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믿음을 침식한다
1.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많은 수가 진화론을 승인하는 것을 알게 될 때 왜 놀랍니까?
진화론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안출된 것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성서를 깊이 존경하도록 격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많은 수가 진화론을 공공연이 승인하고 그들의 교회가 후원하는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 안에 그것이 옹호되고 있음을 알게 될 때 매우 놀랍니다.
2. (ㄱ) ‘가톨릭’ 대변자들은 진화에 대한 믿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들의 견해는 어떻게 성서와 반대됩니까?
2 ‘로마 가톨릭’ 교회 안의 이러한 경향의 발전에 관하여 「신 가톨릭 백과 사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1950년에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휴마니 제네리스’ 회칙은 새로운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 진화론이 근거있는 가설로서 명백히 인정받게 되었다.” 이 점에 관하여 ‘홀랜드’의 신학교 교수이며 성 ‘오거스틴’회의 한 성원인 ‘에이. 홀스보스크’는 “우리는 더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동물계에서 나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a고 말하였읍니다. ‘예수회’ 회원이며, ‘가톨릭’ 학교인 ‘듀퀘슨’ 대학교 임시 교수인 ‘피터 스쿠넨버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우리가 이제 인간의 종의 기원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가장 열등한 어버이를 만나게 된다. 첫 사람들은 인간 부모가 아니라 동물 ‘부모’를 가졌었기 때문이다.”b 하지만 이 말은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성서의 분명한 말씀과 직접 반대됩니다.—누가 3:38, 신세; 창세 1:26.
3. 어떤 ‘가톨릭’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어느 정도로 가르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3 이들 ‘가톨릭’ 진화론 선생들은 진화론에 대하여 전혀 소극적이 아니며, 오히려 학생들이 그것을 철저히 인식하였는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이오나’ (‘가톨릭’)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생물학 교과서 머리말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모든 생물학상 가장 일반적 원칙은 진화이다. 이 제목을 다룰 때 대부분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는데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 이 책에서 우리는 진화가 생물계에서 사실인 것 그대로 보급하려고 노력하였다. 각 제목에는 그 제목에 맞는 진화의 배경과 견지가 들어 있다.” 이러한 머리말이 학생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의심할 여지가 있읍니까? 최근에 「유. 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가톨릭’ 교회 안에 증가하는 불안”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세인트루이스’의 한 사제는 그의 ‘가톨릭’ 학생들 가운데 25‘퍼센트’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의심하였으며, 다른 25‘퍼센트’는 불가지론자들이라고 추산하였다. ‘노트르 담’ 대학교 당국자들은 최근에 한 졸업생이 ‘내가 ‘노트르 담’이 제공하는 것을 최선을 다하여 받아들임에 따라 나는 더욱 더욱 그리스도교로부터 멀어져갔다’고 한 불평을 듣고 매우 당황하였다.”
4. ‘프로테스탄트’ 대변자들과 출판물들은 믿음을 파괴하는 이 가르침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 진화를 지지함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침식하고 있는 것은 비단 ‘로마 가톨릭’ 교회 만이 아닙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읍니다. “1949년 10월 18일”자의 한 편지에서 ‘캔터베리’ 대감독은 “그리스도교회는 전체적으로 말해서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공공연하게 말하였읍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저명한 출판물인 ‘더 크리스찬 센추리’지에서 ‘예일’ 대학교 신학 대학의 신학 교수인 ‘바울 홀머’ 박사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나는 우리 시대에 진화가 현저하게 과학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재능과 수고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될 일은 이러한 필자들이 진화를 말할 때 그들은 단순히 생명 형태의 다양함과 육지에게 작용하는 힘의 결과로 변화하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타 생물의 기원에 관하여 말한다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성서 주해」은 그들의 견해를 이와 같이 솔직하게 말하였읍니다. “파충류는 늪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였지만 사람은 그곳을 빠져 나오기를 원하였다. 그는 타파해야 할 원시적 본능을 가졌었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는 동물의 수준에서 시작하였지만 그는 거기에서 사는 것을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진화론을 승인하는 교직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성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까?
5 이러한 언명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직자들은 그들이 성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말합니까? ‘홀랜드’의 ‘에이. 훌스보스크’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지상 인간은 전체적으로 말해서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즉 생물학적 면으로 그는 동물과 관련되어 있고 인격적으로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렇게 해서 몸은 진화의 결과로 보지만 인간에게는 진화하지 않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점에 관하여 ‘로마 사교 신학 아카데미’의 한 성원인 ‘루돌프 반다스’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영혼은 진화 과정과 관계가 없다. 영혼은 이상적이고 단순하고 영적이고 불멸성이다. 그것은 단순한 동물 생명으로부터 진화할 수 없다.” ‘가톨릭’ 사제인 ‘레이몬드 노갈’도 그의 저서 「진화의 지혜」에서 이와 비슷하게 말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스라소니와 같이 특별한 종류의 동물이다. 사람은 다른 모든 동물과 함께 동물계에 속한다. ··· 남자(와 여자)의 영혼은 하나님께 직접 창조되었으며 영적이고 불멸성이다.”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대하여 너무나도 무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의적으로 속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6. 이들 교직자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전혀 잘못임을 성서로부터 증명하십시오. (ㄱ)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과 (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영혼”의 소유라고 하는 주장.
