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에베소 5:1, 2.
1, 2. (ㄱ) 본받는 본능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인간 속에 있는 본받는 본능 때문에 무슨 본이 필요합니까?
“사람은 본받는 피조물이”며 “우리는 모든 것을 교훈에 의해서보다 본에 의해서 훨씬 많이 배운다”는 아주 적절한 옛말이 있읍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본받는 것은 어릴 때부터 사람 속에 있는 본능”이라고 말하였읍니다.
2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본받는 것으로 삶을 시작합니다. 어린 아이는 걷고 먹고 말하는 법 등을 배우기 위하여 책을 읽거나 명백한 교훈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나 형이나 누이를 본받음으로써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면서 흔히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본받습니다. 인간 속에 있는 본받는 본능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올바른 본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하나님보다 더 훌륭한 본은 없읍니다.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사도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고하였읍니다.—에베소 5:1.
3. 어떠한 명백한 모순이 존재하며, 따라서 어떤 질문이 생깁니까?
3 그러나 도처에 있는 사람들이 범죄와 부도덕과 전쟁을 일삼고 있는 것을 볼 때, 인류 대다수는 나쁜 본을 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말하며, 여러 가지 종교 의식을 행함으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일을 일삼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주장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숭배하면서도 그분을 본받지 않을 수 있읍니까?
사람들이 본받는 신들
4. (ㄱ) 인간의 숭배의 본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신을 숭배할 때, 그것은 숭배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4 인간은 창조될 때, 본받는 본능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숭배하는 본능도 받았읍니다. 인류는 이러한 경향을 강력하게 나타내 왔읍니까? 「월드 북 백과 사전」a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어떠한 형태의 종교도 갖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참 하나님 외에도 여러 신들을 숭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성서에서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다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고린도 전 8:5) 그러나, 그들의 종교가 무엇이든지간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에서 숭배하는 신의 특성을 반영 혹은 본받아 왔읍니다. 사람은 그가 숭배하는 신을 본받지 않고, 그것도 상당히 본받지 않고 그를 숭배할 수는 없읍니다.
5. ‘가나안’ 신들의 숭배는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예를 들면 고고학자들은 고대 ‘가나안’인들이 숭배하던, 피에 굶주리고 부도덕한 신들에 관하여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짐작이 갈 일이지만, 역사가 밝혀 주는 바에 의하면, ‘가나안’ 사람들은 극히 잔인하고 부도덕하고 심지어 인간을 희생하는 것을 포함한 소름끼치는 종교 의식을 행하였읍니다. 성서는 또한 ‘유대’ 왕들인 ‘아하스’와 ‘므낫세’가 ‘가나안’인들의 신들을 숭배하게 되어 그러한 신들에게 자기들의 자녀를 불의 희생으로 바치기까지 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열왕 하 16:1-3; 21:1-6)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영감받은 성서의 교훈은 이러한 사람들의 신들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6-8. (ㄱ) 단순히 성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서의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어떠한 신이 숭배를 받고 있으며, 이 신의 특성이 숭배자들에게 어떻게 반영되고 있읍니까?
6 그러면,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나라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그 사람들은 어떠한 신을 숭배하고 있읍니까? 일반의 생각과 같이 성서의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읍니까?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은 성서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그들이 그것을 믿거나 그것을 따르거나 심지어 그 성서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숭배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율법의 한 가지 조항은 이러합니다.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를] ···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신명 18:9-12)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심지어 그들의 일부 왕들까지도 이 율법을 청종하지 않았읍니다. 이와 동일하게 그리스도교국도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무시하였읍니다.
7 수백 수천만의 인류를 불타는 지옥에 넣는 신을 믿는 그리스도교국의 교리에 관하여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반이 이해하고 있는 지옥은 악령들의 거처이다. 상실된 혹은 단죄된 영혼들이 사후에 가서 형언할 수 없는 고초와 영원한 형벌을 받는 ··· 영역.”b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그러한 고초를 승인하는 신을 숭배해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의 역사가 종교적 전쟁, 잔인한 박해 및 극악무도한 고문으로 점철된 역사인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신의 특성을 반영해 왔을 뿐입니다.
