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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교와 국가파수대—1996 |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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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에게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바침
예수께서는 로마 정부 혹은 사실상 다른 어떤 정부와 관련해서도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지배해야 할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라고 언명하셨습니다. (마태 22:21) 예수의 추종자들이 받은 이 교훈은, 로마의 지배에 대해 분개하고 외국 권세에 세금을 내는 일의 합법성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국가주의적인 많은 유대인들의 태도와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후에 바울은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양심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은 또한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위에 있는 권위”인 정부]은 바로 이 목적으로 한결같이 봉사하는 하느님의 공복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십시오. 세금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조세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조세를 내[십시오].” (로마 13:5-7)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정직하고 세금을 잘 내는 시민이 될 의무가 있었으므로, 국가가 수행한 봉사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요한 17:16.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세금을 내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었습니까? 예수께서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엄밀하게 규정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된 상황이나 성서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따라서 판단해야 하는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꿔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카이사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데는, 때때로 성서 원칙들로 계몽받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관련될 것입니다.
상충하는 두 가지 주장 사이에서의 주의 깊은 균형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 주라고 하신 후에 이어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왕” 즉 황제와 황제가 임명한 “총독들”에게 복종하라고 교훈한 후에 이어서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은 자유인답게 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자유를 악을 덮는 것으로 삼지 말고, 도리어 하느님의 종으로 처신하십시오.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고, 연합된 형제들 전체를 사랑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하십시오.” (베드로 첫째 2:16, 17) 이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종이지, 인간 통치자의 종이 아니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대표자들에게 적절한 존중 즉 공경과 존경을 나타내야 하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법이 최고의 법인 것입니다.
위의 편지를 하기 여러 해 전에, 베드로는 하느님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우월하다는 점에 대해 의문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산헤드린은 민사나 종무(宗務) 양면에 있어서 로마가 권위를 부여한 행정 기관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이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라고 명령하였을 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존중하는 태도로 그러나 확고하게 “우리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5:29) 분명히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일과 인간 권위에 합당하게 복종하는 일 사이에서 주의 깊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였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기원 3세기 초에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카이사르의 것이라면, 하느님에게는 무엇이 남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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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카이사르파수대—1996 |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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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카이사르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반드시 돌려 드리십시오.”—누가 20:25.
1. (ㄱ) 여호와께서는 어떤 높은 지위를 가지고 계십니까? (ㄴ) 우리가 여호와께 드려야 하는 무엇은 결코 카이사르에게 줄 수 없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의 교훈을 하셨을 때, 하느님께서 자기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카이사르 즉 국가가 하느님의 종들에게 요구할지 모르는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신 것임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시편 필자가 여호와께 드린 이러한 기도가 진실한 것임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의 나라[“왕권”]는 영원한 나라[“왕권”]이니 주의 통치[주권]a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시 145:13, 「신세」 참조) 마귀가 예수에게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모든 왕국에 대한 권위를 주겠다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여호와 너의 하느님을 숭배해야 하고, 오직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4:5-8) 숭배는 결코 “카이사르”에게 할 수 없는 것이며, 카이사르가 로마 황제이든 다른 어떤 인간 통치자이든 국가 자체이든 간에 그러합니다.
2. (ㄱ) 사탄은 이 세상과 관련하여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ㄴ) 사탄은 누구의 허락으로 자기의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2 예수께서는 세상 왕국들이 사탄이 줄 수 있는 것임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후에, 그분은 사탄을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 12:31; 16:11) 기원 1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나, 온 세상은 악한 자의 권세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요한 첫째 5:19) 이것은 여호와께서 땅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정치 왕국들에 대한 통치권을 주겠다고 하면서, 사탄이 이렇게 언명한 점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이 모든 권위[를] ··· 당신에게 주겠소. 이것은 나에게 넘겨진 것이[기 때문이오].” (누가 4:6) 사탄은 오직 하느님의 허락 아래서만 세상 왕국들에 대한 권위를 행사합니다.
