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생활이 되게 하라
1.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증인들의 가정생활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증인들은 가정생활이 행복한 사람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브라이언 윌슨 교수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증인들은 결혼 관계, 도덕 문제, 자녀 양육을 비롯한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 광범위하게 실용적인 조언을 베푼다. [그들에게는] 성경으로 확증되고 일목요연한 생활 철학으로 정리되어 있는 확실한 조언이 많이 갖추어져 있다.” 필시, 당신도 건실한 가정생활을 하는 법에 관해 하느님의 말씀에서 많은 점을 배웠을 것입니다.
2. (ㄱ) 오늘날 세상의 가정들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ㄴ) 이제 성서의 어느 책들에서 가정생활에 관한 지침을 찾아보려 할 것입니까?
2 여호와의 날이 가까워 옴에 따라 사탄은 특히 가정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가족 성원들끼리 신뢰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미가 시대에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는 동무를 믿지 말아라. ··· 네 품에 누워 있는 여인에게도 네 입 열기를 경계하여라. 아들이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딸이 어머니와 맞서 일어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맞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적이 자기 집안 사람이다.” (미가 7:5, 6) 현 세상에서 가정생활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쁜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분투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가정생활은 더 단란하고 하느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신명기 6:5-9이나 에베소 5:22-6:4 혹은 골로새 3:18-21과 같은 성구들을 적용해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열두 예언자의 책들에도 행복한 가정생활에 관한 조언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 장에서는 그 책들에 나오는 그러한 조언 몇 가지를 실례로 고려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특정한 요점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실례들을 살펴보면서, 그 예언서들에서 그 외의 교훈들을 이끌어 내는 데도 활용해 볼 만한 기본적인 연구 방식을 배우려고 해 보십시오. 이 장 끝 부분에 나오는 얼마의 참조 성구들을 사용하여 그 열두 권의 책들에서 스스로 교훈을 이끌어 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3, 4. (ㄱ)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결혼 생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ㄴ) 말라기 시대에 사람들은 결혼 생활에 대해 어떤 개탄할 만한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까?
3 우리가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첫 번째 부면은 부부 관계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혼을 결혼 생활의 문제들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혼하는 것 자체가 대개 힘든 일이어서, 19세기에 영국에서는 이혼을 하려면 의회의 결의가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러한 견해는 가정의 붕괴를 막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 이혼율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 이혼에 대한 태도가 현격하게 달라져서 ··· 이혼을 관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혼을 금기시하던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서까지 이혼은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는 기혼자들이 결혼 생활에 문제가 많으면 이혼하는 것도 한 가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기원전 5세기에 말라기 시대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혼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가 너와 네 젊은 시절부터 함께한 아내 사이에 증언하였[다]. ··· 너는 그에게 배신 행위를 하였다.” 남편들의 배신 행위 때문에 여호와의 제단이 배반당한 아내들의 눈물로, “울음과 한숨”으로 가려졌습니다. 그리고 부패한 제사장들은 그러한 잔악한 행위를 묵인하였습니다!—말라기 2:13, 14.
5. (ㄱ) 여호와께서는 이혼을 어떻게 보십니까? (ㄴ) 배우자에게 배신 행위를 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결혼 생활에 대한 말라기 시대의 개탄할 만한 태도를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말라기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또한 여호와께서 “변하지 않”으신다고 단언하였습니다. (말라기 2:16; 3:6) 요점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원래 이혼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신 적이 있습니다. (창세 2:18, 24) 그분은 말라기 시대에도 그러하셨고 오늘날에도 그러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부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종잡기 어려운 믿을 수 없는 마음을 가졌을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을 훤히 살피십니다. (예레미야 17:9, 10) 아무리 정당화하더라도 속임수나 악의적인 책략으로 이혼하는 것이라면 그분은 그것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답변할 책임이 있습니다.”—히브리 4:13.
6. (ㄱ) 이혼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를 갖는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ㄴ) 이혼에 관해 예수께서 베푸신 훈계의 주안점은 무엇이었습니까?
6 결혼 생활이 이혼의 위기를 맞고 있지는 않은 경우라도 우리는 여호와의 견해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결혼 생활에서 어려움과 불화가 생길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혼이 한 가지 해결책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손쉬운 돌파구로 여길 것입니까? 말다툼이 격렬해지면, 이혼하자는 말까지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에 관한 하느님의 견해는, 순탄한 결혼 생활을 위해 더욱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하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음행 즉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성 관계를 가지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베푸신 훈계의 주안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멍에를 함께 메게 하신 것을 아무도 갈라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말라기가 약 450년 앞서 언급한, 변하지 않는 여호와의 표준을 옹호하신 것입니다.—마태 19:3-9.