8 일례로, ‘스페인’의 학자 ‘미카엘 세르베투스’가 “이단자”로 재판을 받았을 때, 그는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화형 선고를 받았읍니다. 「교회사 적요」c에 의하면 이러한 잔인한 형태의 사형 집행은 ‘가톨릭’ 교도들과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에 의하여 “당시에 거의 보편적으로 승인되고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현대에도 바로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가공할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으며, 전선에서 양편 교직자들은 그들의 신에게 자기네 나라의 군대의 승리와 축복을 기도하였읍니다.d 우리는 분명히 그리스도교국의 이러한 신이나 이러한 신의 숭배자들을 본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9.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고 또 본받는 인기있는 “신들”은 무엇입니까?
9 환멸을 느낀 수백만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서의 숭배를 중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숭배의 본능적 욕망이 있읍니다. 그들은 흔히 인기있는 가수나 영화 배우 또는 운동 선수를 우상화함으로써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킵니다. 1973년 7월 26일자 「뉴욕 타임즈」지는 인기있는 ‘스포츠’를 “신”으로 묘사하여, 그 신이 “미국의 세속 종교인 직업적 ‘스포츠’ 신전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다고 지적하였읍니다. 흔히 청소년들은 연예 부문과 ‘스포츠’를 “신들”로 본받으려고 하고 그들의 머리 모양, 옷, 언어 및 도덕을 모방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실제 누구를 숭배하는 것입니까?
10, 11. (ㄱ) 고린도 전서 10:19, 20에서 시사하듯이, 현대 우상 신들에게 돌리는 숭앙은 누구에게로 돌아갑니까? (ㄴ) 마귀와 그의 악귀들이 인기있는 우상 신들에게 바쳐지는 숭배를 받는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0 성서는 매우 솔직하게 우상 신들에게 바쳐지는 희생 혹은 숭앙에 대하여 알려 줍니다. 사실 성서의 내용은 당신에게 참으로 충격을 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라].” (고린도 전 10:19, 20) 그렇습니다. 나무와 돌로 된 우상 신에게 돌리는 것이든지 연예계 혹은 ‘스포츠’계의 우상에게 돌리는 것이든지 그 숭앙은 실상은 “이 세상 신”인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에게 돌아갑니다! (고린도 후 4:4) 그러나, 실제로 악귀들이 이러한 숭앙을 받는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1 인기 연예인과 ‘스포츠’계의 ‘우상’을 열렬히 추앙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떠한 경향이 있읍니까? 오늘날 그들에게 진실과 순결과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염려와 같은 훌륭한 특성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직과 부도덕, 불경 및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읍니다. 인기인을 열렬히 추앙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우상들이 바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미국의 유명한 한 직업 야구단 감독은 최근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선수들은] 말할 수 없이 난폭하게 행동한다. 선수들이 그런데 ‘팬’들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1973년 10월 13일자 「뉴욕 타임즈」지) 그러므로 불완전한 인간들을 “우상”으로 본받을 때, 사람들이 참 하나님의 숭배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을 숭앙하는 것은 사실 성서에서 시사하듯이 마귀와 그의 악귀들을 숭앙하는 것입니다. (요한 8:44) 확실히 우리는 인간 “신들”이나 보이지 않는 악귀들을 본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 하나님을 본받으라
12. 우리가 본받도록 권고받은 참 하나님은 누구이며, 그분을 본받는다는 것은 왜 생각만해도 어지러움을 느끼게 합니까?
12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사도의 훈계를 청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에베소 5:1) 그렇게 함으로 어떠한 거짓 신도 본받는 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받도록 권고받는 참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영감받은 성서 시편 필자는 바로 그분께 기도할 때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8) 여호와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신 이유는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느니라].” (예레미야 10:10-12) 우리가 수십억개의 은하가 있는 우주의 광대함을 고려할 때, 우리는 위대하신 창조주 여호와께 비하여 참으로 작고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분을 본받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어지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본받는 일이 가능합니까?
13. 인간들이 여호와를 본받는다는 것이 왜 가능할 뿐 아니라 매우 이치적입니까?
13 그것은 가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창세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과 같이 보이도록,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첫 인간들에게 자기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잠재력 즉 능력을 넣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그의 자녀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딸은 어머니를 닮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때때로 아들은 아버지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5:1)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참 하나님 여호와를 본받고, 어떠한 거짓 신도 본받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4, 15. (ㄱ)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주된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하나님의 특성을 본받으라는 어떠한 권고들을 받고 있읍니까?
