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세상을 바꾼 네 단어
1. 오래 전에 벽에 쓰인 네 단어가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나 컸습니까?
회벽에 쓰인 간단한 네 단어. 하지만 그 네 단어 때문에 한 강력한 통치자는 무서워 제정신을 잃을 뻔하였습니다. 그 단어들은 두 왕이 왕좌를 잃을 것이며, 그 중 한 왕은 사망할 것이고, 위력 있는 한 세계 강국이 종말을 고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단어들은 숭상받던 한 종교 체제가 굴욕적인 일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로서, 그 단어들은 사람들이 대부분 여호와에 대한 순결한 숭배나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존중심을 거의 나타내지 않던 때에, 여호와에 대한 순결한 숭배를 드높였으며 여호와의 주권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 단어들은 심지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세계 사건들에 빛을 비춰 주기까지 합니다! 네 개밖에 안 되는 단어가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살펴보기로 합시다.
2. (ㄱ) 느부갓네살이 사망한 다음 바빌론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ㄴ) 이제 어떤 통치자가 권력을 잡았습니까?
2 다니엘 4장에 묘사된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교만한 느부갓네살 왕의 43년간의 바빌론 통치는 기원전 582년에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습니다. 그의 가문에서 연속적으로 계승자들이 나왔지만, 그들의 통치는 때 이른 사망이나 암살로 끝났습니다. 마침내 나보니두스라는 사람이 반역에 의해 왕좌를 획득하였습니다. 달의 신(神)인 ‘신’을 섬기는 고위 여제사장의 아들인 나보니두스는 바빌론 왕가와는 혈연 관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권위자들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나보니두스는 자신의 통치를 합법화하기 위해서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하였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벨사살을 섭정자로 삼았으며, 한 번에 여러 해씩 바빌론을 그 아들에게 맡겼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외손자였을 것입니다. 벨사살은 자기 할아버지의 경험으로부터, 여호와가 어떤 왕이든 비천해지게 하실 수 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다니엘 4:37.
무절제하게 된 잔치
3. 벨사살은 어떤 잔치를 베풀었습니까?
3 다니엘 5장은 연회로 시작됩니다. “벨사살 왕은 천 명의 고관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니엘 5:1) 우리가 능히 상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모든 사람을 왕의 첩들과 후궁들과 함께 앉히려면 틀림없이 거대한 연회장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한 학자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연회는 대개 취한 가운데 끝났지만 성대하였다. 외국에서 수입해 온 포도주와 온갖 귀한 요리가 식탁에 가득 배설되었다. 향수 냄새가 홀에 가득하였고, 가수들과 악기 연주자들이 모인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벨사살은 모두가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연회를 주재하면서 포도주를 마셨는데,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4. (ㄱ)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기원전 539년 10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밤에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침공하려는 군대가 앞에 있는데도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던 것 같습니까?
4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이날 밤—기원전 539년 10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밤—에 그러한 잔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는 것은 이상해 보입니다. 그 나라는 전쟁 중이었고, 상황은 그들에게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얼마 전에, 침공해 오는 메디아-페르시아 연합군의 손에 패배를 당하여 바빌론의 남서쪽에 있는 보르시파로 도피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바빌론 바로 외곽에는 키루스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벨사살과 그의 고관들은 걱정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들의 도시는 난공불락인 바빌론이었던 것입니다! 바빌론의 웅장한 성벽은, 도시를 관통해 흐르고 있는 거대한 유프라테스 강물로 채워진 깊은 해자 위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백 년이 넘도록, 바빌론을 기습한 적(敵)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걱정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벨사살은 아마 자기들의 흥청거리는 소리가 밖에 있는 적에게 자기들의 자신감을 전시하는 효과가 있어 적을 낙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추리하였을지 모릅니다.