7. 말라기서에 들어 있는 훈계와 일치하게, 우리는 어떻게 배우자와 튼튼한 유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7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배우자와 튼튼한 유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말라기는 비결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너희는 너희 영과 관련하여 자신을 지켜야 하며, 배신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말라기 2:16) 이 말은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지배적인 성향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영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부당한 주의를 기울이게 만드는 유혹을 피할 것입니다. (마태 5:28) 예를 들어, 배우자가 아닌 이성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거나 치켜세우는 말을 해 주는 것을 속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면 어떠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영에 대하여 경계를 늦추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두 예언자의 책들에서 얻을 수 있는, 배우자와의 유대 관계가 튼튼해지게 하는 데 유익한 핵심적인 교훈은 ‘우리의 영’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8, 9. 호세아와 고멜에 대한 이야기가 성서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8 필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해 나가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결혼 생활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아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일어날 경우, 특히 잘못이 대부분 상대편에게 있는 것 같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앞서 이 책의 2장과 4장에서 호세아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아내 고멜은 “음행의 아내”가 되어 ‘정열적인 자기 애인들의 뒤를 쫓았습니다.’ 나중에 고멜은 버림받고 궁핍해져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값을 치르고 고멜을 도로 샀으며, 그 여자를 사랑하라는 강한 권고를 받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나고 있던 일을 실감나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는 “남편인 소유자”이셨으며, 그분의 백성은 아내로 그분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호세아 1:2-9; 2:5-7; 3:1-5; 예레미야 3:14; 이사야 62:4, 5.
9 초기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신들을 따름으로 여호와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였습니다. (탈출 32:7-10; 재판관 8:33; 10:6; 시 78:40, 41; 이사야 63:10) 북쪽 열 지파 왕국은 송아지 숭배 때문에 특히 질책받아 마땅하였습니다. (열왕 첫째 12:28-30)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남편인 소유자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정치적 애인들에게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은 발정한 고집 센 얼룩말처럼 아시리아를 따라간 적도 있었습니다. (호세아 8:9) 당신의 배우자가 그렇게 한다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10, 11. 배우자가 잘못을 범한 것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어떻게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10 호세아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의 계약 관계가 시작된 지 700년 이상 흐른 때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면 기꺼이 용서해 주려고 하셨습니다. 호세아가 예언하는 일을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803년 이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참으심은 그 후로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약 60년, 유다에 대해서는 거의 200년 더 지속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호세아의 가정사를 예로 사용하여 자신의 계약 백성에게 여전히 회개하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과의 결혼 관계를 끝낼 합법적인 사유를 가지고 계셨지만, 관련된 값을 치르시면서까지, 비유적인 아내가 돌아오도록 도울 예언자들을 계속 보내셨습니다.—호세아 14:1, 2; 아모스 2:11.
11 우리도 배우자가 잘못을 범한 것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여호와께서 하신 것처럼 행동할 것입니까? 부부 관계를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솔선하여 노력할 것입니까? (골로새 3:12, 13) 그렇게 하는 데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시면서 참으로 훌륭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 18:35; 113:5-8)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말씀하셨고’ 그들에게 부탁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사람인 우리는 더더욱 배우자의 마음에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실수를 지나쳐 주려고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미심장하게도 여호와께서 기울이신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민족의 남은 자들이 유배되어 간 바빌론의 광야에서 마음을 열었으며, 후에 여호와를 “나의 남편”이라고 부르며 고토로 돌아왔습니다.—호세아 2:14-16.a
12. 여호와께서 자신의 비유적인 아내를 대하신 일을 묵상해 보는 것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 어떻게 유익합니까?