6 성서는 사람과 동물과의 생물학적 관계를 전혀 고려에 넣지 않습니다. 창조주의 영감을 받은 사도 ‘바울’은 여러 육체 기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고린도 전 15:39) 또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영혼”의 소유도 아닙니다. 성서는 사람이 영혼인 것같이 동물도 영혼임을 알려 줍니다. (창세 1:21, 24; 레위 24:18; 민수 31:28, 신세) 그뿐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혼을 주셨다고 하지 않고 사람이 “산 영혼이 되었다”, “‘아담’이 산 영혼이 되었다”고 알려 줍니다. (창세 2:7; 고린도 전 15:45, 신세) 그리하여 사람 자신이 하나의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교직자들의 말대로 영혼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사람도 진화하지 않았읍니다.
7. (ㄱ) 진화론을 믿는 일부 교직자들은 ‘아담’에 관한 성서 기록을 어떻게 봅니까? (ㄴ) 어떠한 사실이 성서가 그러한 견해를 승인하지 않음을 알려 줍니까? (ㄷ) 성서를 진화와 조화시키려고 하는 나머지 이러한 교직자들은 사실상 성서에 대하여 어떻게 하며, “과학”에 대하여 어떻게 하고 있읍니까?
7 성서를 진화론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나머지 교직자들은 ‘아담’에 관한 성서 기록은 단순히 풍유 즉 비유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네델란드 예수회’ 회원인 ‘트루스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우리는 낙원의 이야기는 현대적 언어의 의미로서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온전히 인식합시다.”c 그는 여기에 언급된 ‘아담’은 “첫 사람”이 아니라 일반 사람을 의미하며, 이 일반 사람은 하나님과 친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과 불화하게 하는 행동을 범한다고 추리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러한 견해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첫 사람”이요 일반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고린도 전 15:45) 성서 필자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아담’과 그외 일흔 네명의 이름을 열기합니다. (누가 3:23-38) 만일 한 사람이 단순한 풍유적 인물이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떠하겠읍니까? 또한 예수의 이부 동생인 ‘유다’는 ‘에녹’이 “‘아담’의 칠대손”이라고 기록하였읍니다. 그러나 ‘에녹’이 일반 사람으로부터 칠대손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유다 14, 새번역) 그리고 창세기 5:3은 ‘아담’이 130세에 ‘셋’이라는 아들을 낳았다고 알려 줍니다. 이것이 일반 사람의 경우입니까? 그렇지 않읍니다. 진화를 사실로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성서를 진화와 조화시키려고 해석함으로써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유물론적 “과학”을 높이고 있읍니다.
8. 진화를 옹호함에 있어서 교직자들은 누구와 동맹하는 것이며, 어떠한 출판된 성명이 이 사실을 알려 줍니까?
8 진화의 종교적 옹호가들은 그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뿌리 뽑으려는 공공연한 목표를 가진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진화론에 관한 ‘다아윈’의 수고를 어찌나 기뻐하였던지 (“공산주의자 운동의 성서”라는) ‘다스 카피탈’ 영문 판을 그에게 헌제(獻題)할 허락을 요청하는 편지를 그에게 보냈읍니다. ‘소련’에서 발행한 9학년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공공연한 선언이 들어 있읍니다. “생물계의 진화 법칙의 연구는 유물론적 개념의 성취를 돕는다. ··· 그 위에 이 가르침은 생물계에 나타난 목적에 대하여 유물론적 해석을 해줌으로써, 동시에 하등 동물로부터 사람의 기원을 증명해 줌으로써 반종교 투쟁을 위하여 우리를 무장시켜 준다.” 이에 더하여 진화론자 ‘줄리안 에스. 헉슬리’는 “‘다아윈’과 진화 사상”이라는 한 수필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선 만일 진화가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여진다면 세계 주요 종교의 신학적 구조의 대부분은 파괴되거나 편의상 ··· 의미심장한 신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자들은 진화가 하나의 사실이며, 성서 기록들은 단순한 신화라고 외치는 일에 앞장 서고 있읍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 10. (ㄱ) 교직자들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것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압도적 증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진화론을 옹호하려면 성서를 멸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진화론을 옹호합니까?