5, 6. 벨사살은 포도주에 취하여 어떤 일을 하였으며, 그것이 여호와를 대단히 모욕하는 일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얼마 안 있어, 벨사살은 과음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잠언 20:1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포도주는 비웃는 자”입니다. 이 경우, 왕은 포도주 때문에 실로 대단히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가져온 신성한 그릇들을 잔치에 내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전리품으로 취한 이 그릇들은 순결한 숭배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과거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 그릇들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던 유대인 제사장들조차도 자기 자신을 깨끗이 지켜야 한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다니엘 5:2; 비교 이사야 52:11.
6 그런데 벨사살은 훨씬 더 불손한 행동을 할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왕과 고관들과 후궁들과 첩들이 ··· 포도주를 마시며, 금과 은과 구리와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습니다. (다니엘 5:3, 4) 그러니까 벨사살은 자기가 섬기는 거짓 신들을 여호와보다 높이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유대인 포로들을 멸시하였으며, 그들의 숭배를 비웃고, 그들에게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시 137:1-3; 이사야 14:16, 17) 아마 이 술취한 왕은 이 유배자들에게 굴욕을 주고 그들의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 자기가 거느린 여자들이나 관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자기의 힘을 과시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지 모릅니다.a 하지만 벨사살은 권세가 주는 쾌감을 약간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벽에 쓰인 손글씨
7, 8. 벨사살의 잔치는 어떠한 일로 방해를 받았으며, 그 일은 그 왕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습니까?
7 영감받은 기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그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등잔대 앞 왕궁 회벽에 글을 썼고, 왕은 글을 쓰고 있는 손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 5:5) 참으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습니다! 난데없이 한 손이 나타나더니 불이 잘 밝혀져 있는 벽쪽 가까이에서 공중에 떠 있는 것입니다. 연회장에 갑자기 침묵이 흐르면서 손님들이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 손은 회벽에 신비한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b 이것은 몹시 불길하고 쉽게 잊을 수 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임박한 운명에 대한 경고가 있었음을 암시하기 위해 “벽에 쓰인 손글씨”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8 자기 자신과 자기가 섬기는 신들을 여호와보다 높이려고 했던 이 교만한 왕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습니까? “그때에 왕은 그 얼굴빛이 변하고 그 자신의 생각으로 무서워하게 되었으며, 그의 넓적다리 관절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치기 시작하였다.” (다니엘 5:6) 벨사살은 자기의 신하들 앞에서 위대하고 존엄하게 보이고 싶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비참할 정도로 공포에 질린 인간의 산 표본이 되었습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넓적다리는 떨렸는데, 온 몸이 아주 심하게 떨리는 바람에 무릎이 서로 부딪칠 정도였습니다. 다윗이 노래 가운데서 여호와께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정말로 참되었습니다. “당신의 눈은 거만한 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낮추십니다.”—사무엘 둘째 22:1, 28; 비교 잠언 18:12.
9. (ㄱ) 벨사살의 공포는 왜 경건한 두려움과 동일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ㄴ) 벨사살 왕은 바빌론의 지혜자들에게 어떠한 제안을 하였습니까?
9 벨사살이 느낀 두려움은 경건한 두려움과 동일한 것이 아니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경건한 두려움은 여호와를 깊이 숭상하는 마음으로서 모든 지혜의 시작입니다. (잠언 9:10) 그렇습니다. 벨사살의 두려움은 병적인 두려움으로서, 그러한 두려움은 떨고 있는 왕에게 지혜와 같은 것을 얻게 해 주지 못하였습니다.c 벨사살은 자기가 방금 모욕한 하느님에게 용서를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초혼자들과 칼데아 사람들과 점성술사들”을 데려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이 글을 읽고 나에게 그 해석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주색 옷을 입히고 목에 금목걸이를 걸어 줄 것이며, 그는 왕국에서 셋째 가는 자로 통치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 5:7) 왕국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라면, 통치하는 두 왕 즉 나보니두스와 벨사살 자신 바로 다음 가는 실로 위력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라면 보통은 벨사살의 맏아들을 위해 따로 확보해 두었을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이 기적으로 쓰인 글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마음이 그 정도로 절박했던 것입니다!
10. 벽에 쓰인 손글씨를 해석하려는 지혜자들의 노력은 어느 정도나 성공을 거두었습니까?