12 심각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가 배우자와 자신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필시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비유적인 배우자가 영적 음행이라는 큰 죄를 지었는데도 기꺼이 용서하려고 하셨습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의 결혼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그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문제는 거칠거나 상처를 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배우자의 찌르는 듯한 말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면, 호세아가 겪은 일과 여호와께서 겪으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잠언 12:18) 용서하기가 더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13. 여호와께서 자신의 빗나간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3 이 역사 기록에는 유의할 점이 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계속 음행을 범하는데도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하신 것입니까? 하느님께서는 간음하는 그 민족에 관해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음행을 자기 앞에서, 간음 행위를 자기 젖가슴 사이에서 없애야 한다.” (호세아 2:2) 그 백성은 회개하고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야 하였습니다. (마태 3:8) 이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배우자의 결점보다는 자신의 결점에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이 배우자에게 잘못을 범한 경우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행로를 바꿈으로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용서라는 소중한 결과를 거두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줄”—징계의 기본 원칙
14, 15. (ㄱ) 말라기 4:1을 고려해 볼 때, 당신의 자녀를 가르쳐야 할 책임을 심각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자녀가 여호와를 알게 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신 일에 관한 열두 예언서의 내용에서 가정생활과 관련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책들에는 자녀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려 주는 점들도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자녀 양육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에는 부인의 여지가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다가오는 그 날이 틀림없이 [사람들을] 삼킬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뿌리든지 가지든지 남기지 않을 것이다.’” (말라기 4:1) 그 문책의 날에 어린 자녀들(가지들)은 그 미성년 자녀를 책임지고 있는 부모(뿌리)에 대한 여호와의 평가에 따라 공정하게 처결될 것입니다. (이사야 37:31) 부모가 지금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좋게든 나쁘게든 자녀들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 13:16) 당신(뿌리)이 여호와 앞에서 좋은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그분의 진노의 날에 당신의 자녀들(가지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스바냐 1:14-18; 에베소 6:4; 빌립보 2:12) 반면에 당신이 하느님의 승인을 받기 위해 충실하게 노력한다면 당신의 자녀들도 유익을 얻게 됩니다.—고린도 첫째 7:14.
15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요엘의 예언을 인용한 다음 이렇게 썼습니다. “믿음을 둔 일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또한 들어 본 일이 없는 분에게 어떻게 믿음을 두겠습니까?” (로마 10:14-17; 요엘 2:32)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공개 봉사의 직무에 관해 말한 것이지만, 그 원칙은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여호와에 관해 들을 기회가 없다면 어떻게 그분에게 믿음을 둘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자녀에게 여호와가 참으로 좋은 분이심을 가르쳐서 그분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의 인도를 사랑으로 따르려는 마음을 심어 주기 위해 날마다 충분한 시간을 내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여호와에 관해 항상 듣는 자녀들은 필시 영적으로 잘 성장할 것입니다.—신명 6:7-9.
16. 미가 6:3-5과 일치하게, 자녀를 징계할 때 어떻게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16 자녀가 아주 어릴 때에는 그리스도인 집회에 데리고 가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는 커 가면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자녀가 이따금 반항적인 성향을 나타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열두 예언서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대하면서 어떻게 하셨는지 유의해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가랴 7:11, 12) 예를 들어, 미가 6:3-5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으로 말씀하시는지 살펴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을 범하였는데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내 백성아, 청컨대 ··· 기억하여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심하게 비난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자녀를 징계해야 할 때에도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자녀가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자녀를 없어서는 안 될 가족 성원으로 대하면서, 업신여기는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정죄하듯 말하지 말고 부드럽게 호소하십시오. 질문을 해서 그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십시오.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노력하여 그들이 마음을 열게 하십시오.—잠언 20:5.
17, 18. (ㄱ) 자녀를 징계하는 동기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ㄴ) 자녀와 “사랑의 줄”로 결속된 유대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습니까?
17 당신이 자녀를 징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족의 평판이 나빠질까 봐 자녀를 징계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징계하는 동기를 이러한 말씀을 통해 밝히셨습니다. “나는 에브라임에게 걷는 법을 가르치고 내 팔로 그들을 안았[다]. ··· 나는 땅의 사람의 밧줄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계속 이끌었다.” (호세아 11:3, 4) 여기서 호세아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자 관계에 비합니다. 유아가 넘어질 듯 말 듯 걸음마를 하는 것을 도와주려고 자녀에게 줄을 잡게 해서 이끌어 주는 사랑 많은 부모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까? 줄이 있기 때문에 아이는 쓰러질 것 같을 때 의지할 수 있고 방향이 잘못될 때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예레미야 31:1-3.
18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신 사랑을 본받을 것입니까? 그들이 거듭거듭 하느님께 등을 돌렸지만 그분은 사랑의 줄을 속히 놓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자녀들이 때때로 빗나가거나 별것 아닌 문제로 걸려 넘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도 당신과 자녀 사이의 사랑의 유대를 유지하려고 하십시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무조건 두둔하여 그들의 악행을 눈감아 주지는 않으셨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분은 상황을 직시하셨으며 그들을 사랑으로 징계하셨고 필요한 도움을 베풀 시간을 내셨습니다. 우리도 자녀가 진리의 길에서 떠내려가는 것 같으면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많은 이 시대에 온정 어린 도움을 베풀면서 마치 줄로 이끌어 주듯 자녀를 인도하여 돌아오게 하려고 하십시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런 시간을 보내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습니다!
