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woman)
사춘기 연령이 지난 성인 여성.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이슈샤(문자적 의미는 ‘여성인 사람’)인데, 이 표현은 또한 “아내”로도 번역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 기네도 “여자”와 “아내”로 번역된다.
창조 창조주 하느님은 남자인 아담이 요청하기도 전에 인간 동료를 마련해 주셨다. 여호와께서는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에게 선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에 관한 법을 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계속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내가 그를 위하여 그의 보완자로서 돕는 자를 만들겠다.” (창 2:18) 하느님은 사람이 동물들 가운데서 배우자를 찾으러 가게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아담에게 동물들을 데려오셔서 이름을 짓게 하셨다. 아담은 동물과 수간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동물들 가운데 자신에게 적합한 배우자가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판단할 수 있었다. (창 2:19, 20) “그래서 여호와 하느님은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가 자고 있을 때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낸 다음 그 자리를 살로 채우셨다. 그리고 여호와 하느님이 사람에게서 빼낸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셨다. 그러자 사람이 말하였다. ‘이는 마침내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다. 이를 “여자”라고 부를 것이니, 남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창 2:21-23.
위치와 책임 남자에게서 창조된 여자는 남자가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일부이고 남자와 “한 몸”이며, 남자의 보완자이자 돕는 자이므로, 머리인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였다. 여자는 또한 하느님이 선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에 관해 아담에게 주신 법 아래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유익을 위해 일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 자녀를 갖고 동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해야 하였다.—창 1:28; 2:24.
성서 시대에 여자들은 보통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여자의 책임에 대해 논하는 성구들은 대개 여자가 아내로서 갖게 되는 위치와 관련이 있다. 모든 이스라엘 여자의 첫째가는 책임은 참 숭배를 통해 여호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예로, 쓸모없는 사람인 남편 나발이 죽은 뒤에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이 있다. 나발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인 다윗을 돕기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기를 거절하는 악한 행로를 취하였으나, 아비가일은 자신이 나발의 아내이지만 남편을 따라 여호와의 뜻과 상반되는 그러한 행동을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아비가일이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도와줌으로써 올바른 숭배에 대한 한결같은 태도를 나타냈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축복하셨다.—삼첫 25:23-31, 39-42.
둘째로,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였다. 여자는 집안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머리인 남편에게 영예를 돌려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여자도 대단히 큰 영광을 얻게 되었다. 잠언 14:1에서는 “참으로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자기 손으로 집을 허물어뜨린다”라고 알려 준다. 여자는 항상 남편에 대해 좋게 말하여서 다른 사람들이 남편을 더 존경하게 해야 하였으며, 남편도 그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하였다. “유능한 아내는 그 주인에게 면류관이지만, 수치스럽게 행동하는 여자는 그의 뼈의 썩음과 같다.” (잠 12:4) 잠언 31장에는, 여자가 아내로서 누리는 영예로운 지위와 특권이, 충실함과 근면함과 지혜로 인해 얻게 되는 축복과 함께 묘사되어 있다.—아내 참조.
어머니가 된 히브리 여자는 자녀가 의와 존경심과 근면성을 배우도록 훈련시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많았으며, 나이가 든 아들들에게 조언을 하고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흔히 많은 일을 하였다. (창 27:5-10; 출 2:7-10; 잠 1:8; 31:1; 디둘 1:5; 3:14, 15) 특히 소녀들은 어머니로부터 요리, 베 짜기, 전반적인 집안 관리와 같은 기술을 배움으로써 훌륭한 아내가 되도록 훈련을 받았으며, 한편 아버지는 아들에게 직업 교육을 하였다. 아내들은 또한 남편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가 있었으며(창 16:5, 6), 때때로 남편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었다.—창 21:9-13; 27:46–28:4.
신부는 대개 부모가 아들을 위하여 선택하였다. 그러나 일찍이 리브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율법 아래서도 틀림없이 여자에게는 이 일과 관련하여 자신의 감정이나 의향을 밝힐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창 24:57, 58) 일부다처제가 행해졌지만 하느님은 원래의 일부일처제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셨으며,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되면서 비로소(창 2:23, 24; 마 19:4-6; 디첫 3:2) 일부다처 관계는 규제를 받았다.