3. (ㄱ) 나라들의 정부들은 여호와 앞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ㄴ) 이 세상의 정부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이 세상 신인 사탄에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이와 비슷하게, 국가는 단지 하느님께서 주권자이신 통치자로서 허락하시기 때문에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요한 19:11) 그러므로 “현존하는 권위는 하느님에 의하여 그들의 상대적 지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고 주권자로서의 여호와의 권위에 비하면, 그들의 권위는 훨씬 낮은 권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봉사를 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며 행악자들을 처벌한다는 면에서 “하느님의 봉사자”이며 “하느님의 공복”입니다. (로마 13:1, 4, 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탄이 이 세상 혹은 이 제도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에 대한 상대적 복종을 인정할 경우 사탄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 1996년에도, 정치 국가는 여전히 “하느님의 마련”의 일부 즉 하느님께서 존재하도록 허락하시는 일시적인 마련이며, 따라서 여호와의 지상의 종들은 정치 국가를 그러한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로마 13:2.
고대의 여호와의 종들과 국가
4. 여호와께서는 왜 요셉이 이집트 정부에서 탁월해지도록 허락하셨습니까?
4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종들 중 일부가 국가 정부에서 탁월한 지위를 갖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18세기에 요셉은 통치자인 파라오(바로)의 다음 자리인 이집트(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창세 41:39-43) 뒤이어 있은 사건들을 볼 때, 여호와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요셉이 ‘아브라함의 씨’ 즉 그의 자손을 보존하는 도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그렇게 조정하신 것임이 분명해졌습니다. 물론, 요셉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팔렸다는 점과 그가 살던 시대에는 하느님의 종들에게 모세의 율법도 “그리스도의 법”도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창세 15:5-7, 「신세」 참조; 50:19-21; 갈라디아 6:2.
5. 유배된 유대인들은 왜 바빌론이 “평안하기를 힘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까?
5 여러 세기 후에 충실한 예언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영감을 받아, 유배된 유대인들에게 바빌론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통치자들에게 복종하고 그 도시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기까지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예레미야 29:4, 7) 언제나 여호와의 백성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위하여 ‘평안하기를 힘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를 숭배할 수 있는 자유를 갖기 위한 것입니다.—베드로 첫째 3:11.
6.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정부의 고위직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어떤 면에서 여호와의 율법과 관련하여 타협하기를 거부하였습니까?
6 바빌론에서의 유배 생활 중에, 바빌론에 예속된 포로였던 다니엘과 다른 충실한 세 명의 유대인은 국가에서 베푸는 훈련을 받아들였으며 바빌로니아에서 고위직의 문관이 되었습니다. (다니엘 1:3-7; 2:48, 49) 그러나 훈련을 받는 도중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마련하신 율법을 범하게 할 수 있었던 음식 문제에서 확고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1:8-17)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왕이 국가의 형상을 세웠을 때, 다니엘의 세 히브리인 친구들은 동료 행정관들과 함께 의식에 참석하도록 강요당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국가의 우상에 “엎드리어 절”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또다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충절에 대해 상 주셨습니다. (다니엘 3:1-6, 13-28) 그와 비슷하게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들이 사는 나라의 국기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숭배 행위를 하지는 않습니다.—출애굽 20:4, 5; 요한 첫째 5:21.
7. (ㄱ) 다니엘은 정부 조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훌륭한 태도를 취하였습니까? (ㄴ) 그리스도교 시대에 무슨 변화가 있었습니까?
7 신 바빌로니아 왕조가 몰락한 후에, 다니엘은 그 왕조를 대신하여 바빌론에 들어선 새로운 메대 페르시아 정권 아래서 정부의 고위직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5:30, 31; 6:1-3) 그러나 그는 자기의 고위직 때문에 충절을 타협하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의 법이 여호와가 아니라 다리오 왕을 숭배할 것을 요구하였을 때, 다니엘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다니엘이 사자들에게 던져졌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구출하셨습니다. (다니엘 6:4-24) 물론, 이 일은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있었습니다. 일단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되자, 하느님의 종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법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 제도 아래서 허용되던 많은 것들이, 여호와께서 이제 자기 백성을 대하시는 방법에 근거하여, 다른 관점으로 고려되어야 하였습니다.—고린도 첫째 9:21; 마태 5:31, 32; 19:3-9.
