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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26 8월호 26-30면
  • 위대한 창조주께서 나를 눈여겨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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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창조주께서 나를 눈여겨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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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연구용)—2026
파26 8월호 26-30면
스테판 랑드루앵.

체험기

위대한 창조주께서 나를 눈여겨보셨습니다

스테판 랑드루앵

어릴 때 나는 학교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성적도 안 좋았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죠. 하느님께서 나를 눈여겨보실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을 별생각 없이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니까 당연히 맞겠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진화론의 설명이 논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더 조사해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테판 랑드루앵의 어릴 때 모습.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계셨어요.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고통과 불공정이 많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셨죠. 나도 종교인들의 위선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게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했죠.

하지만 지금 나는 창조주가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분이 부족한 점이 많은 나를 사랑해 주신다고 확신해요. 무엇 때문에 내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 덕분에 어떻게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이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살 때 나는 군에 징집되어 남아메리카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1년 동안 복무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그때는 그 머나먼 곳이 내 삶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곳이 될 거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20살 때 나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매주 쳇바퀴를 돌듯 똑같은 삶이 반복되었죠. 평일에는 힘들게 일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죠.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정부패, 인종 차별, 빈부 격차에 환멸도 느꼈어요. 착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자연이 훼손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어요. 군 복무를 했던 남아메리카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죠.

자연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하다

결국 나는 군 복무를 했던 프랑스령 기아나의 외딴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이 세상의 문제들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대마초나 피우며 살면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주말에 파티를 즐기려고 주중 내내 일했죠.

그런데 그 무렵에 어떤 사람이 성경을 주었어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서 좀 읽어 보았죠. 하지만 읽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나처럼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깊은 밀림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연합’을 뜻하는 ‘유니티’라고 불렀습니다. 그 친구들이 함께 살자고 해서 나도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삽화 모음: 1. 밀림 속에 있던 오두막. 풀로 만든 원뿔 모양의 큰 지붕이 오두막을 덮고 있고, 해먹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2. 스테판 랑드루앵의 젊을 때 모습.

(왼쪽) ‘유니티’라고 불린 공동체에 있던 오두막

(오른쪽) 밀림에서 살던 시절의 모습

그곳에서 우리는 단순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냈죠. 해가 뜰 때 일어나 해가 질 때 잠자리에 들었어요. 먹을 것도 직접 재배했고, 음악을 연주하고 대마초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죠. 주변의 땅을 잘 돌보고 뭐든지 서로 나눠 가졌습니다. 동물을 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 채식주의 생활을 했죠. 정부의 법도 자주 어겼어요.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법은 개의치 않고 편한 대로 행동했죠.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요. 공동체 내에서는 모두가 평등했고, 배경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생기는 문제들이 우리 공동체 내에서도 생겼어요. 우리 모두도 결국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이기심과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며칠만 있다가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몇 주나 몇 달 동안 머무는 사람들도 있었죠. 나는 2년 넘게 그곳에 있었습니다.

밀림 속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부하게 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파파야 씨를 세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말았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이유가 뭘까?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미리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것처럼 말이야.’ 그 모든 게 저절로 생겨났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주신 창조주가 계신 게 분명했죠. 하지만 나는 그분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나는 계속 성경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 찾아 보려고 했죠. 기도도 하기 시작했고, 의미도 모른 채 손으로 가슴에 십자가를 긋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이름이 “야”인지도 궁금했어요. 공동체에서 부르던 몇몇 노래 가사에 그 이름이 나왔거든요.

관대한 아버지이신 여호와에 대해 알게 되다

돌이켜 보면, 내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을 때 창조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그분이 눈여겨보신 것 같습니다. 공동체에 사는 친구 한 명이 여호와의 증인에게서 받은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a라는 책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그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었죠! 낙원이 된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완벽한 자연환경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삶이었죠. 이런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신 사랑 많은 창조주와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았죠. 그런데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미셸이라는 여호와의 증인 선교인과 성서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미셸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미셸을 만난 첫날, 그는 마투리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해 보지 않겠냐고 권했습니다. 마투리는 수도인 카옌 근처에 있는 도시였는데 내가 살던 곳에서 2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었죠. 당시 나는 머리도 아주 길었고 턱수염도 지저분하게 나 있었어요. 몇 사이즈나 큰 셔츠를 걸치고 보라색과 핑크색이 섞인 얼룩덜룩한 바지를 입고 대회에 갔습니다. 형제자매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나에게 교통편과 먹을 것과 숙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관대함과 사랑을 보면서 진리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 대회의 한 연설에서 연사는 디모데 전서 5:8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구절에는 훌륭한 가장은 가족을 잘 돌본다는 내용이 나오죠. 나는 여호와께서 그 원칙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며, 언제나 그분의 가족을 잘 돌보실 것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내가 삶에서 그분의 뜻을 첫째 자리에 두는 한 그분이 나를 돌보실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미셸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확신이 더 강해졌어요. 미셸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두면서 살고 있었죠. 여호와께서 그를 잘 돌보아 주셨기 때문에 항상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성서 연구를 계속하면서 나는 점점 달라졌습니다. 담배와 대마초를 끊기로 결심했어요. 그런 결심을 하자마자 남아 있던 담배와 대마초를 불에 던져 버리고 다시는 흡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회에도 참석하기 시작했죠. 한번은 집회 때 어떤 형제에게 내 긴 머리를 잘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형제는 즉시 왕국회관에서 내 머리를 잘라 주었습니다.