14 사도의 훈계를 다시 살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주된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훈계는 이러합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에베소 5:1, 2)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사랑의 체현이십니다. (요한 1서 4:8) 영감받은 성서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8, 9.
15 우리는 여호와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특성을 본받음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숭배자들임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도록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또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하신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누가 6:36; 베드로 전 1:15, 16; 마태 5:44, 45.
16.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본받는다면 상태가 어떠할 것이며, 멀지 않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을 알리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6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고 “사랑 가운데 행”한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상태가 조성될 것인가를 상상하여 보십시오! 거룩하지 않은 곧 악한 행위가 없을 것이며, 도둑질도, 싸움도, 부도덕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동료 인간에게 친절과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대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사랑 가운데서 행할 때에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단지 그러한 사람들만 지상에서 계속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약속은 멀지 않아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은 현 악한 인류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들을 위한 의로운 새 사물의 제도가 뒤따를 것을 의미합니다.—요한 1서 2:17; 베드로 후 3:5-7, 13.
17, 18. (ㄱ) 지금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것이 왜 중요하며, 왜 지금 하나님을 본받는 데는 그러한 노력이 필요합니까? (ㄴ) 우리가 하나님의 대사 혹은 공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과합니까?
17 그러나 여호와의 새로운 제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하여는 당신이 지금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여호와를 알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할 것을 요구합니다. 대다수의 인류는 그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이 세상 임금”인 ‘사단’ 마귀를 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성서는 설명합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성격은 그들의 진정한 신이자 통치자가 참으로 ‘사단’ 마귀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12:31; 요한 1서 5:19; 고린도 후 4:4.
18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7:16) 그들은 이 세상의 정치와 불의한 길에서 항상 분리되어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정부의 대사 혹은 공사로 봉사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적절히 대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이러한 기록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권면하십니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할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면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고린도 후 5:20, 새번역.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
19.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알고 본받는 데 있어서 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아닙니까?
19 물론 우리가 누구를 본받으려면 그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알고 본받는 데 있어서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 유명한 건축자가 사망한지 여러 해가 지났다고 합시다. 그래도 그가 남긴 솜씨 곧 건물, 교량 또는 그가 건축한 기타 대건축물들을 잘 알게 됨으로써 우리가 건축공사에 사용한 그의 방법을 본받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 주위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창조물들은 우리가 그분을 알고 본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말로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느니라].”—로마 1:20.
20. 이른바 “창조의 책”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20 그렇습니다. 이른바 “창조의 책”은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읍니다. 그 한 가지 예로, 하나님께서 땅을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단장하신 점을 고려하여 보십시오. 찬란한 햇볕, 다양한 색깔의 꽃, 풀이 덮인 초원, 새들의 노래, 깊은 숲속의 향기 그윽한 싱그러운 공기, 그리고 다양하고 맛있는 실과와 견과 및 기타 먹을 것들이 풍부하게 있읍니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자녀들의 행복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놀라운 공급자이심을 창조물로부터 배울 수 있읍니다. 인식이 깊은 사람이라면 그 본을 받도록 감동을 받지 않겠읍니까? 이러한 예로 볼 때, 부모는 하나님의 본에 감동을 받아 자기 가족의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좋고 즐겁고 세움이 되는 것들을 공급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읍니까?—이사야 64:8; 누가 6:35.
21. (ㄱ) 하나님을 본받는 데 가장 좋은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며, 단순히 그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읍니까?
21 그러나 “창조의 책”이 하나님을 본받도록 돕는 면은 제한되어 있읍니다. 그것은 건물들이 그것들을 설계한 건축가를 본받고자 하는 연구가를 돕는 면에서 제한된 가치만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그 건축가가 쓴 책과 그 건축가에 대하여 쓴 책을 연구하는 것은 그를 알고 본받는 데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알고 본받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하여 알리기 위하여 기록하신 책입니다. 그 책은 성서(聖書)입니다. 그러나 단지 성서를 소유하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읽는다고 하여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도록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성서를 연구할 필요가 있읍니다. 사실상,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이사야 55:2, 3)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읍니까? 고대 ‘여호수아’가 명령받은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작은 소리로 읽어서, 신세]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여호수아 1:8.
22.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의 생활을 그분의 본에 일치하도록 변화시키는 데는 무엇이 요구됩니까?