군대와 관련된 율법에서도 갓 결혼한 남자에게 일 년 동안 병역을 면제해 줌으로써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특혜를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부는 자녀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남편이 집을 떠나 있을 때 자녀는 어머니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며, 만일 남편이 전사하게 된다면 더더욱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신 20:7; 24:5.
율법은 간음, 근친상간, 수간 등의 범죄를 저지른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었다. (레 18:6, 23; 20:10-12; 신 22:22)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어서도 안 되었고,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어서도 안 되었다. 그런 행동은 동성애를 비롯하여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질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 22:5) 여자들도 안식일, 나실인에 관한 법, 축제, 그리고 전반적인 율법의 모든 규정으로부터 함께 유익을 얻을 수 있었다. (출 20:10; 민 6:2; 신 12:18; 16:11, 14)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였다.—레 19:3; 20:9; 신 5:16; 27:16.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서 누린 특권 하느님에 의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히 3:1)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될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의미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구별이 없다. 사도는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사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아들들입니다. ···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와 결합해 있는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갈 3:26-28) 이들은 모두 부활될 때 본성이 변화되어,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여자가 아닐 것이다. 성(性)은 지상의 피조물의 번식을 위한 하느님의 수단이므로, 영적 피조물 가운데는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베둘 1:4.
좋은 소식의 선포자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요엘의 예언에서 “딸들”과 “여종”으로 일컬어진 여자들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이러한 선물을 받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외국어로 말하였으며 또한 ‘예언을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반드시 미래의 중요한 일을 예고했다기보다는 성서 진리를 말했다는 의미이다.—욜 2:28, 29; 행 1:13-15; 2:1-4, 13-18. 여예언자 참조.
성서 진리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은, 동료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이르면, 여러분은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행 1:8) 그 후에 기원 33년 오순절 날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을 때, 약 120명의 제자들(얼마의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음)로 이루어진 집단 전체가 그분의 증인으로서 능력을 받았다. (행 1:14, 15; 2:3, 4) 또한 그때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의 예언(욜 2:28, 29)에는 그러한 여자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따라서 여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될 책임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었다. 그와 일치하게, 후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좋은 소식 안에서 [자신과] 함께 나란히 힘써 싸운 사람들”이라고 말하였고, 누가는 브리스길라가 에베소에서 남편 아굴라와 함께 ‘하느님의 길을 자세히 설명’하였다고 언급하였다.—빌 4:2, 3; 행 18:26.
회중 집회 이 여자들이 머리 덮개를 쓴다면, 기도나 예언을 할 수 있는 집회들도 있었다. (고첫 11:3-16. 머리 덮개 참조) 하지만 “온 회중”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공개 집회로 여겨지는 집회에서는(고첫 14:23-25), 여자들이 “잠자코 있”어야 하였다. “무엇인가를 배우기 원한다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여자가 회중에서 말하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고첫 14:31-35.
여자는 회중 집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성서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배우기 원하는 회중 밖의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었으며(시 68:11 비교), 회중 안에 있는 젊은 여자들(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딛 2:3-5)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권위를 행사하거나 남자와 논쟁해서는 안 되었는데, 예를 들어, 회중 집회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여자는 하와에게 일어난 일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에 여자의 위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하느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하였다.—디첫 2:11-14; 창 3:16.
감독자와 봉사의 종으로는 남자들이 섬긴다 그리스도가 회중에 주신 “사람들로 된 선물”에 대해 논하는 내용 가운데는 여자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사도”, “예언자”, “복음 전파자”, “목자”,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원어의 경우 모두 남성형이다. (엡 4:8, 11) 「미국역」(American Translation)에서는 에베소 4:11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또 그분은 우리에게 어떤 남자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선교인으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가르치는 사람으로 주셨습니다.”—「신세」, Mo 비교. 또한 시 68:18 비교.