몇 주 뒤에 나는 공동체를 떠나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왕국회관을 찾아 성서 연구를 계속했죠. 부모님은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셨어요. 더는 흡연도 하지 않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친구들과 흥청망청 놀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찾은 진리에 대해서는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부모님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한 방식도 지혜롭지 못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감정을 고려해서 더 친절하고 사려 깊게 말했어야 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1996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여호와께 미셸과 같은 선교인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어요. 선교 봉사를 하는 것이 여호와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축복을 받다

회중에 클로딘이라는 예쁜 자매가 있었어요. 봉사를 정말 열심히 하는 자매였죠. 그리고 집회 때 자매가 하는 해설을 들으면 여호와를 깊이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 자매가 마음에 들어서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 자매가 선교 봉사를 할 마음이 있는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기쁘게도 클로딘도 선교 봉사에 뜻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2000년 4월에 결혼했습니다.

삽화 모음: 1. 결혼식 날 스테판과 클로딘의 모습. 2. 스테판이 연설하는 모습.

(왼쪽) 결혼식 날

(오른쪽) 중국어 집단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2006년

다음 해에 우리는 함께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근처에 있는 회중의 중국어 집단을 지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국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였어요. 중국인들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들에게 호소력 있는 방식으로 증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죠. 솔직히 말해, 내 중국어 실력은 별로였어요.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고, 중국인 형제자매들과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여호와께서 우리 부부를 풍성하게 축복해 주시는 걸 경험했죠. 중국어 집단에서 봉사한 것은 이후에 우리가 하게 될 일을 위한 좋은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 내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여호와와 형제자매들을 위해 내가 기울이는 노력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연설을 준비할 때면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해도 늘 기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도 7:16)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완벽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걸 배워야 했어요. 그분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기뻐하시는 사랑 많은 아버지이시죠.

나는 파리에서 대리 순회 감독자로 일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내가 그 일을 하기에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도와주시면 내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일도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또 나는 어릴 때부터 땀 과다증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특히 손에 땀이 많이 나요. 대회에서 연설을 할 때처럼 긴장이 되는 상황에서 증상이 더 심해지죠. 하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나면 증상이 완화되는 걸 느낍니다. 이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호와를 더 의지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분을 의지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땀도 덜 흘리게 되죠.

2011년에 사랑 많은 여호와께서는 우리 부부의 오랜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누벨칼레도니에서 선교인으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누벨칼레도니는 파리에서 1만 6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 태평양 남서부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죠.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먼저 카사바, 타로, 얌 같은 새로운 식재료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죠. 이른 새벽부터 잠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에도 적응해야 했습니다.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도 새로 배워야 했어요. 이곳 사람들은 우리가 말을 걸면 단지 눈썹을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남아메리카의 북동쪽 해안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 서유럽에 있는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쪽에 있는 누벨칼레도니섬이 표시된 세계 지도.

나는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진리를 배웠고, 프랑스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누벨칼레도니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임명을 받을 때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야외 선교인으로 일한 뒤에 몇 년 동안 베델에서 봉사했어요. 왕국 전파자 학교에도 참석했고 지금은 순회 활동을 하고 있죠. 매번 여호와께서 성령을 사용해 지원해 주시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약점이 있더라도 가치 있게 사용해 주신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나를 도와달라고 자주 기도로 매달립니다. 지금도 청중 앞에 서면 긴장이 돼요. 하지만 여호와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회중들에게 필요한 지침을 전달하고 형제자매들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화가 많았지만 아내가 한결같이 나를 지원해 준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아내는 부족함이 많은 나를 잘 참아 주죠. 어떤 임명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증거합니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순회 활동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가 불평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스테판과 클로딘.

누벨칼레도니에서 순회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

처음에 참석한 대회에서 나는 위대한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그분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을 잘 돌보신다는 것을 배웠어요.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가족이 된 나도 그렇게 돌보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정부에 대해 존중심이 없던 내가 올바른 시각을 갖게 도와주시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죠. 여호와의 표준을 따르기 위해 세상의 친구들을 버렸더니 그보다 훨씬 많은 진정한 친구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아내도 주셨어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놀라운 희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관대하신 여호와의 사랑을 앞으로 영원히 경험하게 될 그때가 정말 기다려집니다.—마가 10:29, 30.

a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했지만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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