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택에 합당한 생활
1. 잠언 16:9과 베드로 전서 1:13이 알려준 바와 같이 우리의 선택에 고착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생활을 선택하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길로 가기로 선택하는 것, 곧은 그리스도인의 길을 온전히 걷기로 선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길에 고착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며, 노력과 인내가 또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을 함에 있어서 항상 처음에 신중히 검토해서 결정한 그 선택에 고착하면서 우리의 결정들을 인도하시도록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베드로는 이 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활동에 대비하여 여러분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러분의 지각력을 온전히 유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과분하신 친절에 여러분의 희망을 두십시오.”—베드로 전 1:13, 신세.
2, 3. 긍정적인 활동을 위해 우리의 ‘지각력을 유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우리의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지각력을 유지’하고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3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비길 데 없는 축복에 대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염려와 슬픔과 재난으로부터의 더 큰 해방을 맛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고통이 있는 이유를 알며, 또한 우리가 온전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인내한다면 그러한 고통의 결과로 우리가 더 나은 그리고 더 유용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임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사망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의 사망으로 인한 슬픔이 줄어듭니다. 또한 우리가 겪는 불유쾌한 것들이 앞에 놓인 영원한 생명에 비할 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누가 10:23, 24.
4, 5. (ㄱ) 베드로 전서 1:12에 지적된 바와 같이 천사들로 하여금 인류의 구원에 그러한 관심을 나타내게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ㄴ) 그들의 견해를 고려할 때, 한편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4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측량할 수 없이 크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그것을 인류에게 가져다 주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방법에 대해 예언자들도 알기를 원하였으며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 전 1:10-12) 우리는 지구가 형성될 때 천사들이 존재했었다는 것, 심지어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도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욥 38:7) 천사들은 허다한 창조 사업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힘과 기타 특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곳 땅 위에는 새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있는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천사들은 커다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죄가 어떻게 한 인간 희생을 근거로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알고 싶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그러한 일을 이전에 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나 지혜보다 훨씬 더 훌륭한 하나님의 특성, 더욱 호소력이 있으며 따뜻한 성품인 자비의 놀라운 성품이 인류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실에 나타났습니다. 또한 죄인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그분께서 아들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인도하신 점에 나타났습니다.
5 만일 천사들이 하나님의 이 자비를 우주 가운데서 가장 큰 일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면 이 자비를 받고 이것을 매일 경험하는 우리는 훨씬 더 즐거워하고 다른 모든 것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선택을 기뻐하고 그것에 고착하는 일보다 더 큰 자극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성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6. 베드로 전서 2:2, 3과 일치하게 성서 낭독과 연구는 우리 생활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합니까?
6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 전 2:2, 3) 성서를 성실한 태도로 주의 깊이 읽고 연구함으로써만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영적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서를 직접 읽어야 하고,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가족과 함께 읽으며, 그 진리를 토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 말씀에 대한 사랑이 자라갈 것이며 그 말씀을 더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왕들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율법서를 직접 베끼고 매일 읽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요구되어 있었다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완전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신명 17:19, 20; 디모데 후 3:15.
7, 8. (ㄱ) 베뢰아 회당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ㄴ) 성서 자체로부터 진리를 직접 낭독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사도들이 “좋은 소식”을 선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말씀을 통해 누구를 칭찬하셨습니까? 베뢰아의 회당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 간절한 마음으로 [바울과 실라가 전한 좋은 소식의] 말씀을 받고 이것이 [심지어 사도 바울이 말한 것까지도]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니라.]” (사도 17:10, 11)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단순히 듣고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신과 마음으로 열렬히 받아들인 것들에 대한 견고한 성경적 근거를 조사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8 우리는 진실한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인간 선생들이 전파하고 가르치는 진리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성서에서 읽을 때 비로소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온전한 기초를 놓고 영구적으로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 양쪽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날카로와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낼 정도로 찔러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판단합니다.” (히브리 4:12, 새번역) 성서를 계속 연구한다면 영적 아기 상태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우리를 강하고 장성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할 때에도 동일한 원칙이 작용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성서에서 직접 그것을 읽게 할 때 더 큰 힘이 발휘됩니다.
9. 시련과 고난이 우리에게 어떠한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그러한 나쁜 결과를 피하도록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9 사도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확실히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그의 첫째 편지에서 요약하면서 고난과 시련과 박해를 받아도 실망하지 말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당할지라도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고 무절제하게 불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즉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사셨으므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더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시도 모든 형태의 악과 속임수와 위선과 시기와 비방을 생각지 말아야 하며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베드로 전 2:1.
10. 세상의 불결한 습관을 우리 사이에서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사도의 충고를 어떻게 따를 수 있습니까?
10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매우 강력히 표현하였습니다. 즉 세상이 하는 일,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알기 전에 행한 일이 매우 악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것을 언급조차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에베소 5:3, 신세) 물론 바울이 이러한 비성경적인 일을 “언급”했지만, 이러한 것을 나쁘다고 설명하기 위해 단지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충고의 취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일을 곰곰이 생각하지 말며,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지 말며, 이러한 일들이 행해지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지 말며, 화제거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이러한 일에 빠졌던 사람들은 육체를 만족시키는 감정을 가지고 이러한 것을 회상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로마 6:21.
11.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4:8, 9에서 우리의 첫째가는 관심사로서 우리 믿음의 어떠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하였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표현할 것입니까?
