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충성스럽게 섬기라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 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라.] ···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 신세]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 3서 5-8.
1.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께 어떠한 종류의 숭배를 드려야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영과 진리”로 숭배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요한 4:23, 24, 신세) 그분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숭배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목적에 관하여 밝혀 주신 것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역점을 둔 그리스도교의 전체 가르침에 고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 필수적입니다.—에베소 1:13, 14; 요한 1서 3:23.
2.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우리는 어디에서 도움이 되는 지침을 발견하게 됩니까?
2 ‘여호와의 증인’들은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그들은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왕국의 권익을 충성스럽게 증진시킴으로 “거룩한 봉사”에 온전히 협력해야 합니다. (로마 12:1, 신세; 요한 3서 5-8; 마태 6:33)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읍니까? 이 일에 매우 도움이 되는 지침이 사도 ‘요한’의 세번째 영감받은 서한에 나와 있읍니다.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라
3. 요한 3서의 서두에는 그리스도인 사랑의 띠가 어떻게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읍니까?
3 그리스도인 사랑의 띠를 그 사도가 쓴 편지의 서두에서 명백해 엿볼 수 있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장로[연로자, 신세]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요한 3서 1)
‘요한’은 자기를 “연로자”라고 지칭하였는데, 이것은 분명히 그의 고령과 영적 장성도에 기인한 것입니다. ‘가이오’는 밝혀지지 않은 장소에 살고 있는 그의 소중한 그리스도인 벗이었읍니다. ‘요한’은 그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름으로써 초기 그리스도인들 간에 흔히 쓰이던 애정 어린 표현을 사용하였읍니다.—로마 16:5; 베드로 후 3:1; 유다 3.
4, 5. (ㄱ)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간절한 바램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가이오’는 그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읍니까?
4 ‘요한’에게는 ‘가이오’를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이러한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건강, 신세]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한 3서 2-4.
5 그 사도는 영육 간에 ‘범사에 잘 되기를’ 간구하였읍니다. ‘요한’은 또한 그의 벗이 “건강”할 것을 기도하였읍니다. 이러한 상당히 일상적인 바램이 반드시 ‘가이오’가 그 당시에 건강이 나빴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교 사도 15:29) 여기에서 ‘요한’이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한 지성적 인격체로서의 현재의 생활을 뜻합니다. 그러면 ‘가이오’는 자신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읍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봉사”를 하는 일에 충실하게 사용하였읍니다.
6, 7. (ㄱ) ‘요한’이 ‘심히 기뻐할’ 만한 무슨 이유가 있었읍니까? (ㄴ) ‘가이오’처럼, 여호와의 모든 충실한 증인들은 “진리”에 관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6 ‘에베소’에 온 영적 형제들로부터 ‘요한’은 그를 ‘심히 기쁘게’ 한 고무적인 소식을 받았읍니다. 그 사도는 자기의 벗 ‘가이오’가 영적으로 잘해 나가며 진리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었읍니다. (잠언 15:30; 25:25) “형제들”은 ‘가이오’가 연합하고 있던 회중에 속한 사람들이었거나, 어쩌면 그 사도가 보다 앞서 그 회중에게 쓴 서한을 지참하고 ‘에베소’에서 그 회중을 방문하러 간 사람들이었을지 모릅니다.—요한 3서 9.
7 이 형제들은 ‘‘가이오’에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였읍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였으며 여호와의 요구 조건들을 준수하고 있었읍니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전체 가르침을 충성스럽게 고수하고 있었읍니다. 여호와의 충실한 모든 증인들은 ‘진리 안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써 그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충성스런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진리”에 순응하며 배교를 물리치고 하나님을 활동적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섬기고 있읍니다.—요한 2서 1-4; 이사야 38:2, 3.
8. ‘요한’이 ‘가이오’를 자기 “자녀”들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요한’은 그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혹은 “진리에 따라 산다” (신 영어 성서)는 말을 듣는 것보다 자기에게 더 큰 즐거움은 없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사도는 ‘가이오’가 성경의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도와 줌으로써 그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린도 전 4:14-17 비교) 하지만 설사 ‘요한’이 사랑하는 이 벗에게 진리를 소개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사도의 고령, 그리스도인 장성도 및 ‘가이오’에 대한 아버지 같은 애정으로 말미암아 그 사도가 분명히 보다 연소한 이 사람을 자기의 “자녀”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한 것은 합당한 일이었읍니다.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
9. 요한 3서 5-8에 의하면, ‘가이오’는 어떤 형제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도록 권고받았읍니까?
9 ‘가이오’는 자기의 그리스도인 책임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으며, ‘요한’은 그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회중]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 신세]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 3서 5-8.
10. ‘가이오’는 무슨 “신실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어떻게 유사한 일을 하고 있읍니까?
10 ‘가이오’는 방문하는 형제들을 영접함으로써 “신실한 일” 혹은 “충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었읍니다. (개역 표준역) 이것은 그들이 “나그네” 즉 그들의 그리스도인 집주인에게 이전에는 알려진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이었읍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파견한 여행하는 감독자들과 같은 동료 신자들을 후대함으로써 이와 유사한 “신실한 일”을 하고 있읍니다.—로마 12:13.