10 지혜자들이 그 큰 연회장으로 줄지어 들어왔습니다. 바빌론은 거짓 종교에 깊이 빠져 있고 신전이 매우 많은 도시였기 때문에 지혜자들이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전조를 읽을 수 있고 신비한 글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혜자들은 자기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해 틀림없이 흥분하였을 것입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의 재주를 발휘하여 왕의 은혜를 얻고 권세가 큰 지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글을 읽거나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줄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d—다니엘 5:8.
11. 바빌론의 지혜자들이 그 글을 해독할 수 없었던 어떤 이유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11 바빌론의 지혜자들이 그 글 자체—그 글자들 자체—가 해독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점을 알게 되었다면, 이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현혹시키는 해석, 어쩌면 왕에게 아첨하는 해석까지도 마음대로 꾸며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그 글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람어나 히브리어와 같은 언어들은 모음 없이 썼기 때문에, 단어마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지혜자들은 아마 어떤 의미로 쓰인 단어인지를 결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설령 결정은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단어들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여 해석할 정도까지는 못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비참하게도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12. 지혜자들의 실패로 말미암아 어떤 점이 증명되었습니까?
12 그리하여 그 지혜자들은 협잡꾼임이 드러났으며, 그들이 숭상하던 종교 체제도 사기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벨사살은 이 종교가들에 대한 자기의 신뢰가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자 한층 더 무서워하게 되어 얼굴빛이 더욱 창백해졌고, 심지어 그의 고관들까지도 “당황하였”습니다.e—다니엘 5:9.
통찰력이 있는 한 사람이 불려 나오다
13. (ㄱ) 왕비가 다니엘을 부르라고 제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다니엘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습니까?
13 이 위기의 순간에, 왕비—아마 황태후—가 직접 연회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잔치에 소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벽에 쓰인 손글씨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그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모든 지혜자 위에 임명하였습니다. 왕비는 다니엘을 “비상한 영과 지식, 그리고 ···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벨사살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으므로, 그 예언자는 느부갓네살이 사망한 후 아마 정부에서 맡고 있던 높은 지위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탁월한 지위는 다니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쯤 그의 나이는 아마 90대였을 것이고, 여전히 충실하게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한 지가 80년쯤 되었는데도, 그는 아직도 히브리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왕비까지도 과거에 그에게 붙여진 바빌로니아식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그를 다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상, 왕비는 벨사살 왕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다니엘을 부르십시오. 그가 그 해석을 보여 드릴 것입니다.”—다니엘 1:7; 5:10-12.
14. 벽에 쓰인 손글씨를 보았을 때 다니엘은 어떠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14 다니엘이 벨사살 앞에 불려 나왔습니다. 이 유대인의 하느님을 방금 모욕해 놓고서 그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왕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벨사살은 다니엘을 치켜세우려고 애쓰면서, 그가 그 신비스러운 말을 읽고 설명할 수 있다면 그에게도 동일한 상—왕국에서 셋째 가는 자리—을 주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다니엘 5:13-16) 다니엘이 눈을 들어 벽에 쓰인 손글씨를 쳐다보자, 성령이 그 의미를 분별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불리한 심판의 소식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허영심이 강한 왕의 면전에서, 그것도 그의 아내들과 고관들이 있는 앞에서 어떻게 그에 관한 엄중한 심판의 소식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까? 다니엘의 난처한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왕의 치켜세우는 말과 부와 탁월한 지위를 제안하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습니까? 이 예언자는 여호와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약화시킬 것입니까?
15, 16. 벨사살은 역사로부터 어떠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우지 못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그처럼 배우지 못하는 예를 얼마나 흔히 볼 수 있습니까?
15 다니엘은 용기 있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선물은 당신에게 그대로 있게 하시고 당신의 예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래도 제가 이 글을 왕께 읽어 드리고 그 해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니엘 5:17) 그런 다음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위대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 왕은 매우 강력해서, 누구든지 자기가 택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치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고, 비천해지게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벨사살에게 “가장 높으신 하느님”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 위력 있는 왕이 거만해졌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비천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가장 높으신 하느님께서 인간 왕국의 통치자이시며 그분이 원하는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다니엘 5:18-21.