2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기 위하여는 성서를 읽고 연구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를 이해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모두 행하도록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얻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본에 일치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설명하였읍니다. 그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정확한 지식, 신세]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로새 3:9, 10) 바로 이 “정확한 지식”을 얻음으로써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킬 수 있으며 그 분의 사랑과 친절과 자비의 놀라운 특성을 본받을 수 있읍니다. 바로 이러한 경건한 특성의 호소력에 우리의 마음이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23.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면에서 하나님을 본받아야 할 어떠한 중요한 이유가 있읍니까?
23 또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그의 말씀 가운데 설명되어 있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용서하지 않는 종에 대한 비유의 결론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의문의 여지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이 고려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는 방법을 배울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도록 마음의 자극을 받을 것입니다.—마태 18:35; 에베소 4:32.
24. 어떻게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이 됩니까?
24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도록 돕는 또 다른 도움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여호와께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그분께 열어서, 곤경에 처했을 때 또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분을 부르고 일상 문제에 대하여 그분께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성서 시편 필자의 약속과 같이 우리는 부축해 주는 힘과 인도와 위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그리하여 기도는 여호와를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해 주며 그분을 본받도록 우리를 도와 줍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들의 예
25, 26. (ㄱ) 하나님을 본받은 탁월한 본은 누구이며, 그는 어느 정도로 그분을 본받으셨읍니까? (ㄴ) 성경은 어떠한 다른 훌륭한 본들을 우리에게 본받으라고 권고합니까?
2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된 사람의 예에서 하나님을 본받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물론 가장 훌륭한 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 그분이 지상에 오신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우리에게 알리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를 매우 완전하게 본받으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상에 계셨다면 그분도 예수께서 행동하신 바와 꼭 같이 행동하셨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요한 14:9.
26 그러나 하나님을 본받는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충실히 본받은 다른 사람들이 성서에 설명되어 있읍니다. 우리는 또한 그들의 본을 살핌으로써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히브리 11장)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현명하게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격려할 수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11:1)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본을 받는 것은 확실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7, 28. (ㄱ)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찾아낼 수 있읍니까? (ㄴ) 증거가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오늘날 참으로 하나님을 본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7 그러나 우리는 단지 오래 전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본받는 훌륭한 본을 세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을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는 충고를 받고 있읍니다. (히브리 13:7)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길에 순응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당신은 그들과 정기적으로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8 인간들은 생활에서 자기들이 숭배하는 신의 특성을 꼭 반영하는 본받는 피조물이므로 그러한 사람들을 발견하려면 단순히 참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몬트리올’ 시(캐나다)에서 있었던 28,000여명의 종교적 모임에 대하여 1973년 7월 27일자 신문 「저널 드 몬트리올」지의 보도를 살펴볼 수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참으로, 참으로 문화인들이다. 예의가 그들의 생할 방식이다. 말쑥함, 청결, 정중함도 뛰어났다. 이러한 것을 그들의 대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 아무도 남의 발을 밟지 않으며 바닥에 널린 휴지를 볼 수도 없다. 거의 완전히 깨끗하였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평화롭고 조용하기 때문에 낙원에 와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그리고 누구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고 야구 경기 때와는 달리 아무도 자기를 과시하거나 자신들에게 시선을 모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 인종 차별이 없다. 모든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교제한다. 음험한 동기나 기만적인 비밀을 간직한 사람은 없다.
“분명히, 여호와의 증인들의 행실로부터 배울 훌륭한 교훈이 있다. 그들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미국은 변모하였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29.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들과 밀접히 교제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29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오늘날 하나님을 본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그들과 정기적으로 계속 교제한다면 당신은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사도의 충고를 청종하는 데 크게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에베소 5:1, 2) 당신은 앞에 놓인 격렬한 때에 그분이 마련하여 놓으신 도움들을 이용하지 않고는 충실히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과 밀접히 교제하는 것은 여호와의 의로운 새 제도에서 완전함을 누릴 생명을 얻는 데 절대 필요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베드로 후 3:13; 히브리 10:24, 25.
[각주]
a 제 16권, 207면(1970년판).
b 제 14권 81면(1959년판).
c ‘존 로렌스 본 모세임’ 저, 제 3권, 258면(1832년판).
d 교회가 양차 세계 대전 중 참전국들을 지원하였음을 증명하는 문헌에 대하여는 「깨어라!」 1972년 10월 8일호 참조.
[276면 삽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하여는 “창조의 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서를 읽고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