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어떤 사람을 벗으로 삼을 것인가?
1, 2. (ㄱ) 그리스도인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합니까? (ㄴ) 예레미야가 어떤 친구를 선택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직장 동료나 이웃이나 학교 친구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혹은 고용주가 거짓말이나 불법적인 일을 하라고 요구하거나 정부 관리가 중립 입장에 어긋나는 일을 강요한다면 어떠합니까? 아마 당신의 양심은 그런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발할 것입니다. 거절할 경우 조롱을 당하거나 그보다 더 큰 해를 입게 된다 해도 그러할 것입니다.
2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예레미야도 자주 그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여러 해 동안 봉사하면서 상대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를 낙담에 빠뜨려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과 가깝게 접촉해야 했지만, 분명 그들을 친구로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그가 선택한 벗들은 그를 지원해 주고 충실을 유지하려는 결심을 지키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예레미야의 벗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이제 예레미야가 벗을 선택한 방식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가?
3.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서 무슨 말을 듣기 원했으며, 예레미야는 어떤 대답을 해 주었습니까?
3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시드기야 왕은 몇 차례 예레미야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시드기야 왕은 자신의 왕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으며 안심이 되는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유다를 적들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사람을 보내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여쭈어 보시오.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우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오. 혹시 여호와께서 그분의 모든 놀라운 일들에 따라 우리에게 행하시어, [느부갓레살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하실지 모르오.” (예레미야 21:2) 시드기야 왕은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 학자는 시드기야를 “안심이 되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의사를 거듭거듭 찾아가면서도 처방받은 약은 먹지 않으려 하는 환자”에 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시드기야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서 환심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소식을 바꾸기만 하면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이라고 선포하도록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예레미야 32:1-5 낭독.
4. 직장 동료나 그 밖의 사람들을 벗으로 삼는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합니까?
4 어떤 면으로 볼 때 우리도 예레미야와 비슷한 입장에 있습니다. 아마 당신도 이웃이나 직장 동료나 급우들과 어느 정도 접촉할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친분이 있는 동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하느님의 지침을 듣거나 따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혔는데도 그들을 벗으로 사귈 것입니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와의 접촉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조언을 따르기를 거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에게는 왕의 잘못된 생각에 동조하거나 그의 비위를 맞출 의무가 없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왕의 뜻대로 했다면, 시드기야는 그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관대하게 호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압력이나 유혹이 있었어도 시드기야와 가까운 사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취하게 된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본에 따라 우리도 자신이 선택한 친구들이 하느님께 충성하도록 격려해 주는 사람인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과 접촉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 첫째 5:9, 10)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벗으로 삼는다면 하느님과의 벗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가?
5, 6. 일부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잠잠하게 만들려고 어떻게 했습니까?
5 시드기야 외에도 예레미야에게 나쁜 영향을 주려고 한 사람들이 더 있었습니다. 제사장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렸는데’ 아마도 그에게 39대의 매를 때리도록 명령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0:2; 신명 25:3) 유다의 몇몇 방백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한 다음 예레미야를 “족쇄의 집”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갇힌 지하 감옥은 환경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여러 날이 지나자 그는 그곳에서 죽게 될 것 같아 두려워졌습니다. (예레미야 37:3, 15, 16 낭독) 그 후 예레미야는 풀려나 한동안 자유롭게 지냈지만, 다른 방백들이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를 처형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유다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는 진창뿐인 저수조에 던져져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38:1-4) 우리는 예레미야가 구출되어 그처럼 끔찍한 최후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보면 올바로 처신했어야 하는 자들이 하느님의 예언자의 말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그에게 화를 내고 공격하기까지 했습니다.