16 벨사살은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상, 그는 그릇된 교만의 죄를 범한 느부갓네살보다 한술 더 떠서 여호와에게 노골적으로 불손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 왕의 죄를 폭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여 있는 이교도들 앞에서 벨사살에게 거짓 신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용기 있는 예언자는, 그러한 쓸모 없는 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는 “당신의 호흡이 그 손 안에 있”는 하느님이라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것들을 가지고 신을 만들며, 돈이나 출세나 명예나 심지어 쾌락까지도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 중 어느 것도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빚지고 있고 우리의 모든 호흡을 의존하고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뿐입니다.—다니엘 5:22, 23; 사도 17:24, 25.
수수께끼가 풀리다!
17, 18. 벽에 쓰인 네 단어는 무엇이었으며, 그 단어들의 문자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17 연로한 이 예언자는 이제 바빌론의 지혜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증명된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벽에 손으로 기록된 글씨를 읽고 해석하였습니다. 그 단어들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메네, 메네, 테켈 그리고 파르신.” (다니엘 5:24, 25) 이 단어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8 문자적으로, 그 단어들의 의미는 “한 미나, 한 미나, 한 세겔, 그리고 반 세겔들”입니다. 각 단어는 중량에 따른 화폐 단위 중 하나를 나타낸 것이었으며, 가치가 떨어지는 순서로 배열된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수수께끼였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지혜자들이 그 글자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 글자들을 해석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못 됩니다.
19. “메네”라는 단어는 어떻게 해석되었습니까?
19 하느님의 성령의 영향으로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그 말의 해석은 이러합니다. 메네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왕국의 날을 계수하셔서 그것을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다니엘 5:26) 첫 번째 단어의 자음들은 읽는 사람이 덧붙이는 모음들에 따라, “미나”라는 단어로 읽을 수도 있었고 “세었다” 혹은 “계수하였다”에 해당하는 아람어 단어의 한 형태로 읽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유대인들의 유배 생활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언된 70년 기간 중 이미 68년이 흘러갔습니다. (예레미야 29:10) 위대한 시간 엄수자이신 여호와께서는 세계 강국으로서 바빌론이 통치하는 날수를 계수하셨으며, 그 나라의 끝은 벨사살의 연회에 참석해 있는 어느 누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사실상,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벨사살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메네”라는 단어가 두 번 쓰인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즉 그 두 사람의 왕권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20. “테켈”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떠한 설명이 있었으며, 그 단어는 어떻게 벨사살에게 적용되었습니까?
20 한편, “테켈”은 단수 형태로 단 한 번 쓰였습니다. 그것은 그 단어가 주로 벨사살에게 적용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합당한 일일 것입니다. 벨사살이 개인적으로 여호와께 심각한 불경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그 단어 자체는 “세겔”을 의미하지만, 그 단어의 자음들은 또한 “(무게를) 달았다”는 뜻의 단어로도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벨사살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테켈은 당신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다니엘 5:27) 나라들을 다 합해도 여호와에게는 천칭 저울에 얇게 앉은 먼지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사야 40:15) 그 나라들에게는 여호와의 목적을 좌절시킬 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국의 오만한 왕이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벨사살은 자신을 우주의 주권자보다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인간에 불과한 자가 감히 여호와를 모욕하고 순결한 숭배를 비웃으려고 하였지만, 그는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벨사살은 신속히 다가오고 있는 심판을 받기에 전적으로 합당하였습니다!
21. “파르신”은 어떻게 삼중적으로 말 풀이가 될 수 있었으며, 이 단어는 세계 강국으로서의 바빌론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알려 주었습니까?