국가에 대한 예수의 태도
8. 무슨 사건을 볼 때 예수께서 정치에 연루되지 않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추종자들을 위해 더 높은 표준을 세우셨으며, 정치나 군사 문제에 연루되는 일은 무엇이든 거절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기적에 의해 수천 명의 사람들을 빵 몇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셨을 때, 유대 사람들은 그분을 붙잡아 정치적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급히 산으로 물러가심으로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요한 6:5-15) 이 사건에 관하여, 「신약 신 국제 주해서」(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 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격렬한 국가주의적 열망이 있었으며, 그 기적을 본 유대인들 중 상당수는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지도자, 로마 사람들을 대항하도록 자기들을 인도할 이상적인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왕으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그 주해서는 예수께서 정치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이러한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하셨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로마의 지배에 대항하는 유대인의 어떤 폭동도 지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자신이 죽은 후에 일어날 반란의 결과로 있을 일, 즉 예루살렘 주민에게 있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화와 그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누가 21:20-24.
9. (ㄱ) 예수께서는 자신의 왕국과 세상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셨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세상 정부들을 대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추종자들에게 무슨 지침을 주셨습니까?
9 죽으시기 얼마 전에, 예수께서는 유대에 있는 로마 황제의 특별한 대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의 일부라면, 나의 수종들이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내 왕국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요한 18:36) 그분의 왕국이 정부들의 통치를 끝나게 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모범을 따릅니다. 그들은 기존의 그 권위들에 순종하지만, 그들의 정치적인 일에 간섭하지는 않습니다. (다니엘 2:44; 마태 4:8-10) 예수께서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라고 언명하심으로 제자들을 위한 지침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마태 22:21) 이보다 앞서, 산상 수훈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권위 아래 있는 누가 당신을 일 마일의 봉사에 징발하거든, 그와 함께 이 마일을 가십시오.” (마태 5:41) 이 산상 수훈의 문맥에서, 예수께서는 인간 관계에서든 하느님의 법과 일치하는 정부의 요구 조건에서든 간에 합법적인 요구에 기꺼이 복종하라는 원칙을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누가 6:27-31; 요한 17:14, 15.
그리스도인과 카이사르
10. 한 역사가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카이사르와 관련하여 무슨 양심적인 태도를 취하였습니까?
10 이 간략한 지침이 그리스도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적용될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E. W. 반스는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출현」(The Rise of Christianity)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이 교훈이 있은 후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자기의 의무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의존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세금을 납부하였는데, 부과된 세가 과중하였을지 모르지만—서로마 제국이 몰락되기 전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였는데도—그것을 감내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다른 모든 의무들도 받아들였는데, 하느님께 속한 것들을 카이사르에게 바칠 것을 요구받지 않는 한 그렇게 하였다.”
11.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통치자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교훈하였습니까?
11 이 원칙과 일치하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20년이 조금 지난 후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영혼은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십시오.” (로마 13:1) 그로부터 약 10년 후에, 로마에 두 번째로 감금되어 처형당하기 얼마 전에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그들[크레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 생각나게 하여, 정부들과 권위들에게 복종하고, 통치자들로서 순종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아무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말고, 호전적이 되지 말고, 합리적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을 온전히 보이게 하십시오.”—디도 3:1, 2.
“위에 있는 권위”에 대한 점진적인 이해
12. (ㄱ) 찰스 테이즈 러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부 권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태도라고 생각하였습니까? (ㄴ) 군 복무와 관련하여,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어떤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12 일찍이 1886년에, 찰스 테이즈 러셀은 「시대에 관한 경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나 사도들은 모두 지상 통치자들의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다. ··· 그들은 교회에게 법에 순종하라고 그리고 권위 있는 자들의 직위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라고 ··· 그들이 정한 세금을 내라고 그리고 국가의 법이 하느님의 법과 상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사도 4:19; 5:29) 어떤 확립된 법에도 저항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로마 13:1-7; 마태 22:21) 예수와 사도들과 초기 교회는 모두 법을 준수하였는데, 자기들이 이 세상의 정부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또 정부들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하였다.” 이 책은 사도 바울이 언급한 “더 높은 권세들” 즉 “위에 있는 권위”가 바로 인간 정부 권위임을 정확히 밝혔습니다. (로마 13:1, 「제임스 왕역」) 1904년에 「새로운 창조물」(The New Creation)이라는 서적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현시대에—선동하고 다투기 좋아하고 흠잡는 사람들이 아니라—법을 가장 잘 준수하는 사람들 가운데 속해야 한다”고 언명하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말이 정부 권세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심지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군 복무를 받아들일 정도로까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군 복무를 예수의 이러한 언명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입니다.” (마태 26:52) 분명히, 위에 있는 권위에 그리스도인이 복종하는 것에 대한 좀더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였습니다.