6 예레미야에게는 당국자 외에도 적들이 더 있었습니다. 한번은 예레미야의 고향 도시인 아나돗 사람들 즉 그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예언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예레미야 11:21) 그들은 예레미야에게서 들은 소식을 싫어했고 그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이웃이 아니라 여호와를 벗으로 선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로 협박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멍에를 예시적으로 사용하여 유다 사람들에게 계속 살려면 바빌론 왕의 멍에 아래로 들어가라고 촉구하자,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벗긴 다음 꺾어 버렸습니다. 그 거짓 예언자는 여호와께서 “내가 바빌론 왕의 멍에를 꺾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냐는 바로 그해에 사망했으며, 누가 믿을 만한 예언자였는지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예레미야 28:1-11, 17) 예레미야가 경고한 대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요하난과 다른 군대 대장들은 유다 땅에 머물러 있으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거짓이오. 우리 하느님께서 ··· 당신을 보내어 ‘이집트로 들어가 거기서 ··· 거주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오.” 그들은 이집트로 갈 때 예레미야와 바룩을 데리고 감으로 여호와께 더욱 반항적으로 행동했습니다.—예레미야 42:1–43:7.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습니까? 예레미야의 본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7. 여호와께 충실을 유지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
7 여러 해 동안 예레미야는 의심을 품은 사람들과 반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한발 물러서서 하느님이나 그분의 말씀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당신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아마 당신도 예레미야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상대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당신과 하느님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벗으로 선택할 것입니까? 하느님의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것이 현명하겠습니까? 예레미야가 당신의 입장이라면 생활 방식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진리를 배척하거나 인간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벗으로 선택하겠습니까? (역대 둘째 19:2) 하느님께서는 그분이 아니라 사람을 신뢰할 때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를 예레미야에게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17:5, 6 낭독) 이 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8.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8 일부 그리스도인은 고객을 접대하면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거나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하다 보면 부패한 교제에 빠지거나 저속한 말이나 과음을 할 위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득을 얻거나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나쁜 교제를 피하기로 한 것도 당연합니다. 혹은 고용주나 직장 동료가 고객을 대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부정직한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참그리스도인은 주변 사람에게 휩쓸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문제가 있을 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레미야와 같은 좋은 본에 대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올바른 행로에 고착하여 선한 양심을 유지했고 더 중요한 것으로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지켰습니다.
9. 인기를 얻고자 하면 어떤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까?
9 예레미야는 자신의 태도와 신념 때문에 동족인 유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18:18) 하지만 그는 “인기 있는 행로”를 따르는 동족과 달라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8:5, 6) 심지어 예레미야는 때때로 외로이 “혼자 앉아 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한 사람과 함께 있거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과 어울리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예레미야 9:4, 5; 15:17 낭독) 당신은 어떠합니까? 예레미야 시대처럼 오늘날에도 하느님께 불충실한 행로가 사람들의 인기를 끕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호와의 종들은 친구를 신중하게 사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레미야에게 벗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변호하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에 대해 알아보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벗을 사귀었는가?
10, 11. (ㄱ) 예레미야는 어떤 원칙에 따라 벗을 선택했습니까? (ㄴ) 예레미야의 벗들 중에는 누가 있었으며, 그들에 대해 어떤 질문이 생깁니까?
10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을 벗으로 사귀었습니까? 그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악하고 속임수를 쓰고 불공정하고 폭력적이고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고 부도덕한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참숭배를 저버리고 우상 숭배를 함으로 영적 매춘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동족인 유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촉구했습니다. “아무쪼록, 각자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너희의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여라.” (예레미야 18:11) 예루살렘이 멸망된 뒤에도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사랑의 친절의 행동”과 “자비”와 “충실함”을 찬양했습니다. (애가 3:22-24)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만을 친구로 삼기 원했습니다.—예레미야 17:7 낭독.
11 우리는 예레미야가 벗이나 가까운 동료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에벳-멜렉, 바룩, 스라야, 사반의 아들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분명 그의 편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질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예레미야와 어떤 교류가 있었는가? 어떤 면에서 좋은 친구였는가? 예레미야가 충절을 유지하도록 어떻게 도와주었는가?’ 이제 자신에게 적용할 점이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이 질문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2. (ㄱ) 58면 그림에 있는 예레미야와 바룩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습니까? (ㄴ) 스라야는 누구였으며, 그에 대해 어떤 점이 알려져 있습니까?
12 예언자 예레미야의 가장 가까운 벗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를 신임한 예레미야는 자신이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의 선언을 받아 적는 책임을 그에게 맡겼으며, 그런 다음 완성된 두루마리를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서 그다음에는 유다의 방백들 앞에서 낭독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 36:4-8, 14, 15) 예레미야처럼 바룩도 하느님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혼란스러웠던 유다의 마지막 18년 동안 비슷한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영적 임무를 함께 수행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려움에 직면했고 적에게서 피신해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여호와께 격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바룩은 유다의 탁월한 서기관 가문 출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를 “비서관”이라고 부르며, 그의 형제 스라야는 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스라야도 바룩처럼 여호와의 예언적 선언을 전달하는 일을 예레미야와 함께 수행했습니다. (예레미야 36:32; 51:59-64) 네리야의 이 두 아들이 그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예레미야와 함께 일한 것은 그에게 힘과 격려의 근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신도 여호와의 봉사에서 함께 충실히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힘과 격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어떤 벗들을 선택했는지를 보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3. 63면 그림에 있는 것처럼, 에벳-멜렉은 자신이 예레미야의 좋은 친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했습니까?