21 벽에 쓰여 있는 마지막 단어는 “파르신”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단어를 단수 형태인 “페레스”라고 읽었습니다. 아마 두 왕 중 한 왕의 부재 중에 다른 한 왕에게만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단어는 삼중적으로 말 풀이를 할 수 있어 여호와의 오묘한 수수께끼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문자적으로, “파르신”은 “반 세겔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글자들은 또한 다른 두 의미—“분열”과 “페르시아 사람들”—로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페레스는 당신의 왕국이 나뉘어서 메디아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다니엘 5:28.
22. 벨사살은 수수께끼가 풀리자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그는 무엇을 바랐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22 이렇게 하여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강대한 바빌론이 이제 곧 메디아-페르시아 군대에게 함락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벨사살은 이러한 불리한 심판이 선포되는 것을 듣고 풀이 죽었지만, 자기가 한 약속은 지켰습니다. 자기의 종들을 시켜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로 치장해 주었으며, 그가 왕국의 셋째 통치자라고 공포하게 하였습니다. (다니엘 5:29) 다니엘은 이러한 영예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영예가 여호와께 돌아가야 할 영예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벨사살은 여호와의 예언자를 영예롭게 함으로 그분의 심판을 부드럽게 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후 약방문인 셈입니다.
바빌론의 무너짐
23. 벨사살이 벌인 잔치가 진행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고대의 무슨 예언이 성취되고 있었습니까?
23 벨사살과 그의 조신들이 자기네 신들을 위하여 마시며 여호와를 비웃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궁전 밖에서는 어둠 속에서 매우 극적인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거의 2세기 전에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예언이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빌론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자로 인한 모든 한숨을 내가 그치게 하였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선민에 대한 그 악한 도시의 모든 압제가 끝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무슨 수단에 의해 끝나게 될 것이었습니까? 동일한 예언에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엘람아, 올라가거라! 메디아야, 포위하여라!” 엘람은 예언자 이사야의 시대 이후에 페르시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역시 이사야가 한 동일한 예언에 예언된 대로, 벨사살이 잔치를 벌이고 있던 때에 페르시아와 메디아는 정말로 연합군을 이루어 바빌론으로 “올라가” 바빌론을 “포위”하였습니다.—이사야 21:1, 2, 5, 6.
24. 이사야의 예언은 바빌론의 무너짐에 관해 어떠한 세부점들을 예언하였습니까?
24 사실상, 이 연합군의 지휘자의 이름까지 예언되어 있었으며, 그가 사용할 전략의 핵심적인 요소들도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약 200년 전에, 여호와께서 키루스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바빌론을 공격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공격하는 동안에, 모든 장애물은 그의 앞에서 제거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빌론의 물은 “말라” 있을 것이며, 위력 있는 문들은 열려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44:27-45:3)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키루스의 군대는 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돌려 수위를 떨어뜨림으로 강바닥을 걸어서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 성벽의 문들은 부주의한 경비병들에 의해 열려 있었습니다. 세속 역사가들도 동의하는 바와 같이, 그 도시는 주민들이 흥청거리고 있을 때 침공을 당하였습니다. 바빌론은 거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함락되었습니다. (예레미야 51:30)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망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바로 그 날 밤에 칼데아의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가 그 왕국을 받았는데 그는 예순두 살쯤 되었다.”—다니엘 5:30, 31.
벽에 쓰인 손글씨로부터 배움
25. (ㄱ) 고대 바빌론이 오늘날 존재하는 거짓 종교 세계 제도의 알맞은 상징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하느님의 현대 종들은 어떤 의미에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까?
25 다니엘 5장의 영감받은 기록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바빌론은 거짓 종교 관행의 중심지로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알맞은 상징입니다. 계시록에 피에 굶주린 창녀로 묘사되어 있는 이 세계적인 사기 조직은 “‘큰 바빌론’”이라고 불립니다. (계시록 17:5)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리는 거짓 교리와 관행에 대한 모든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큰 바빌론은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을 박해해 왔습니다. 고대 예루살렘과 유다의 주민들처럼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충실한 남은 자들도, 1918년에 교직자들이 부추기는 박해로 왕국 전파 활동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을 때, 사실상 “‘큰 바빌론’”에 유배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6. (ㄱ) “‘큰 바빌론’”은 어떻게 1919년에 무너졌습니까? (ㄴ) 우리 자신은 무슨 경고에 유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경고를 발해야 합니까?