11. 여행하는 형제들은 ‘가이오’에 관하여 무엇을 증거할 수 있었읍니까?
11 사랑받는 ‘가이오’는 분명히 원칙에 근거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여행하는 형제들은 이 점에 대하여 “회중 앞에서”, 아마 ‘에베소’에서 그리스도인 집회 중에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14:27 비교) 그들은 ‘가이오’가 손대접을 잘하는 사람임을 증거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나그네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으며, 그리하여 독실한 사람들의 오랜 특성을 나타냈읍니다.—창세 18:1-8; 마태 25:34, 35, 40.
12. (ㄱ)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전송해야 하였읍니까? (ㄴ) 이들 형제들은 누구의 이름을 위하여 나섰읍니까? (ㄷ) 충실한 형제들이 받는 대우와 배교자들이 받는 대우는 어떻게 대조됩니까?
12 그 사도는 ‘가이오’에게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합당하게” 전송하라고 당부하였는데, 그들은 그분께 대한 봉사에 진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여행에 필요한 식품과 비용 등을 공급받는 것이 마땅하였읍니다. (디도 3:13) 이 형제들은 그들이 희랍어 원본에 따르면, “그 이름”을 위하여 나섰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읍니다. 분명히 ‘요한’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이름 여호와를 말한 것이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형제들을 “하나님께 합당하게” 전송하라고 촉구하였기 때문입니다. (비교 「신세계역」; 「왕국 행간 번역」; 「개역 표준역」) 여행하는 배교자 선생들이 영접을 받아서는 안 되었지만, 이들 방문하는 충실한 형제들은 여호와 하나님 및 그분의 충실한 아들의 충성스런 증인들로 대접을 받기에 합당하였읍니다.—이사야 43:10-12; 사도 1:6-8; 요한 2서 9-11.
13. (ㄱ) 그리스도인 여행자들이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이 될 수 있었읍니까?
13 근면한 그리스도인 여행자들은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처럼 그들도 분명히, 자기가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음으로 “복음을 ··· 값없이” 전하려 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9:18; 고린도 후 11:7; 데살로니가 전 2:9) 이 형제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나섰으며 이방인들로부터 하등의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으므로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이같은 자들[복음 전파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였읍니다.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이들 후대할 줄 아는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관심사를 증진시키는 일에서 중요한 몫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임을 증명하였읍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영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읍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럽게 지원함
14. ‘가이오’가 연합하고 있던 회중 내에서 어떠한 반대가 일어났읍니까?
14 ‘가이오’는 ‘진리 안의 동료 일군’으로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반대를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두어자를 [회중]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근거없이 헐뜯고, 새번역] 유위 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회중]에서 내어 쫓는도다.”—요한 3서 9, 10.
15. ‘디오드레베’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그와 같은 사람이 된다면 어떠할 것입니까?
15 ‘요한’은 앞서 “두어자를 회중에게” 써 보낸 일이 있었으나 교만한 ‘디오드레베’는 그 사도로부터 아무 것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주제넘게도 ‘디오드레베’는 동료 신자들 가운데 ‘으뜸되기를 좋아’하였으며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였읍니다. (미국역) 따라서 이 교만한 사람은 자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았읍니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 ···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태 23:8-12) 물론,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은 다 죄”이며, ‘여호와께서는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감찰’하시기 때문에,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디오드레베’와도 같은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잠언 21:4; 시 138:6.
16. (ㄱ)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였읍니까? (ㄴ) 여기에는 20세기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무슨 교훈이 들어 있읍니까?
16 ‘요한’에게서 아무 것도 존경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디오드레베’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에 반항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 연로한 사도가 회중에 가게 되면, 그는 ‘디오드레베’의 악한 행실과 그의 언행을 “지적할”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요한’을 “악한 말”로 “헐뜯”었으며 그리하여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사도적인 기초석 중의 하나를 중상하였던 것입니다. (계시 21:2, 14) 물론, 그가 그런 일을 행하고도 무사할 수는 결코 없었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회개치 않고 동료 신자들을 헐뜯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권위를 업신여기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피할 것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레위 19:16; 유다 8-13.
17. ‘디오드레베’에게는 다른 어떠한 비행을 한 죄가 있었읍니까?
17 ‘디오드레베’는 또한 여행하는 근면한 형제들을 접대하기를 거부하였읍니다. 사실상,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방문하는 복음 전파자들을 후대하는 것을 훼방하려고 하였읍니다. 더욱 나쁜 것으로, ‘디오드레베’는 후대할 줄 알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을 부당하게 제명시킴으로써 그들을 회중에서 추방하려고 하였읍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왕국 전파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단념하지 않았읍니다.
선한 것을 본받으라
18. 요한 3서 11, 12에 의하면, ‘요한’은 ‘가이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8 ‘디오드레베’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는 급기야 회중으로부터 추방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충실한 사람들은 ‘요한’이 ‘가이오’에게 한 말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요한 3서 11, 12.