11 뿐만 아니라, 앞에 놓인 희망을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로에는 나쁘고 소극적인 일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4:8, 9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 우리에게는 이웃에 대한, 특히 믿음 안에서 우리의 친척이 된 사람들에 대한 항상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형제들의 많은 실수와 죄를 덮어 주게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흠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결함이 눈에 띈다고 하여 그를 의심하거나 단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후대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서로 친절과 도움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그러한 기회가 생길 때 불평합니까?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상실할 수 있으며, 선을 행하는 경우에 얻게 될 상을 놓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받은 선물을 올바로 사용하라
12. (ㄱ) 누가 회중에서 도움이 되는 ‘선물’을 받으며, 모두에게 동일한 능력이 있다고 기대할 것입니까? (ㄴ)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며,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12 베드로는 또한 선물의 사용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능력 혹은 재능이 있지만, 그 모든 재능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 선물의 분량이 다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즉 동일한 틀에 맞추게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베드로 전 4:10) 만일 어떤 사람이 회중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생각하여 그 선물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그 선물을 모든 선하고 완전한 선물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선물을 받아 청지기가 된 각 사람은 선물의 수여자와 그의 주인에 대하여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관하여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 4:2; 야고보 1:17)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을 통하여 그 선물을 받은 것이요 또한 이 과분하신 친절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그 필요한 것들이 공급됩니다. 이 과분하신 친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며 회중의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필요한 것들이 공급됩니다. 만일 우리 중 누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회중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회중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말해야 합니까?
13 그 사도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 종류의 선물과 그 선물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묘사하면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 전 4:11ㄱ) 이것은 그가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올바르며 사람이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말할 때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증거 없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틀림없이 그는 성서로 자신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즉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하게 기초해 있어야 하고 성서의 영과 일치 조화해야 합니다. 오직 이와 같이 함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14. (ㄱ) 베드로 전서 4:11과 일치하게 우리는 어떻게 회중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까? (ㄴ) 이러한 사람은 봉사할 때 항상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어떠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까?
14 다음에 베드로는 말하는 일로부터 주의를 행위로 돌려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베드로 전 4:11ㄱ) 회중 성원으로서 형제나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물질적 수단을 가지고 있거나 어떤 유익한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형제들 사이의 사랑의 성품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기회와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하고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더러 그리스도인 봉사를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겸손히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아 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며 더 많은 봉사의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언 11:25.
15. 우리의 충실한 청지기의 봉사의 결과로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15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물이나 능력을 이와 같이 사용하는 데서 오는 첫째가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희망을 더욱 온전히 실현하는 데로 가까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한 첫째가는 일을 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 4:11ㄴ) 우리가 성서와 일치하게 선한 일을 행할 때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 이유인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야말로 본래 자기의 아들을 보내신 분이시고,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작용하는 고난
16. 그리스도인들은 압력이나 박해를 직면해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6 이와 같은 생활 방식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분들을 섬기는 데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 가지 압력이 있을지 모르며 심지어 고난과 박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활 가운데 행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 통의 편지 가운데서 고난에 관하여 즉 그 원인과 목적 그리고 고난을 충실하게 인내함으로써 오는 결과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희망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베드로 전 1:6, 7.
17, 18. (ㄱ)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하여 말하면서 사도 베드로가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사도 바울과 같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결정한 선택에 굳게 고착함으로 오는 고난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7 그의 첫째 편지 3장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고난당함에 주의를 환기시켜 이렇게 말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7절) 그러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베드로 전 4:12-14; 비교 사도 5:41, 42.
18 그리스도인이 고난당하는 일을 좋아하거나 순교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지만, 만일 그의 주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따르기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된다면 그는 행복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믿음 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많은 모욕과 고난이 놓여 있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에게는 명예와 영광과 지위에 대한 밝은 전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었는가를 들어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았노라.]” (빌립보 3:7-10) 바울은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바랐으며, 마치 그리스도와 같이 그가 죽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19, 20. (ㄱ)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에게 임하는 그러한 고난을 어느 정도로 허락하십니까? (ㄴ) 반대자들과 박해자들의 분노가 어떻게 마침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이르게 될 수 있습니까? (ㄷ)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정도에 관한 어떤 다른 요인이 우리로 인내하도록 힘을 줍니까?
19 더 나아가서 베드로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용하실 때 오로지 그것을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연단과 징계를 베푸시는 범위 내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시편 필자는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시 76:10)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우리에게 노를 발하도록 허용하시지만, 우리는 우리가 고난을 직면하고 죽임을 당할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연단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 때문에 우리가 고난받는 것을 사람들로 관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 악인들의 궤계를 꺾으실 것입니다. 더우기 그 고난은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위안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리라.]”—베드로 전 5:10.
21. (ㄱ) 우리는 이제 어떠한 유익한 점들을 각각 자문해 볼 수 있습니까? (ㄴ)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를 끝마치면서 어떠한 격려가 되는 점을 지적하였습니까?
21 당신은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단지 닥치는 일을 소극적으로 인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활동적으로 섬기는 데 있어서 당신의 선택에 고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형제들을 돕는 데, 당신이 받은 선물을 사용하는 데 기꺼이 진력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배우도록 도우며 그들도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하도록 도우려는 욕망 즉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길을 걷도록 도우며 확고한 입장을 취하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베드로는 그의 두번째 편지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를 위안하며 격려해 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베드로 후 3: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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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직접 낭독하는 것은 진리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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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한 당신의 충고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를 확인하라
[45면 삽화]
필요한 도움을 베풀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겸손히 사용하는 것은 사랑의 특성을 조성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