9 그것은 진화론이 사실에 확고히 근거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회의가 폐막되자 한 출판된 보도는 “현대인(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 관한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하고 발표하였읍니다. ‘대번포트’ 주교의 출판 인가가 들어 있는 한 출판물인, ‘가톨릭’ 승정 ‘울릭 에이. 하우버’ 저 「창조와 진화」라는 책은 그것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화론은 모든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실들 중 얼마와 반대되는 것같이 보인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어서 “그러나 그것은 뛰어나게 이치적인 이론이다” 하고 말합니다. 이들 종교 대변자들은 성서가 조심하라고 경고한 덫에 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 2:8)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진화론을 택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호감을 얻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으로 세상의 일부입니다. 심지어 과학계에서도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1964년 3월호 「레 몽데 에트 라 피에」지에서 ‘스트라스버그’ 대학교의 ‘프랑스’ 생물학자인 동물학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대부분의 진화론의 완고한 지지자들이 오늘날에 와서 사제들과 승려들과 모든 종류의 교직자들 사이에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유식층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또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님을 명백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17:16.
10 그들이 진화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이 세상의 호감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후 2:9-12) 이것은 또한 많은 과학자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사실입니다. 그들의 교육은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며, 만일 그들이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려면 그들은 인기있는 것에 동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 사회에서 성서의 도덕 표준이 인기 없는 것같이, 사람이 하나님께 창조되었고, 그러므로 그러한 표준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믿음은 인기가 없읍니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자존심은 그들에게 올무가 되며, 이 올무를 쳐 놓은 것은 마귀입니다.—계시 12:9; 고린도 후 4:4.
11. 이 문제에 있어서 장로 교회의 통치체는 누구에게 믿음을 두기로 하였는지 설명하십시오.
11 1969년 4월에 「뉴욕 포스트」지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미국 장로 교회의 통치체 역시 진화를 승인하려는 기록을 남겼읍니다. 그들은 “「창세기」의 기록을 창조에 관한 과학적 묘사로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읍니다. 채택을 위하여 제시된 보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창세기」의 문자적 충실성을 열렬히 주장하였으며, 그것이 진화론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였읍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우리가 만일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성실성에 대하여 심각한 힐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연사는 일어나서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나는 지질학자로서 진화가 존재한다는 확정된 사실을 이 대회에 제시하기를 원하며, 이 총회가 결코 그 사실을 폐지시킬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 종교인들은 무엇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였읍니까?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었읍니까? 혹은 하나님의 창조물의 얼마를 연구하고 그것들에 관하여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읍니까? 부끄럽게도 그들은 불완전한 인간과 그들의 진화론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였읍니다.—시 40:4, 5.
12. ‘예수회’ 회원들은 진화론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그들은 참으로 그렇게 믿습니까?
12 이보다 약 4년 전에 ‘파리’의 일간지인 「르 피가로」지는 1965년 6월 15일자 종교 소식 난에서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건을 보도하였읍니다. 이 신문은 ‘예수회’ 회장 ‘페트로 아루페’가 그의 취임식 연설에서 이 종교 단체의 새로운 정책을 말하는 가운데 그들은 ‘예수회’ 회원 진화론자 ‘테일하드 드 칼딘’의 저서의 지식에 강조를 둘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르 피가로」지는 “이 선언의 중요성은 ‘로마’의 교직체 안에서 ‘신부’ ‘아루페’의 견해가 교황의 견해와 온전히 일치하다는 데 의심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논평하였읍니다. 이 ‘뉴스’ 보도가 문제를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님은 이미 조사한 바와 같이 ‘가톨릭’ 대변자들이 믿음을 파괴하는 이 교리의 주요한 옹호자들 가운데 분명히 끼어 있다는 사실로써 증명됩니다.
13. 하나님의 말씀의 어떠한 견책이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에게 잘 적용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참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공언하면서 단순히 전통적인 문제에만 전념한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강력히 견책하셨읍니다.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여호와 자신으로부터 오는 충고를 깊이 숨기는 자들, 신세] ···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이 견책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숨기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부정하는 “패리함” 때문에 그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됩니다.—이사야 29:15, 16.
진화론에 대한 믿음의 결과
14. 만일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창세기」의 첫째 부분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됩니까?
14 우리의 믿음을 침식하는 모든 과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작은 일 같이 보이는 것 즉 성서 첫째 권의 일부가 엄격한 역사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과 같은 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만일 창조의 기록이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담’과 ‘하와’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캐나다’ 연합 교회는 “신화”라고 대답합니다. ‘예수회’ 필자인 ‘에스. 트루스터’는 “우리는 ‘아담’이 조상이라는 것은 다른 종족의 전설적 조상과 같이 꾸며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만일 누가 이러한 견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그는 성서의 나머지 부분은 믿을 수 있읍니까?