19. ‘선한 것을 본받는 데’는 무엇이 요구됩니까?
19 ‘가이오’는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훈계를 받았읍니다. 선을 추구하는 데는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에 적극적으로 고착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시 97:10; 로마 12:9)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3:4-12.
20. 지상에서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그분을 어떻게 ‘뵙고’ 있읍니까?
20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사도는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하늘의 영의 생명으로 부활될 때에,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볼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그들의 유익을 위하는 그분의 활동을 관찰함으로써 그분을 ‘뵈옵고’ 있읍니다. ‘하나님을 뵈옵는’ 사람들은 ‘마음의 눈’으로 그렇게 합니다. (에베소 1:18; 출애굽 33:20; 욥 19:26) 정신과 마음이 관련된 지각을 통하여 이들 개개인들은 여호와의 숭배자들로서, 인류를 위해 자기의 독생자를 주심으로 나타내신 무한한 사랑과 같은 그분의 특성들을 인식함으로 진정으로 여호와를 알게 됩니다.—요한 3:16.
21. (ㄱ) ‘데메드리오’는 누구였읍니까? (ㄴ) ‘데메드리오’는 어떻게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읍니까?
21 ‘가이오’는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권고를 받았으며 ‘데메드리오’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었읍니다. 아마 ‘데메드리오’는 방문하는 형제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전파자들 즉 전도인들의 집단을 감독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교 고린도 후 8:16-24) ‘가이오’는 ‘데메드리오’를 그다지 잘, 어쩌면 전혀 알지 못하였을지 모르지만,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칭찬하였으며 그는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료 신자들이 ‘데메드리오’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그의 독실한 행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생활을 여호와의 요구 조건들과 일치시키고 있었으며 ‘진리대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실상, “진리”가 ‘데메드리오’를 칭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 역시 그를 칭찬하였으며 ‘가이오’는 그의 말이 참됨을 알고 있었읍니다. (비교 요한 19:35; 21:24) 그러므로 ‘디오드레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는 왕국 선포자들은 ‘가이오’와 그 외의 충성스러운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부터 영접을 받았음에 틀림없읍니다.
동료 일군들 가운데서 역력한 사랑
22. ‘가이오’에게 더 많은 것을 글로 쓰는 대신, ‘요한’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였읍니까?
22 ‘가이오’에게 하는 ‘요한’의 끝맺는 말은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제공해 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직접, 신세]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이름으로] 문안하라.” (요한 3서 13, 14)
그렇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글로 쓰기를 원치 않았읍니다. 도리어 그 사도는 그를 “직접” 혹은 “즉시” (왕국 행간 번역) “보기를 바”랐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면대하여 말”할 수 있었읍니다.—필립스역.
23. (ㄱ) ‘요한’이 ‘가이오’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 것은 그의 친구가 무엇을 즐기기를 원한 것입니까? (ㄴ) 요한 3서를 끝맺으면서 그 사도는 사랑하는 동료 신자들을 어떻게 언급하였읍니까?
23 한편으로 ‘요한’은 ‘가이오’에게 평화 즉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데서 오는 안전감, 부당한 염려를 없애주고 정신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평온감이 있기를 간절히 원하였읍니다. (빌립보 4:6, 7) 끝을 맺으면서 그 사도는 ‘가이오’에게 “여러 친구”의 안부를 전함으로써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이 흔히 행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동료 신자들에 관해 언급하였읍니다. (비교 요한 15:13, 14) 그리고 ‘요한’이 지방 회중 성원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안부를 그들에게 “이름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이었읍니다!
동료 일군들로서 충성스럽게 계속 섬기라
24, 25. 요한 2서와 3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무엇의 필요성을 깊이 심어주며, 이 서한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마음이 생기게 해 주어야 합니까?
24 확실히 ‘요한’의 영감받은 둘째 및 세째 서한들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를 사랑하며 배교를 물리치고 진리에 고착하며 참 숭배의 관심사를 증진시킬 필요성을 깊이 심어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로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며 인류를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련 가운데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한 역할에 주의를 이끌면서 성경 진리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고자 결의해야 합니다.
25 ‘여호와의 증인’들로서 우리는 이 위급한 “마지막 날”에 수많은 믿음의 시련을 직면하고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5, 신세) 그러나 사도 ‘요한’의 건전한 교훈은 우리가 계속 생활 방식으로서 “진리 안에서 행하”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것을 본받으며, 왕국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함께 충성스럽게 계속 섬기도록 합시다. 모든 일을 놀라운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께 찬양이 되게 하십시다.
당신은 대답할 수 있는가?
◻ ‘가이오’는 동료 신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신실한 일”을 하고 있었는가?
◻ ‘디오드레베’의 악한 행로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가?
◻ 우리는 ‘가이오’처럼,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어떻게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는가?
[21면 삽화]
‘가이오’는 방문하러 온 그의 형제들을 영접함으로 “신실한 일”을 하였다
[23면 삽화]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제 1세기의 증인들처럼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함께 충성스럽게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