19. 자녀에 대해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은 자가 징계를 받아들일 것임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 반드시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며, 말일에 여호와와 그분의 선하심 앞으로 떨면서 나올 것이다.” (호세아 3:5)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징계 조처는 그분의 백성의 남은 자들에게 효과가 있었습니다. 우리 자녀에게도 그러할 것임을 확신하십시오. 자녀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십시오. 자녀에게 자애롭게 이야기하되 성서 원칙에 확고하게 고착하십시오. 빗나간 자녀가 당장은 잘 응하지 않더라도, 언제 정신을 차리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쁜 교제를 조심하라!
20. 열두 예언자의 책들에서 청소년들은 무슨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까?
20 청소년 여러분은 열두 예언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부모와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구 중 하나는 나쁜 교제를 피하는 것에 관해 알려 주는 고린도 첫째 15:33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이 열두 예언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1-23. (ㄱ) 청소년들은 에돔 사람들이 택한 행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ㄴ) 누가 참으로 당신의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까?
21 열두 예언자의 책들은 주로 하느님의 백성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지만, 오바댜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형제들이라고 불린 에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입니다.b (신명 2:4) 열두 예언서의 대부분의 책들과는 달리 오바댜서에서는 “너”라는 이인칭 대명사를 에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이제 에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때는 기원전 607년경이며 예루살렘이 포위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혈족인데도 바빌론 사람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드러내라! 드러내라!’ 하며 조소합니다. (시 137:7; 오바댜 10, 12) 그들은 유다 땅을 차지할 생각입니다. 그들은 바빌론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기까지 하는데, 오리엔트 지역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양측이 계약을 맺었음을 보여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22 오바댜가 에돔 사람들에 대해 예언하는 말에 유의하십시오. “너와 계약을 맺었던 사람들[즉 바빌론 사람들]마저 모두 너를 속였다. 너와 평화로이 지내던 사람들이 너를 대적하여 이겼다. 너와 함께 음식을 먹던 자들이 분별력 없는 사람 같은 너의 밑에 그물을 놓을 것이다.” (오바댜 7) 형제인 야곱을 버리고 바빌론 사람들을 동무로 택한 에돔 사람들은 사실상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나보니두스가 이끄는 바빌론 사람들은 에돔 사람들을 멸망시켰습니다. 말라기 시대에는 에돔의 산들이 하느님에 의해 황무지가 되어 있었고, 에돔의 상속지는 자칼이 사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말라기 1:3.
23 이제 이른바 당신의 친구들 중에서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 계약을 맺은’ 즉 친구로 지내기로 한 청소년들이 종종 서로를 속이고, 이른바 친구들 “밑에 그물을 놓”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속인 사실이 밝혀지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속은 친구를, 다른 사람의 농간을 꿰뚫어 볼 정도의 분별력이 없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여길지 모릅니다. 바빌론 사람들이 동무로 지내던 에돔 사람들을 대한 것과 참으로 흡사합니다! 당신이 문제를 겪을 때 그런 “친구들”이 여러분을 진정으로 염려해 주겠습니까? (오바댜 13-16) 반면에 여호와 하느님과 오늘날 그분의 백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힘을 주십니다. 그분의 백성 역시 “고난이 있을 때를 위하여 태어난” 충실한 동무들 같아서 ‘항상 사랑하는 참된 동무들’입니다.—잠언 17:17.
가장 중요한 관계를 귀중하게 여기라
24, 25. 무엇이 우리 생활에서 가장 우선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까?
24 그렇습니다. 가족 간의 유대는 중요하며 마땅히 강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열두 예언서에서 그에 관해 많은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장에서 사용한 방식을 활용하여 그 책들 전체를 살펴보고자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더 건실한 가정생활을 하는 법에 관한 교훈을 더 많이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오늘날 하느님의 숭배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입니까?
25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과 관련하여 요엘은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백성을 모아라.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 신랑을 그 내실에서 나오게 하고, 신부를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요엘 2:15, 16) 가족 성원 모두가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하였습니다. 마음이 나뉠 수밖에 없는 신혼부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에게로 모이는 일보다 앞자리에 오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급속히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분 앞에서 좋은 신분을 갖는 것이 우리 생활에서 가장 우선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입니다.
b 니네베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나훔서도 예외적인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