이와 온전히 일치하게, 사도 바울은 회중 안에서 “연로자”(프레스비테로이)이기도 한 “감독자”(에피스코포이)의 그리고 “봉사의 종”(디아코노이)의 봉사 직책을 수행할 사람들의 자격 조건에 관해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그 사람들이 남자들이어야 하며 결혼을 하였다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한다. 그 어떤 사도도 “여집사”(디아코닛사)라는 직책에 대해 결코 논하지 않는다.—디첫 3:1-13; 딛 1:5-9. 행 20:17, 28; 빌 1:1 비교.
뵈베는 “봉사자”(디아코노스, 그리스어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음)로 언급되어 있지만(로 16:1), 회중 안에서 임명된 여성 봉사의 종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성경에는 그러한 마련이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회중에게 뵈베로부터 지시를 받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환영하고 ‘그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에는 어떤 일이든지 도와주라’고 말하였다. (로 16:2) 바울이 그를 봉사자로 언급한 것은, 아마도 좋은 소식을 널리 전하기 위한 그의 활동과 관련이 있는 듯하며, 바울은 뵈베를 겐그레아에 있는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여성 봉사자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행 2:17, 18 비교.
가정에서 성경에서 여자는 “더 약한 그릇인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남편은 여자를 그에 맞게 적절하게 대해야 한다. (베첫 3:7) 여자는 여러 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남편의 승인과 지도 아래 자녀 교육에 참여하는 것과, 집안 살림을 돌보는 것이 있다. (디첫 5:14; 베첫 3:1, 2; 잠 1:8; 6:20; 31장)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엡 5:22-24) 여자는 남편에게 부부간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첫 7:3-5.
단장 성서에서는 전체에 걸쳐서 의복의 단장이나 장신구 착용을 정죄하지 않지만, 겸허와 합당한 예의가 지배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사도 바울은 여성의 옷이 단정해야 하고 여자들이 “겸허와 건전한 정신으로” 자기를 단장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머리 모양, 장식, 비싼 옷에 중점을 두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영적 아름다움 곧 “선행”과 ‘조용하고 온화한 영의 부패하지 않는 옷차림을 한 마음의 숨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디첫 2:9, 10; 베첫 3:3, 4. 잠 11:16, 22; 31:30 비교.
사도 베드로는 순결하고 공손하며 경건한 행실을 전시하는 그러한 복종하는 여자들에게 “여러분도 계속 선을 행하고 아무리 무서운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사라]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아내들은 육적인 방법을 통해서 충실한 사라의 후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본받음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는 크나큰 기회를 가지고 있다. 사라는 이삭을 낳아 ‘아브라함의 씨’의 주된 부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여자 조상이 되는 특권을 누렸다. (갈 3:16) 따라서 그리스도인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자신이 사라의 비유적인 딸임을 증명한다면, 하느님으로부터 틀림없이 풍부한 상을 얻게 될 것이다.—베첫 3:6; 창 18:11, 12; 고첫 7:12-16.
예수를 섬긴 여자들 여자들은 예수의 지상 봉사와 관련하여 여러 특권을 누렸지만, 그것은 열두 사도나 70명의 복음 전파자에게 주어진 특권과는 달랐다. (마 10:1-8; 누 10:1-7) 많은 여자들은 자기 소유로 예수를 섬겼다. (누 8:1-3) 한 여자는 예수께서 죽으시기 며칠 전에 그분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예수께서는 그의 행동에 대하여 “온 세상 어디든지 이 좋은 소식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알려져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마 26:6-13; 요 12:1-8)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날 사람들에게 특별히 나타나셨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는 여자들도 있었다. 또한 예수께서 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사람들 가운데는 여자들도 있었다.—마 28:1-10; 요 20:1-18.