13. 더 높은 권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무슨 변화된 이해가 1929년에 제시되었으며,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었습니까?
13 1929년에, 여러 정부들의 법이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것들을 금하거나 하느님의 법이 금하는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을 때, 더 높은 권세들이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b 이것이 제2차 세계 대전 전과 그 기간 중의 어려운 시기에 그리고 공포의 균형을 이루며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춘 상태에서의 냉전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종들이 가지고 있던 이해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호와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주권을 드높이는, 사물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 어려운 시기 중 내내 타협할 줄 모르는 중립 입장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상대적 복종
14. 1962년에 로마 13:1, 2 및 관련된 성구들에 어떻게 증가된 빛이 비추어졌습니까?
14 1961년에 「신세계역 성경」이 완간되었습니다. 「신세계역」을 준비하다 보니 성경 원문의 언어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13장에서만 아니라 디도 3:1, 2과 베드로 첫째 2:13, 17과 같은 성구들에도 사용된 단어들의 정확한 번역으로 인해, “위에 있는 권위”라는 말이 최고 권위자이신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부의 권위를 가리킨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1962년 말에, 「파수대」에 실린 기사들은 로마 13장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주었으며 또한 C. T. 러셀 시대에 가졌던 견해보다 더 명확한 견해를 제시하였습니다. 그 기사들은 권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복종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 복종은 하느님의 종들이 하느님의 법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경우를 조건으로 하는 상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파수대」의 더 많은 기사들이 이 중요한 요점을 강조해 왔습니다.c
15, 16. (ㄱ) 로마 13장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인해 무슨 더 나은 균형 잡힌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까? (ㄴ) 무슨 질문들이 아직 대답되지 않았습니까?
15 이 해결의 실마리로 로마 13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게 되자, 여호와의 백성은 정치 권위에 대한 합당한 존경심과 매우 중요한 성경 원칙들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 97:11; 예레미야 3:15) 이로 인해 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국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합당한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 주면서도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함이 확실해졌습니다.
16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국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고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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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침파수대—1996 |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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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침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십시오.”—로마 13:7.
1, 2. (ㄱ) 예수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카이사르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합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의 첫째 가는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예수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있고, 카이사르 즉 국가에 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이 몇 마디 말씀으로, 그분은 적들을 당황하게 하셨으며, 하느님과의 관계와 국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균형 잡힌 태도를 간결하게 요약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분에 대하여 경탄하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마가 12:17.
2 물론, 여호와의 종들의 첫째 가는 관심사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시 116:12-14)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예수께서 어떤 것들은 카이사르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 때문에 카이사르가 요구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돌려 줄 수 있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 13:7) 현대에 많은 법률가들은 정부의 권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디에서나 사람들과 정부들은 자연법의 구속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3, 4. 자연법, 계시된 법, 인간의 법에 관한 무슨 흥미 있는 해설들이 있습니까?
3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에 관하여 쓸 때 이 자연법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의 창조 이래, 그분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곧 그분의 영원한 권능과 신성까지도 그 만들어진 것들을 통하여 지각되고 명확히 보이므로 그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반응을 보인다면, 자연법은 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양심을 움직이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더 말하였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들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언제나, 비록 율법이 없어도 그 사람들 자신이 그들에게 율법이 됩니다. 그들이야말로 율법의 내용이 자기들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실증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양심이 그들과 함께 증언[합니다].”—로마 1:19, 20; 2:14, 15.