13 에벳-멜렉 역시 예레미야에게 큰 힘이 된 동료였습니다. 화가 난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물이 없는 저수조에 던져 넣어 죽게 내버려 두었을 때 그를 담대하게 변호한 것은 외국인인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집에서 환관 즉 관리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베냐민 문에 앉아 있는 시드기야에게 다가갔습니다. 에벳-멜렉은 시드기야에게 저수조의 진창 속에 빠져 있는 예레미야를 구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용기 있게 청했습니다. 그가 30명을 데리고 예레미야를 구하러 간 것을 보면, 아마도 예레미야의 적들이 무력을 휘두르며 방해할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38:7-13)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와 얼마나 친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여호와와 벗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은 친한 친구였을 것입니다. 에벳-멜렉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예언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벳-멜렉은 방백들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했으며,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분명 그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친히 그에게 이런 보증을 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재앙이 닥치는] 날에 너를 구출하겠다. ··· 네가 나를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9:15-18 낭독) 이 말씀에는 그가 좋은 친구라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당신도 이런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습니까?
14. 사반의 가족에 대해 그리고 그들과 예레미야의 관계에 대해 어떤 점이 알려져 있습니까?
14 사반의 아들 세 명과 손자 한 명도 예레미야의 벗이었습니다. 그 가족 중에는 고위 관리가 많았으며, 사반은 요시야 왕의 비서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적들이 처음에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을 때,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와 함께 있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주지 ···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6:24) 아히감에게는 그마랴라는 친형제가 있었습니다. 바룩이 하느님의 심판의 소식을 공개적으로 낭독하자,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는 그 소식을 듣고서 아버지와 다른 방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여호야김의 반응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숨어 있을 것을 권했습니다. 왕이 하느님의 소식을 배척했을 때, 그마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왕에게 두루마리를 태우지 말도록 탄원했습니다. (예레미야 36:9-25) 예레미야는 바빌론에 유배된 유다 사람들에게 보내는 예언이 담긴 편지를 사반의 다른 아들인 엘라사에게 맡겼습니다. (예레미야 29:1-3) 이처럼 사반의 아들 세 명과 손자 한 명이 하느님의 예언자인 예레미야를 지원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 대해 얼마나 감사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좋아하는 음식이 비슷하거나 즐기는 여가 활동이나 취미가 같아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훨씬 더 의미 깊은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지혜롭게 선택하라
15. 예레미야는 벗을 선택하는 면에서 어떻게 훌륭한 본을 보였습니까?
15 예레미야가 동시대의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살펴보면 배울 점이 있습니다. 왕과 여러 방백과 거짓 예언자와 군대 대장들은 그에게 압력을 가해서 그가 전하는 소식의 내용을 바꾸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좋아할 리가 없었지만, 아무튼 예레미야는 그들과 벗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에게 가장 좋은 벗은 여호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충실을 유지하다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적의의 대상이 되더라도 그러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애가 3:52-59 낭독) 그렇지만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예레미야만이 아니었습니다.
16, 17. (ㄱ) 여호와의 종은 좋은 벗에게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든 최상의 벗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16 에벳-멜렉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용기 있게 단호한 행동을 취하여 예레미야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바룩은 기꺼이 예레미야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그가 여호와의 소식을 전달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있는 좋은 벗들도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현재 20세이고 정규 파이오니아인 캐머런은 또 다른 파이오니아인 카라가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을 고맙게 여깁니다. 캐머런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과 행동을 통해 카라는 여호와를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두도록 격려해 주었어요.” 이 두 자매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카라는 정기적으로 캐머런에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격려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캐머런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카라는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게 없었어요. 우리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도 알았고 언니가 반항적인 태도로 진리를 버렸을 때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도 알고 있었죠. 그 힘겨운 기간 내내 카라는 나를 도와주었어요. 카라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지 상상할 수 없어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제게 힘이 되어 주었죠.”
17 당신도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좋은 벗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은 당신과 같은 믿음과 가치관과 여호와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 비슷한 시련을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인 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려움을 겪으면 그들이 격려해 줄 수 있으며, 그들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당신이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여호와의 봉사에서 기쁨을 누리면 그들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벗 관계는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잠언 17:17; 18:24; 27:9.
18. 예레미야가 선택한 벗들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8 예레미야가 선택한 벗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견해를 가진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과 일치하게 행동하는 것은 예레미야 시대 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중요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여호와의 축복 속에서 기꺼이 대다수의 동족과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레미야는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원해 주는 사람들을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레미야에게서 친구를 지혜롭게 선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잠언 13:20; 22:17.
친구로 삼을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선택할 때 어떻게 예레미야의 본을 따를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