비유적 용법 몇몇 경우에 여자는, 회중이나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나타내는 데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또한 도시를 상징하는 데도 사용된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게 된 회중은 그분의 “신부”로 표현되며,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불린다.—요 3:29; 계 21:2, 9; 19:7. 엡 5:23-27; 마 9:15; 막 2:20; 누 5:34, 35 비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회중 곧 이스라엘 나라를 자신의 “여자”로 보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분이 율법을 통해 그 나라와 계약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그 나라에게 “남편인 소유자”처럼 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회복 예언에서 이스라엘에게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시며, 때때로 이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향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 여자의 “아들들”과 “딸들”(사 43:5-7)은 이스라엘 나라의 성원들이었다.—사 51:17-23; 52:1, 2; 54:1, 5, 6, 11-13; 66:10-12; 렘 3:14; 31:31, 32.
다른 나라들이나 도시들이 여성 또는 여자로 언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몇 가지 예로, 모압(렘 48:41), 이집트(렘 46:11), 암몬의 랍바(렘 49:2), 바빌론(렘 51:13), 그리고 상징적인 큰 바빌론이 있다.—계 17:1-6. 딸; 큰 바빌론 참조.
창세기 3:15의 “여자” 하느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선고를 내리실 때, “여자”가 낳을 씨 곧 뱀의 머리를 부술 씨에 관해 약속하셨다. (창 3:15) 여기에는 하느님이 정하신 때에 밝히려고 의도하신 “신성한 비밀”이 있었다. (골 1:26) 예언적 약속을 하셨을 때에 존재하는 상황의 몇몇 요소들은, ‘여자의’ 신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었으므로, 그 씨는 단순한 인간 씨여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땅의 문자적 뱀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계시록 12:9에서는 그 “뱀”이 영적 인격체인 사탄 마귀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이 예언의 “여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은 인간 여자일 수 없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4:21-31에서 이 문제에 대해 빛을 던져 준다.—씨 참조.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자유로운 여자인 아브라함의 아내와 아브라함의 첩 하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갈은 율법 계약 아래 있는 문자적인 도시 예루살렘에 상응하고, 하갈의 “자녀”는 유대 나라의 시민들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 곧 바울과 영으로 출생한 바울의 동료들의 영적 어머니에 상응한다고 말한다. 이 하늘의 “어머니”는 또한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적 형제들 가운데 맏형이며, 이 형제들은 모두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온다.—히 2:11, 12. 자유로운 여자 참조.
창세기 3:15의 “여자”를 영적인 “여자”로 보는 것은 논리적이고 성경과도 조화가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 또는 “아내”가 한 사람의 여자가 아니라 다수의 영적인 성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합적인 여자라는 사실과 일치하게(계 21:9), 영으로 출생한 하느님의 아들들을 낳는 “여자” 곧 하느님의 ‘아내’(앞에서 언급된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말에 예언적 의미로 예고되어 있음)도 다수의 영적 인격체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이 “여자”는 인격체들로 이루어진 복합체, 하나의 조직 곧 하늘 조직일 것이다.
이 “여자”는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요한의 환상 가운데 묘사되어 있다. 이 여자는 아들 곧 “쇠지팡이로 모든 나라를 다스릴” 통치자를 낳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시 2:6-9; 110:1, 2 비교) 이 환상이 요한에게 주어진 시점은, 예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지 오랜 뒤였고, 또한 그분이 하느님의 메시아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이후였다. 이 환상이 바로 그분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예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사건 곧 그분이 왕국 권능 가운데 즉위하시는 일을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의 탄생이 묘사된 것이었다.
사탄은 후에 “여자”를 박해하고 “여자의 씨의 남은 자들”과 싸우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계 12:13, 17) “여자”가 천적인 여자이고, 사탄은 이 무렵 땅으로 내던져졌으므로(계 12:7-9), “여자”를 구성하고 있는 그 천적 인격체들에게는 갈 수가 없지만, 여자의 “씨”의 남은 자들 곧 그 여자의 자녀인 아직 땅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는 갈 수가 있었다. 사탄은 이런 방법으로 “여자”를 박해하였다.
다른 용례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자신과의 계약을 깨뜨릴 경우 기근 상태가 그들에게 닥칠 것을 예언하면서, “실제로 여자 열 명이 단지 한 화덕에서 너희 빵을 구워, 무게를 달아서 너희 빵을 돌려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때는 여자들이 화덕을 각기 하나씩 사용하겠지만, 기근이 너무 심각해서 여자 열 명에게 화덕이 단지 하나만 필요하게 될 것이었다.—레 26:26.