4 18세기에, 영국의 유명한 법률가 윌리엄 블랙스톤은 이렇게 썼습니다. “인류[만큼이나] 오래 된 그리고 하느님께서 친히 정하신 이 자연의 법[자연법]은 물론 다른 어떤 법에 대한 의무보다 중요하다. 자연의 법은 지구 전역에, 모든 나라에 그리고 모든 시대에 구속력이 있다. 이 자연의 법에 배치될 경우 어떤 인간의 법도 아무 효력이 없다.” 블랙스톤은 계속해서 성서에 나오는 “계시된 법”에 관해 말하면서 이렇게 해설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기초 즉 자연의 법과 계시의 법에 모든 인간의 법은 의존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가지 법과 배치되는 어떤 인간의 법도 묵과[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마가 12:17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께서 하느님과 카이사르에 관해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분명히, 카이사르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한계를 정해 놓으신 범위가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사도들에게 예수에 관하여 더는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러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이렇게 올바로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사도 5:28, 29.
“하느님의 것”
5, 6. (ㄱ) 왕국이 1914년에 탄생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꼭 기억해야 합니까? (ㄴ)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봉사자라는 증거를 어떻게 제시합니까?
5 특히 여호와 하느님 곧 전능자께서 그리스도의 메시아 왕국을 통하여 왕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하신 해인 1914년 이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계시 11:15, 17) 이전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의 법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요한 17:16)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느님께 헌신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더는 그들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야 합니다. (시 100:2, 3) 바울이 쓴 바와 같이, “우리는 여호와께 속합니다.” (로마 14:8)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침례받을 때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성직 임명을 받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바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우리가 ··· 봉사자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하셨습니다.”—고린도 둘째 3:5, 6.
6 사도 바울은 또한 “나는 나의 봉사의 직무를 영광스럽게 여깁니다”라고 썼습니다. (로마 11:13) 확실히 우리도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봉사의 직무에 전 시간 참여하든 부분적으로만 참여하든 간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봉사의 직무에 임명하셨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고린도 둘째 2:17) 우리의 지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참으로 좋은 소식의 봉사자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첫째 3:15)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직무는 그의 행실로도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도덕관을 추천하고 실천해야 하며, 가족의 연합을 옹호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며,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로마 12:17, 18; 데살로니가 첫째 5:15)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봉사의 직무가 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카이사르의 명령으로 그러한 것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의 것” 가운데 포함되어야 합니다.
“카이사르의 것”
7. 납세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평판은 어떠합니까?
7 여호와의 증인은 “위에 있는 권위”인 정부 통치자들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 13:1) 그렇기 때문에 카이사르 즉 국가가 합법적인 요구를 할 때, 그들은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에 따라 이러한 요구에 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본이 되는 납세자들 가운데 포함됩니다. 독일의 일간지 「뮌히너 메르쿠어」는 여호와의 증인에 관하여 이렇게 보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연방 공화국 내에서 가장 정직하고 가장 철저한 납세자들이다.”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스탐파」는 이렇게 논평하였습니다. “그들[여호와의 증인]은 누구라도 바람직하게 여길 만한 매우 충성스러운 시민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탈세를 하거나 불편한 법을 피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종들은 ‘그들의 양심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합니다.—로마 13:5, 6.
8. 카이사르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금전적인 세금으로 국한됩니까?
8 “카이사르의 것”은 납세에만 국한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른 것들, 이를테면 두려움 및 존중과 같은 것들도 열거하였습니다. 독일 학자 하인리히 마이어는 자신의 저서 「마태의 복음서 비평 및 해석 편람」(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Gospel of Matthew)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이라는 말을 근거로 ··· 우리는 그것이 단지 시민세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되며, 합법적인 통치에 입각하여 카이사르에게 권리가 부여된 모든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가 E. W. 반스는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출현」에서, 그리스도인은 의무일 경우 세금을 낼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 속한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치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아닌 한, 다른 모든 국가 의무를 받아들인다”고 기술하였습니다.
9, 10. 어떤 그리스도인은 카이사르에게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돌려 주는 일에 관해 어떤 망설이는 태도를 보일지 모르며, 그러나 어떤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까?