26 하지만 갑자기 “‘큰 바빌론’”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거의 소리 없는 무너짐이었습니다. 고대 바빌론이 기원전 539년에 거의 소리 없이 무너진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상징적 무너짐은 황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일은 기원 1919년에 발생했는데, 그 해에 여호와의 백성은 바빌론의 포로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느님의 승인을 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로 인해 “‘큰 바빌론’”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권세를 행사하던 일은 끝났으며, “‘큰 바빌론’”이 믿을 수 없는 사기꾼임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무너짐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으며, 큰 바빌론의 최종 멸망이 임박하였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종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성서에 있는 그대로 발해 왔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의 죄에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여자에게서 나오너라.’ (계시록 18:4) 당신은 이 경고에 유의해 왔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이 경고를 발하고 있습니까?f
27, 28. (ㄱ) 다니엘은 어떤 매우 중요한 진리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까? (ㄴ) 여호와께서 머지않아 오늘날의 악한 세상에 대해 행동을 취하실 것임을 알려 주는 무슨 증거가 있습니까?
27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벽에 쓰인 손글씨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씨는 “‘큰 바빌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우주 주권자시라는, 다니엘서의 핵심이 되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기억하십시오. 그분, 오직 그분만이 사람들 위에 통치자를 세울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다니엘 4:17, 25; 5:21) 여호와의 목적을 반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 문제로서, 여호와께서 행동을 취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박국 2:3) 다니엘의 경우에는, 그의 나이 90대가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시간이 왔습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께서 한 세계 강국—다니엘이 소년이었을 때부터 하느님의 백성을 압제해 온 강국—을 제거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28 여호와 하느님께서 하늘 왕좌에 인류를 위한 통치자를 세우셨음을 알려 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세상이 이 왕을 무시하며 그의 통치권에 반대해 왔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머지않아 왕국 통치의 반대자를 모두 제거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시 2:1-11; 베드로 둘째 3:3-7) 당신은 우리 시대의 긴급성에 따라 행동하며 하느님의 왕국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벽에 쓰인 손글씨로부터 참된 교훈을 얻고 있는 사람입니다!
[각주]
a 한 고대 비문에서 키루스 왕은 벨사살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나약한 자가 자기 나라의 [통치자]로 세워졌다.”
b 다니엘의 기록은 이러한 세세한 부면까지도 정확함이 증명되었다. 고고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고대 바빌론의 궁전 벽은 벽돌을 쌓은 다음 회반죽을 바른 것이었다.
c 바빌로니아의 미신 때문에 아마 이 기적은 훨씬 더 무섭게 느껴졌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Babylonian Life and History)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숭배했던 신들의 수에 더하여, 영들이 존재한다는 그들의 믿음도 상당히 강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정도가 매우 심해서 영들을 경계하는 기도나 주문이 그들의 종교 문학의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d 「성서 고고학 평론」(Biblical Archaeology Review)지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바빌로니아의 전문가들은 전조가 되는 표징들을 수천 가지나 목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 벨사살이 벽에 쓰인 글씨의 의미를 알고 싶다고 요구하자,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틀림없이 이 전조 백과 사전을 참조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백과 사전도 쓸모가 없었다.”
e 사전 편찬자들의 말에 따르면, 여기에 ‘당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는 마치 모임이 혼란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f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계시록—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왔다!」 책 205-71면 참조.
어떤 점을 알게 되었습니까?
● 기원전 539년 10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밤에 벨사살이 벌인 잔치는 어떻게 방해를 받았습니까?
● 벽에 쓰인 손글씨에 대한 어떤 해석이 있었습니까?
● 벨사살이 벌인 잔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바빌론의 무너짐에 대한 어떤 예언이 성취되고 있었습니까?
● 벽에 쓰인 손글씨에 대한 기록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98면 전면 삽화]
[103면 전면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