여호와께서는 불충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닥칠 재앙에 대해 경고하신 후에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빵을 먹으며 우리의 망토를 입을 터이니, 다만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하여 우리의 치욕을 없애게만 해 주십시오.’” (사 4:1) 이보다 앞서 나오는 두 구절(사 3:25, 26)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전쟁으로 쓰러질 것임을 지적하셨다. 따라서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그 나라의 인적 자원이 잠식되어, 몇 명의 여자들이 한 남자에게 몸을 의탁할 정도로 남자가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그 남자를 공유해야 한다 해도, 기꺼이 그 남자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다소나마 남자의 돌봄을 받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이었다. 그들은 한 남자의 생활에서 적은 부분이라도 차지하기 위해서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이거나 첩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서 과부가 된 수치나 결혼하지 못하고 아이가 없는 수치를 면하게 될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예언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충실한 딸아, 언제까지 네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려느냐? 여호와가 새것을 땅에 창조하였으니, 곧 보통 여자가 장정의 주위로 바싹 다가갈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구애한다!” AT) (렘 31:22) 율법 계약으로 인해 하느님과 결혼 관계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그때까지 불충실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처녀 이스라엘”에게 돌아가는 길을 알려 주는 길 표와 이정표를 세우고, 원위치로 돌아가게 인도하는 길에 마음을 고정시키라고 요청하신다. (렘 31:21) 여호와께서는 그 여자에게 자신의 영을 넣어 주실 것이며, 따라서 그 여자는 아주 간절히 돌아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편 주위로 바싹 다가가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남편이신 여호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분 주위로 바싹 다가갈 것이었다.
“여자들의 사모하는 것” 다니엘의 예언에서는 “북방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알려 준다. “그는 자기 조상들의 하느님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의 사모하는 것과 다른 모든 신도 배려하지 않고, 도리어 모든 자 위에 자기를 드높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위에서 요새들의 신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다].” (단 11:37, 38)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은 약한 그릇으로서 “북방 왕”의 ‘시녀’가 된 약한 나라들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사모하고 숭배하는 신들을 가지고 있지만, “북방 왕”은 그 신들을 무시하고 군국주의의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상징적 “메뚜기들” 계시록 9:1-11에 나오는 상징적 “메뚜기들”에 관한 환상에서, 이 메뚜기들은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자의 긴 머리털이 머리인 남편에 대한 복종의 표라는 성경 원칙과 일치하게, 이 상징적 “메뚜기들”의 머리털은, 이 예언에서 그들의 머리이자 왕으로 표현되는 분에 대한 메뚜기로 상징된 자들의 복종을 나타내는 것임에 틀림없다.—아바돈 참조.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14만 4000명 계시록 14:1-4에서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된 14만 4000명은, “땅으로부터 사신 바 된” 자들로,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실, 동정인 사람들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어린양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으며, 이들만이 “새 노래”를 익힐 수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계 14:1-4) 이것은 그들이 어린양의 “신부”를 구성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일 것이다. (계 21:9) 어린양과 함께 하늘의 시온 산에 서 있다는 사실이 밝혀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은 영적 인격체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동정인 사람들”이라는 말은, 이 14만 4000명 가운데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될 지상의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첫 3:2; 4:1, 3) 이것은 또한 14만 4000명이 모두 남자라는 의미도 아닐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라는 영적인 관계와 관련해서는 “남자도 여자도 없”기 때문이다. (갈 3:28) 따라서 이 “여자들”은 상징적 여자들, 곧 큰 바빌론이나 그의 ‘딸들’인 거짓 종교 조직들과 같은 종교 조직들임에 틀림없으며, 거기에 가입하고 참여한다면 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계 17:5) 이러한 상징적 묘사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처녀만을 아내로 얻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 조건과도 조화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위대한 대제사장이기 때문이다.—레 21:10, 14; 고둘 11:2; 히 7:26.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라고 하신 것과 관련해서는, 마리아 1번 (예수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다)를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