15. 「창세기」에 관한 교직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 그리고 그들이 기록한 것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이 한 가지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인간 철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의 믿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단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담’과 ‘하와’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용하셨으며, 그는 순수한 역사적 인물이었던 ‘모세’에 관하여 이야기하실 때에 이들에 관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 19:3-9)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가운데 열 네권을 기록한 예수의 사도 ‘바울’ 역시 그의 기록 가운데서 그는 「창세기」의 처음 여러 장 가운데 나오는 기록을 문자적으로 믿는다는 것을 나타냈읍니다. (디모데 전 2:13, 14) 그리스도인 성서 필자들인 ‘누가’나 ‘유다’의 경우에 있어서도 같았읍니다. (누가 3:38; 유다 14) 「창세기」의 일부가 “신화”라든가 “꾸며낸” 전설이라는 사상을 기꺼히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속았으며 그의 사도들 역시 잘못이었다는 결론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관한 많은 교직자들의 최근 인기있는 견해를 기꺼히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믿음이 심각하게 침식되어 간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될 것입니다.
16. 진화론에 동조하는 자들은 ‘아담’의 죄와 인류에 미친 그 영향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까?
16 물론 진화론을 자기의 사고의 지침으로 삼고 성경의 창조 기록을 “비역사적”이라고 분류하는 사람은 창세기 3장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인류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 가운데 출생하였다는 것도 믿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다만 철저한 무신론자들만이 아닙니다. 1966년 8월 22일호 「뉴스위크」지는 이렇게 보도합니다. “‘캐나다 예수회’ 성경 학자인 신부 ‘데이빗 스탠리’는 ··· ‘만일 당신이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아담’은 ··· 하나의 영장류에 불과하다. 타락의 신화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968년에 ‘뉴와크’ 대주교의 인가를 받아 발행된 「진화와 원죄 교리」라는 책은 이와 같은 견해를 취합니다. 그 책은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 때문에 죄의 상태로 생명을 시작한다”라는 성서의 기본 교리를 말하고 나서 “진화의 과학 교리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는 이 전통적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언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저자가 “진화론의 교리”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확실히 나타내고 있읍니다. 그는 그것을 어찌나 심각하게 생각하든지 성서 전체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진화론에 기꺼히 순응시키게 하려고 합니다.
17. (ㄱ) 이것은 어떻게 대속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칩니까? (ㄴ) 그러므로 진화의 교리는 사람의 믿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17 이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대한 태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첫 사람 ‘아담’의 죄에 대한 믿음은 사도 ‘바울’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그의 영감 받은 편지 가운데서 상당히 길게 설명한 바와 같이 대속에 대한 믿음과 관련이 있읍니다. (로마 5:12-19) 그는 또한 ‘고린도’인 회중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 전 15:21, 22) 교직자들이 대속의 이유에 관하여 성서가 말하는 바를 “신화”라고 분류한다면 그들은 대속 자체의 효력에 관하여 의심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월드 북 백과 사전」 1970년 판은 진화에 관한 그 기사에서 사실 그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죄의 실제성 그리고 속죄의 실제성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필수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하등 상태에서 진화과정을 통하여 생겨 났다면, 죄는 단순히 불안전성을 의미하게 되고 속죄의 복음은 모든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한 일이 있게 된다면 믿음이 어디 있읍니까? 믿음은 없읍니다.
18. (ㄱ) 교회 성원들은 그들의 목사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도록 격려를 받습니까? (ㄴ) 만일 그들이 여호와의 승인을 얻으려면 그러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교국의 한 교회 성원이라면 당신이 이 잡지에서 읽은 어떤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 당신의 목사는 그렇지 않고 그는 그러한 것을 믿거나 가르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해 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읍니까? 그에게 ‘아담’과 ‘하와’에 관한 성서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지 물어 보십시오. 만일 그가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영감받은 필자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진화론을 받아들이는지 물어 보십시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대속주로 믿는다고 공언한다고 하여 별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믿음은 만일 사람이 진화하고 향상으로 발전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다만 첫 사람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읍니다. 만일 당신의 교회의 목사가 진화론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은 사람의 추종자로서 그와 함께 머무를 것입니까? 그는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마련에 대한 믿음을 실천한다면 그리고 “영과 진리로” 그를 섬기는 사람들과 지금 연합해서 숭배를 계속 수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요한 4:24, 신세.
[각주]
a God in Creation and Evolution, 1965, vii
b God’s World in the Making, 1964, pp. 55, 56.
c Evolution and the Doctrine of Original Sin, P. 43.
[208면 삽화]
‘아담’과 ‘하와’에 관한 믿음을 배척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가?