회에서 따뜻하게 환영하고 그를 위로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확증할 것입니다.—고린도 후 2:5-8.
악한 행실에 참여하지 않음
25, 26. 제명된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교훈하십니까?
25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영감을 주어 다음과 같이 기록케 하신 중요한 진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그(잘못된 가르침을 조장하고 있거나 경건치 않은 행실을 계속하고 있는 추방된 범죄자)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의 악한 행실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요한 2서 11, 새번역.
26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주석자들은 요한 2서 11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들은 이 교훈이 ‘비그리스도교적이며 우리 주님의 정신에 반대된다’고 하며 또는 그것이 불관용을 고취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상적인 생각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적용하지 않으며, 설사 있다 해도 악명 높은 범죄자를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이 매우 드문 종교 조직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 5:13) 그들의 “관용”은 비성경적이며, 비그리스도교적입니다.—마태 7:21-23; 25:24-30; 요한 8:44.
27.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그러한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27 그러나 의로우시고 공정하신 성서의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분은 단지 허물없이 행하며 의를 실천하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만을 ‘자기의 성산에’ 받아들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 15:1-5, 신세) 그러므로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 거절을 당하여 제명되었거나 스스로 이탈한 범죄자와 자기의 운명을 함께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나도 하나님의 성산에 거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만일 장로들이 제명된 사람과 정기적으로 계속 사귐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사랑스럽게 그리고 참을성있게 그가 하나님의 견해를 다시 갖도록 돕고자 할 것입니다. (마태 18:18; 갈라디아 6:1) 장로들은 그를 훈계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그를 엄하게 책망’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성산에’ 머물러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가 추방된 사람과 사귀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악한 일에 참여하는(지지하거나 함께 행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중으로부터 제거 즉 추방되어야 합니다.—디도 1:13, 신세; 유다 22, 23; 비교 민수 16:26.
하나님의 견해에 충성함
28. 우리는 어떻게 여호와의 견해에 대한 충성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28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마련에 충성스러운 것은 그 모든 길이 의롭고 공정하고 선하기 때문에 행복의 근원이 됩니다. 그것은 또한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제명시키는 하나님의 마련에 있어서도 참됩니다. 우리는 이 마련에 협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윗’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 분명히 자기의 충성스러운 자를 구별하신다는 것을 아시오.” (시 4:3, 신세)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자기의 길에 충성스러운 자들을 따로 구별하시고 영예롭게 대하시고 또한 인도하십니다. 그러한 충성으로부터 우리가 받게 될 많은 축복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승인하시고 ‘자기의 성산’으로 받아들이시는 자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입니다.—시 84:10, 11.
[각주]
a “그러므로 그는 마치 죽은 자와 같았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과 연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와 교제하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길을 일러 주지도 않았다. 그가 생활 필수품을 살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사람과 함께 먹거나 마시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A. 에데르샤임’ 저, 「메시야 예수의 시대와 생활」, 제2권 184면.
b ‘아담 클라아크’는 성서의 이 가르침과 일치하게 그 차이를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추방당한 범죄자와는) 거룩한 일에서나 세속적인 일에서나 관계를 맺지 말라. 당신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천직으로 삼지 않는 사람과는 그의 도덕상의 생활이 어떠하든지 간에 세상적인 일의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자기의 행동으로 불명예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그 정도로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모든 죄를 증오한다는 이 가외의 표를 그로 하여금 받게 하라.”
c 교회 역사가 ‘요셉 빙감’은 초기 몇 세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교회 징계에는 침례의 모든 혜택과 특권을 박탈하여 그들을 사회와 교회 공동체로부터 제거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 그리고 각 사람은 그들을 일반 대화에서 멀리하고 피해야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한 교회의 견책과 조처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로 하여금 수치감을 갖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교회를 오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 아무도 파문당한 사람을 그가 살아 있을 동안, 자기 집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같은 식탁에서 그들과 함께 먹거나 그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해서도 안 된다. 죽었을 때는 그들을 위해서 장례식을 올려서도 안 된다. ··· 이 지시들은 악명 높은 범죄자를 여하한 방법으로도 후원하지 말라고 그리스도인들을 금지시킨 사도들의 본이 되는 규칙에서 뽑아 작성한 것이었다.”—「그리스도 교회의 고대 풍습 제도」, 880, 891면.
d 본지 1981년 11월 1일 호에는 데살로니가 후서 3:14, 15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다. 이 성귀는 규모없는 행실을 계속 고집하는 그리스도인을 ‘지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형제이다. 그러므로 형제처럼 그를 훈계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사귀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사교적인 면에서 그와 사귀는 일을 피해야 한다면 제명된 자나 이탈한 범죄자의 경우에는 더욱 명확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
e 회개에 관한 기사가 「파수대」 1981년 11월 1일 호에 나와 있다.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기억하는가?
‘유대’인들은 회당으로부터 추방된 자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
‘바울’은 다음 사람들을 대하는 데 어떠한 차이가 있음을 밝혔는가?
(1) 세상의 부도덕한 사람들
(2) 회중으로부터 제명당한 부도덕한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회중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한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제명”은 어떤 종류의 교제를 끊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왜 제명당한 사람에게 인사하거나 말하지 않는가?
제명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성산에’ 머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6면 삽화]
제명된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