9 국가는 정당하게 하느님께 속한 것들을 빼앗는 일 없이, 어떤 것들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카이사르에게 돈을 세금의 형태로 합법적으로 바칠 수는 있지만 그 밖의 것은 어떤 것도 바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은 신권 활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것은 무엇이든 카이사르에게 바치기를 괴로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우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신성한 봉사 외의 다른 일들에도 시간을 보낼 것을 분명히 기대하십니다. (마가 12:30; 빌립보 3:3) 예를 들어, 결혼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데 시간을 바치라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한 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활동이 “주의 일”이 아닌 “세상의 일”임을 언명합니다.—고린도 첫째 7:32-34; 비교 디모데 첫째 5:8.
10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추종자들이 세금을 ‘돌려 주’는 것을 정당하다고 인정하셨으며, 그렇게 돌려 주는 것에는 분명히 여호와께 바쳐진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포함되는데—우리의 생활 전부가 하느님께 바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의 평균 과세액이 수입의 33퍼센트일 경우(일부 나라들은 과세액이 이보다 더 많음), 그것은 일반 노동자가 매년 넉 달분의 자기 소득을 세무서에 납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해서, 노동 연한의 끝에 일반 노동자는 “카이사르”가 요구하는 세금을 버는 일에 약 15년을 바친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학교 교육 문제를 고려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부모에게 자녀들을 최소한 몇 년간 학교에 보낼 것을 법으로 요구합니다. 학교 교육 연수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상당 기간 학교에 보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학교 교육이 대개 유익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녀의 생활에서 얼마나 되는 기간을 학교에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쪽은 카이사르이며,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카이사르의 결정에 따릅니다.
11, 12. (ㄱ) 카이사르는 많은 나라에서 무슨 요구를 합니까? (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병역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11 일부 나라들에서 카이사르가 요구하는 또 다른 것은 병역 의무입니다. 20세기에,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전시에 그리고 일부 나라들에서는 평화의 시기에도 이 마련을 제정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이 의무는, 모든 젊은이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여러 해 동안 혈세라고 불렸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바칠 수 있는 것입니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훌륭한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믿음은 그들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국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종교 백과 사전」(The Encyclopedia of Religion)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를 포함한 초기 교부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생명을 빼앗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점을, 즉 그들이 로마 군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원칙이 있었음을 확언하였다.” C. J. 카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초기 교회와 세계」(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적어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 때[기원 161-180년]까지는, 어떤 그리스도인도 침례받은 후에 군인이 되지 않았다.”
13. 그리스도교국 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병역에 대해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13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성원들은 왜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습니까? 4세기에 있은 급격한 변화 때문입니다. 가톨릭 저술물인 「그리스도교 공의회 역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ouncils)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교의 황제들의 통치 아래 있던 ···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병역과 관련하여 종교적 도덕 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기를 들기를 단호히 거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탈하였다. [기원 314년에 열린 아를의] 종교 회의에서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도입된 변화에 대해 고려하던 중에, 그리스도인은 전시에 군 복무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발표하였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우호적인 군주 아래 교회가 국가와 평화로운 상태에[보조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가르침을 버린 결과로,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자기들의 양 무리에게 나라들의 군대에서 복무할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입장을 취하기는 하였지만 그러하였습니다.
14, 15. (ㄱ) 일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근거로 병역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합니까? (ㄴ) 면제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병역 문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무슨 성경 원칙들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14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서 다수를 따라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헌신하고 침례받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직자들에게 병역을 면제해 주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이 마련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는 실제로 성직자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둘째 4:5)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심지어 전시에도 그러한 면제를 허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역 의무를 시행하는 많은 나라들에서는, 평화시에 성직자들인 여호와의 증인에게 면제를 허용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공적 봉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계속 도울 수 있습니다.
15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성직자들에게 면제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 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경우에 그는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에 따라 개인적인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 6:5) 카이사르의 권위를 고려함과 동시에, 그는 자기가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을 신중히 고려할 것입니다. (시 36:9; 116:12-14; 사도 17:28)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의 표가 동료인 모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임을, 심지어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나 다른 부족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요한 13:34, 35; 베드로 첫째 2:17) 더 나아가, 그는 이사야 2:2-4, 마태 26:52, 로마 12:18, 14:19, 고린도 둘째 10:4, 히브리 12:14과 같은 성구들에 나오는 성경 원칙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 봉사
16. 일부 나라들에서, 카이사르는 병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비군사적 봉사를 요구합니까?
