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불친절할 때—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오늘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불친절한 언행을 나타냈는가? 아마 직장이나 학교에서 어떤 사람이 무례하게도 어떤 모욕적인 혹은 저속한 언사를 썼는지 모른다. 혹은 시장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 앞으로 떼밀고 들어왔을지 모른다.
비슷한 일이 한 가족 내에서 일어날 수 있다. 한 사람이 가족의 다른 사람에게 경멸적인 혹은 불경한 말을 할지 모른다. 혹은 기타 방법으로 무례함 혹은 불친절을 나타낼지 모른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에 당신의 반응은 어떠한가?
보복하는 것이 현명한가?
즉각 보복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경향이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도움이 되는가? 사실, 많은 결혼은 배우자가 상호 보복하기 때문에 금이 갔고 파탄되었다.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생각하여 보라. 피곤할 때에 혹은 짜증이 날 때에, 당신은 가족에게 불친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실수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불친절에 대하여 보복이 따르면, 흔히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지 않는가? 그렇다. 불친절 뒤에는 재빨리 불친절이 따르고, 적의가 자란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하여 모욕을 모욕으로 갚아야 한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참으로 현명하지 않음은 경험으로 누차 입증되었다.
그 결과 반목이 생길 수 있다. 때때로 이러한 반목은 오래 끌게 되어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서 불화가 시작되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국가와 국민 전체가 모욕을 모욕으로 갚는 이러한 순환에 말려들기도 하였다.
그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불친절한 언행에 대한 최상의 반응은 무엇인가?
현명한 길
거의 150년 전의 예에서 배울 수 있다. 그 때에는 모욕을 당하였을 때에 분노감을 일으켜 준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정치가 ‘헨리 클레이’가 미국 의회에서 자기에 대한 ‘존 랜돌프’의 말을 듣고 모욕을 느꼈을 때에, 그는 ‘랜돌프’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하였다. 목격자 ‘토머스 에이치. 벤튼’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나는 숲속으로 조금 물러서서 ‘랜돌프’ 씨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였다 ··· 내가 보니 그는 ‘클레이’ 씨의 총탄을 받았으며, 자갈이 튀어 올랐다. ··· ‘랜돌프’ 씨는 권총을 치켜 들고 공중으로 향하여 쏘면서 ‘클레이 씨, 나는 당신에게 쏘지 않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즉시 앞으로 나가며 손을 내밀었다.”
‘랜돌프’는 자존심으로 인하여 현명하지 않게도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분명히 그는 ‘클레이’에 대하여 증오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클레이’는 ‘랜돌프’의 발언에 분노를 느끼고 그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클레이’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 뻔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충고는 현명하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도 7:9.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욕설을 듣고도 보복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가? ‘랜돌프’가 처음에 어리석음을 범하였기 때문에 자존심으로 인하여 생명이 위험에 처하였었으나, 반격을 거절하고 친절하게 ‘클레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벤튼’은 계속 이렇게 기술하였다. “동일한 반응이 있었다. ··· 월요일에 두 사람은 인사를 교환하였으며, 사교적 관계가 정식으로 그리고 정중히 회복되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불친절한 때에도 친절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바울’의 충고를 청종하는 것이 현명하다.—베드로 전 3:9.
다른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아야 한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현명한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추천되어 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 12:17-19) 그러므로, 당신에게 불친절한 사람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응수하려 하지 말고 성서 「잠언」의 이러한 말씀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찌니라.”—잠언 24:29.
하나님의 길은 친절을 보이는 것이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그러므로 그의 본을 따르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누가 6:35, 36) 이 행로는 보호가 될 것이다.
우선, 그 행로는 당신 자신이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 줄 수 있다. 어떻게?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의 불친절을 보고 홧김에 보복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당신의 혈압이 올라가서 당신의 건강이 심각한 해를 입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평온하고 억제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당신에게 좋다. 성서는 정확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니라].”—잠언 14:30.
그러나, 당신의 친절한 반응은 또한 당신에게 불친절하게 말하거나 행동한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당신은 그 사람의 호의를 얻을 수 있으며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성서 「잠언」의 참됨이 거듭 증명되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
또 다른 면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에게 불친절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때때로 많은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가담한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다수를 따른다.’ (출애굽 23:2 비교) 그러한 상황 하에서 당신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절을 나타낼 것인가?
‘아프리카’의 ‘말라위’의 한 여인은 1972년 10월에 박해받던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 나라에서 도피할 때 정면으로 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여자는 종교가 달랐지만 도피하는 증인을 자기 집에 숨겨 주고 밤에 이웃의 ‘모잠비크’로 도피하도록 도와 주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감독자는 그에게, ‘이스라엘’의 사자를 숨겨 준 ‘여리고’의 ‘라합’이 그 결과로 후에 ‘이스라엘’인들에게 ‘여리고’가 함락될 때에 그의 친척과 함께 보존을 받았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주었다.
‘아프리카’의 그 여인은 이 성서 이야기에서 격려를 받았다. 얼마 후에 그와 그의 남편과 자녀는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었다. 그 결과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헌신을 상징하였으며 영적으로 풍부한 축복을 받았다.—마태 25:34-40.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불친절할 때에 당신은 어떻게 응하겠는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승인과 당신 자신의 복지를 중요시한다면, 당신은 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학대를 받을 정당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하여 당신도 ‘다수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