16 그러나 국가에서 성직자들에게 면제를 허용하지는 않지만 일부 개인이 병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들 중 많은 나라는 그러한 양심적인 사람들이 병역 이행을 강제로 하게 하지 않도록 마련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사회에서의 유용한 일과 같은 요구된 시민 봉사를 비군사적 국가 봉사로 여깁니다.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봉사를 할 수 있습니까? 이 경우에도,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을 근거로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17. 비군사적 시민 봉사에 대한 어떤 성서적 선례가 있습니까?
17 성서 시대에는 의무적인 봉사가 실시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역사 서적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유대 주민들에게서 징수하는 세금과 부과금들 외에, 또한 부역[당국이 강요하는 무보수 노역]이 있었다. 이것은 중동에서 오래 된 제도였으며, 그리스와 로마 당국자들에 의해 계속 유지되었다. ··· 신약에도 유대에서의 부역의 예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제도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습과 일치하게, 군인들은 키레네의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고통의 기둥]를 지게 하였다(마태 5:41; 27:32; 마가 15:21; 누가 23:26).”
18. 여호와의 증인은 어떤 비군사적이고 비종교적인 형태의 지역 사회 봉사에 자주 협력합니까?
18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일부 나라의 시민들은 국가나 지방 당국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지역 사회 봉사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이것은 우물을 파거나 도로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특정한 일인 때도 있고, 매주 도로나 학교나 병원 청소에 참여하는 일과 같은 정기적인 일인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민 봉사가 지역 사회를 위한 것이면서 거짓 종교와 관련이 없거나 어떤 면으로든 여호와의 증인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경우, 증인들은 흔히 순응하였습니다. (베드로 첫째 2:13-15) 이런 일은 흔히 훌륭한 증거를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증인들이 반정부적이라는 거짓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때때로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비교 마태 10:18.
19. 카이사르가 일정 기간 비군사적 국가 봉사를 수행할 것을 요구할 경우, 그리스도인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19 그러면 국가가 민간 행정 기관의 감독 아래 실시되는 국가 봉사의 일부로서 시민 봉사를 그리스도인에게 일정 기간 수행하도록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경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양심에 근거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로마 14:10) 카이사르의 요구 조건에 직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a 또한 그 문제를 회중 내의 장성한 그리스도인들과 논의하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개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잠언 2:1-5; 빌립보 4:5.
20. 무슨 질문들과 성경 원칙들이 그리스도인이 비군사적 국가 시민 봉사에 관한 문제를 놓고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20 그러한 연구 조사를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성서 원칙들을 고려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정부들과 권위들에게 ··· 통치자들로서 순종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 합리적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을 온전히 보”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디도 3:1, 2)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제안받은 시민 활동을 조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활동을 받아들일 경우, 그들은 그리스도인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까? (미가 4:3, 5; 요한 17:16) 그 활동은 그들을 일부 거짓 종교와 관련을 맺게 할 것입니까? (계시 18:4, 20, 21) 그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불합리하게 제한할 것입니까? (마태 24:14; 히브리 10:24, 25)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요구된 봉사를 수행하면서도 계속 영적 진보를 할 수 있고, 아마도 전 시간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기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까?—히브리 6:11, 12.
21. 비군사적 국가 시민 봉사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형제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지 간에, 회중은 그 형제를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21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정직한 대답이 그로 하여금 국가 시민 봉사가 권위에 대한 순종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이라고 결론 내리게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그 사람이 내려야 할 결정입니다. 임명된 장로들과 그 외의 사람들은 그 형제의 양심을 온전히 존중하고 계속 그를 좋은 신분의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시민 봉사를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경우, 그의 견해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 역시 좋은 신분을 유지하며, 사랑에 찬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고린도 첫째 10:29; 고린도 둘째 1:24; 베드로 첫째 3:16.
22.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간에, 우리는 무슨 일을 계속 행할 것입니까?
22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존중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존중”을 나타내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 13:7) 우리는 훌륭한 질서를 존중하며 평화롭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시 34:14) 우리는 심지어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 관하여” 기도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받을 때 그러합니다.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려 주는 결과로, 우리는 “경건한 정성을 다하여 진지한 가운데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 첫째 2:1, 2) 무엇보다도, 우리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계속 선포할 것이며, 양심적으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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